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픽 : 영국식 향기

"읽는 만큼 돈이 된다"

영국식 향기

노블레스 2020.01.15 17:00

왼쪽부터_ 24 올드 본드 스트리트, 41 벌링턴 아케이드, 24 올드 본드 스트리트 트리플 엑스트렉트, 24 올드 본드 스트리트, 퍼퓸드 솝, 센티드 캔들.

지난 11월, 런던 출장이 결정됐다. 짐을 꾸리며 불현듯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잘빠진 슈트 룩의 향연을 보여준 <킹스맨>이 생각나 포멀한 블랙 슈트와 가죽 재킷을 챙겼고, 줄리아 로버츠의 <노팅힐>표 환한 미소가 떠올라 하이라이터를, <어톤먼트>의 묘한 분위기 속 키라나이틀리를 그리며 누드 톤 립스틱을 챙겼다. 그렇게 꽤나 이것저것 넣었지만 짐가방은 평소보다 가벼웠다. 영국적 향기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앳킨슨의 초청인 만큼 향수는 단 하나도 챙기지 않았으니까.
사실 국내에서 앳킨슨이라는 향수 브랜드는 향에 조예가 깊은 이들을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브랜드임에도 말이다. 그 시작은 1799년, 창립자 제임스 앳킨슨이 직접 고안한 향수와 보디용품 제조법, 그리고 실제 곰 한 마리를 데리고 런던에 등장하면서 비롯된다. 당시 시대를 풍미한 이탈리아풍 코롱과는 달리 조금 짙은 향조의 영국풍 오드 코롱으로 앳킨슨은 대히트를 쳤고 곧 사교계를 사로잡았다. 곰 한 마리가 지키고 있는 이 황홀한 향수 가게는 그 후 줄을 서서 둘러보는 부티크가 되었다. 앳킨슨은 이후 조지 4세의 왕실을 비롯해 나폴레옹, 넬슨 제독, 러시아의 여황제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인물들을 차례로 매료시키며 런던 올드본드 스트리트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1 브랜드 컨셉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1층 디스플레이 존.
2 벌링턴 아케이드에서 펼쳐진 갈라 디너 현장.

앳킨슨의 벌링턴 아케이드 플래그십 스토어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방금 언급한 올드본드 스트리트 바로 옆에 자리한 위치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앳킨슨의 CEO 디노 파세(Dino Pace)와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 디자인을 맡은 크리스토퍼 제너(Christopher Jenner)는 에디터를 보자마자 옷을 챙겨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이끈 곳은 브랜드의 상징인 올드본드 스트리트. 현재 패션 하우스 페라가모의 매장이 위치해 있지만 건물 곳곳에 앳킨슨의 로고와 향수의 원료, 곰 모양 프린트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분 남짓 걸어가면 벌링턴 아케이드 스토어가 나온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브랜드를 이해하는 크리스토퍼 제너의 태도였다. 크리스토퍼 제너는 현재 런던에서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서로 명함을 주고받지 않았다면 그를 브랜드 매니저로 착각할 만큼 앳킨슨에 조예가 깊었다. “저 스스로 브랜드의 헤리티지 자료를 찾아 공간적 요소로 풀어냈어요. 앳킨슨의 전통을 모던한 감각으로 재창조해 사람들이 호감을 갖게끔 하는 것이 제 숙제였죠.”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3층에 달하는 매장은 그의 감각을 빌려 각각 특색 있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1층 테스팅 존은 빛을 받은 향수 보틀 덕에 반짝이고, 골드 컬러의 벽과 프레임은 고급스러움을 자아낸다. 일렬로 놓인 향수 디스플레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이어진 2층은 크리스토퍼 제너가 가장 신경 썼다는 VIP 공간이다. 그는 이곳을 살롱처럼 꾸며 고객이 편안하게 향을 즐기고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더스티 핑크와 에메랄드, 블루의 컬러 조합은 사진으로만 보던 앳킨슨의 부티크를 재현한듯 싶었다. 지하에는 바버숍이 위치한다. 바버 제품으로 시작한 앳킨슨의 브랜드 헤리티지를 되살린 셈이다.
공간을 둘러본 뒤 만난 41 벌링턴 아케이드 리미티드 에디션의 향기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자신감 넘치는 영국 특유의 향을 뿜어내는 이 향수는 창립 연도와 같은 1799개만 출시 예정이다. “벌링턴 아케이드의 우아한 분위기를 담기 위해 우드 계열 향을 만들었어요. 앳킨슨의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미들 노트에는 스파이시한 향을 조합해 사용했고요. 카르다몸과 넛메그, 피멘토를 더해 달달한 향과 함께 씁쓸한 향이 조화를 이루고 시더우드와 앰버, 머스크가 따뜻한 잔향을 남기죠.” 조향사 줄리 플뤼셰(Julie Pluchet)의 설명이다. 언뜻 남성적 느낌이 강한 듯하지만 몸을 휘감으며 남는 잔향에는 여자가 좋아할 만한 따뜻한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 하루의 끝은 앳킨슨의 갈라 디너로 마무리했다. 놀랍게도 앳킨슨은 향기를 소개하는 특별한 순간을 위해 사람들로 북적이던 벌링턴 아케이드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만들었다. 거대한 디너 테이블과 함께 영국 밴드의 음악이 흐르는 홀은 앳킨슨의 41 벌링턴 아케이드 향을 입은 프레스와 인플루언서 덕에 매혹적인 향기로 가득 찼고, 은은한 촛불 아래 우리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기억을 남겼다.




