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패션 센스에 감탄할 준비 되셨습니까?

어르신들의 패션 센스에 감탄할 준비 되셨습니까?

ㅍㅍㅅㅅ 2020-01-15 16:00:06 신고

패션이든 글쓰기든 뭐든, 의식하고 애쓰면 잔뜩 힘이 들어가서 자연스러운 멋이 우러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편한 마음으로 오로지 ‘실용’과 ‘자기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멋은 ‘꾸밈 과잉’의 태도로 점철된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게 분명합니다.

인스타그램 계정 gramparents는 각국으로부터 수집한 멋쟁이 노인의 패션을 구경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미지 보관소입니다. 머리 위로 무심하게 올라앉은 버킷햇과 캡, 안정감 넘치게 두 발을 감싼 뉴발란스 슈즈, 빈티지한 색감과 함께 무슨 일이든 거뜬히 해낼 태세로 무장한 치노 팬츠와 블루진은 ‘gramparents’의 포스팅을 빛내는 단골손님이죠.

출처: instagram @gramparents

‘gramparents’ 계정의 운영자는 뉴욕 브루클린 베이스의 의류 브랜드 앗숨(Adsum)의 브랜드 매니저 카일 키비야르비(Kyle Kivijarvi). 그는 시애틀의 퇴직자 전용 아파트(retirement home,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실버타운)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친구가 된 어르신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곧 오직 시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어르신들의 ‘자기 취향에 대한 이해’와 ‘정직성’이었고, 달리 말해 ‘유행’이 아닌 ‘개인의 스타일’에 집중하는 어르신들의 ‘경향성’이었습니다. 키비야르비가 브랜드 매니저로 활약하는 앗숨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gramparents 계정의 소개글 「Respect your elders」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꽤 울림이 있죠.

누구에게나 속도를 늦추어야 하는 시기는 찾아오는 법이다. 그때가 되면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보게 되고, 항상 제 자리에 있던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Adsum X Gramparents

개인적으로 철학이 깃든 감각-팔이는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힘을 갖는다는 평소의 지론이 있는데,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운영하면서도 이런 철학을 가졌다는 건 분명 감동적인 일입니다.

출처: instagram @gramparents

당신이 스티브 잡스요?

아니.

그럼 혹시 억만장자 애플 컴퓨터 대표요?

아니라니까.

오, 그럼 뉴발란스 스니커즈 신을 일은 평생 없겠네요.

  • 영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정말 스투피드한 말입니다. / 출처: 영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멋지게 신으니까요! / 출처: instagram @gramparents
AAA 무지 티셔츠에 Gramparents 로고를 박아 35달러에 판매하는군요. 이 시대 브랜딩의 시작은 인스타그램 계정으로부터! / 출처: gramparents.co

자, 이제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보죠. 2019년 5월 김선영 에디터가 W 코리아에 기고한 gramparents 계정을 소개하는 짧은 기사 「할아버지 패션?」에서 첫머리를 열며 오늘 제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사건 하나를 짚고 넘어가셨더군요.

불가리아 태생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프(kiko kostadinov)가 작년 한국에 방문했을 때, 동묘 거리에서 만난 대한민국 어르신들의 미친 패션 센스를 폰 카메라에 담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줄줄이 포스팅했던 사건이요.

함부로 흉내 낼 수도, 쉽게 따라 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 생활인의 실용 패션, 사실 우리 주위에 차고 넘칩니다. 인천에 살며 서울을 자주 오가는 제가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는 퀴퀴한 ‘1호선’ 지하철에서는 오늘도 패션 선각자 어르신들의 ‘서브웨이 런웨이’가 부지런히 펼쳐지죠.

그럼요, 청바지에 흰 티는 이렇게 입는 거죠.

대학 시절, 3월의 첫째 주, 9월의 첫째 주, 이렇게 두 차례씩 펼쳐지는 ‘개강 런웨이’는 구경하는 재미가 너무나 쏠쏠해 ‘결석’보다는 ‘출석’을 부르곤 했습니다. 늘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스타일을 지향했거든요.

막 군에서 제대해 복학했던 시기를 예로 들면 남학생들의 신발은 ‘천하-통일’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같이 ‘쏘로굿’이라는 브랜드의 워커를 신었거든요. 그 살벌했던 풍경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저는 서울의 대학가를 전시 상황 혹은 거국적 막노동의 현장으로 가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와 새삼 주위를 돌아보니 대한민국 어르신들의 패션은 개별적으로 휘황하며 개인적으로 고집 있는 ‘고유의 것’으로 넘쳐흐른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발견’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늘 그 자리에서 자기 개성이라는 몫만큼의 빛을 연신 발하며 패션 스타일링을 운용했거든요. 제가 감히 경시했을 뿐이죠.

오늘부터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세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고유의 멋을 뽐내는 대한민국 어르신들의 패션 스타일에 주목해보세요. 여러분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꾸안꾸’ 또는 전위적 예술성의 경지를 그들로부터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일단 저부터 1호선 노약자석으로 급히 달려갑니다.

원문: 스눕피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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