그렇게 캄보디아 NGO 활동가가 됐다

브릭스 2020.01.15 12:21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나의 캄보디아 #1

나의 직업은 NGO 활동가

 나의 현재 직업은 NGO 활동가이다. NGO에서 일한 지 5년차, 캄보디아에서 일한 지 4년차다. 나 역시도 내가 캄보디아에 이렇게 오래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20대 초반만 해도 나는 캄보디아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아는 것이라고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앙코르와트가 있는 나라라는 사실 하나 뿐.

 NGO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9년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 사는 지역에서 일주일 정도 봉사활동을 하면서였다. 책에서 읽은 인도는 가난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깊이 뿌리박힌 계급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더욱 충격이었던 것은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며 눈 마주친 그들이 나와 별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서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고, 간간이 그들의 희미한 미소를 보며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마도 그 복잡미묘함은 나 역시 그들보다 내가 조금은 나은 계급에 속한 사람이라고 여긴 마음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와중에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데 혼자 감격했고, 그들이 나를 그렇게 대해줄 때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나도 어딘가에서 쓰임새가 있다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2010년 베트남에 반년 간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말로만 듣던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에 처음 가봤다. 앙코르와트를 보며 캄보디아 사람들을 향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후 나의 원대한 꿈을 이뤄보겠다며 NGO에 입사했고, 우연찮게 캄보디아의 교육 사업을 지원했고, 봉사단원을 파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우리나라 NGO가 원조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 중 한 곳이 캄보디아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동남아시아 국가이기에 우리나라와 문화가 아주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여겨서 그런 듯하다. 

그런데 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그곳을 알아간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직접 현장에서 캄보디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여전히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과 함께 말이다.

 또 그 무렵 한국이라는 사회가 싫어졌던 내게 그곳이 도피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사람들의 눈치를 봤고, 항상 경쟁하듯 삼십여 년을 살아왔다. 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껴입은 느낌이었다.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의 70년대와 많이 닮아있는데, 그 사회 속에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른을 한 해 앞둔 시점에 1년만 캄보디아에서 살아보자며 길을 떠났다.


왜 캄보디아인 거야?

 캄보디아로 오기 전 주변의 많은 이들이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캄보디아인 거야?” 그때 나는 내가 잔다르크라도 된 듯 캄보디아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지내는 4년 동안 그 질문은 나를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NGO 해외 현장에서 일하는 다른 이들을 보면 어떤 나라에 푹 빠져서 계속 그곳을 찾는다. 나 역시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캄보디아가 그런 곳이 되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데 이유가 없듯이 어떤 나라를 좋아하는 데도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어쩌면 쌀국수, 매일 봐도 아름다운 캄보디아 하늘 때문인지도 몰라요.”

 내 대답에 사람들은 대부분 갸우뚱거리거나 아니면 대놓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더 그럴싸한 이유를 댈 수도 있고 듣는 이도 그런 대답을 들으면 마음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잘 포장한다고 해서 그게 진짜 나 자신은 아니다.

 또한 이젠 내가 캄보디아에 어떤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돌이켜보면 그저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내가 좋아서 캄보디아에 온 것이고, NGO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엄밀히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다.

 나는 캄보디아에 오면서 이런 다짐을 했다.

1. 함께하는 이들의 장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2.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있어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잊지 않겠습니다.

3. 어떤 힘든 상황도 피하지 않고 고민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가 캄보디아로 향하던 나의 초심이다. 특히 “왜”라는 질문을 잊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되뇌곤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귀담아 듣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하는 프로젝트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지 고민하자는 맥락이었다. 또, NGO 활동 기간이 늘어나면서 나 자신을 경계하라는 의미도 새로이 생겨났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이 한 끝 차이로 제국주의와 별다르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멋대로 진행할 확률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 또 나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프로젝트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에 나는 계속 깨어 있어야 한다.

 4년차 캄보디아 NGO 활동가임에도 “왜 캄보디아인가?” 그리고 “나는 계속 NGO 활동을 할 것인가?” 같은 질문은 나를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 내가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바뀔 대답 또한 반드시 옳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하는 나, 초심 대로 살아가려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글/사진 Chantrea

죽을 때까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쩌다보니 캄보디아와 사랑에 빠져 4년째 NGO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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