2층 VIP 룸은 마치 살롱처럼 편안하게 디자인했다.

 

Interview with Dino Pace

런던의 헤리티지가 녹아 있는 여러 스폿 중 벌링턴 아케이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24 올드본드 스트리트는 앳킨슨의 고향입니다. 제임슨 앳킨슨이 유명세를 얻으면서 오픈한 상점이고, 앳킨슨을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제품이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죠. 여러 장소가 후보로 올랐지만 앳킨슨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24 올드본드 스트리트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명품 브랜드가 밀집한 이곳을 선택했어요. 벌링턴 아케이드는 앳킨슨이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도 담겨 있죠.

앳킨슨을 대표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꼽아본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영국, 신사, 바버숍, 런던.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댄디한 사람’을 꼽고 싶네요. 댄디한 사람은 전세계에 존재하죠. 비단 남성만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이는 앳킨슨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해요.

앳킨슨은 남성적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입니다. 물론 그루밍 라인으로 앳킨슨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성을 위한 브랜드로 착각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실제 고객의 성비는 거의 50 대 50이에요.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는 오로지 앳킨슨의 화이트 로즈만 사용했고, 빅토리아 여왕 역시 앳킨슨의 고객이죠. 한국에서는 넙슈어 부케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앳킨슨의 명맥이 끊긴 때가 있습니다. 이를 되살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앳킨슨이라는 브랜드의 역사에 반했어요. 되살릴 만한 브랜드라는 확신이 들었죠. 영국의 귀족들이 주문한 라벨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고, 최초의 향수병이나 당시의 방명록 등 다양한 헤리티지의 기반이 잘 살아 있었어요. 모던한 감각만 더한다면 다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라고 판단했습니다.

니치 향수가 주류인 시대입니다. 진정한 니치 향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유니크함을 표현할 수 있는 향수. 흔하게 맡을 수 있는 향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독특한 개성이 담겨 있어야 해요. 즉 대중에게 골고루 사랑받기보다는 어떤 한두 사람이라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향이 바로 니치죠. 또한 특정한 곳에서만 판매하는 등 희소성도 갖춰야 하고요.

 

에디터 김애림(alkim@noblesse.com)
사진 박성영(제품)  스타일링 최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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