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미리보기#3] 돈 걱정은 끝이 없지만

[책 미리보기#3] 돈 걱정은 끝이 없지만

비전비엔피 2020-01-16 07:30:05 신고

마흔이 되면서 나와 내 주변인들의 대화가 좀 달라졌다. 건강, 돈, 정확하게는 노후대책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에 돈을 버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당장 쓸 돈이 없으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버는 돈은 관리 또한 간단했다. 저축 조금 하고 거의 다 쓰면 그만이었다. 사실 이십 대 때 경제관념이 철저해서 악착같이 아끼고 저축하는 타입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린 늘 이달 벌어 지난달 카드값을 막고 다음 달 카드값은 또 어쩌지 하는 고민에 손톱을 물어뜯어야 했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넘쳐나던 이십 대였다.


일단 벌기만 하면 되던 시기와 달리 지금 우리는 언제까지 벌 수 있을지, 또 더는 벌지 못하는 날이 오면 과연 어떻게 살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삼십 대까지는 솔직히 내가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십 대가 되면 이제 건강에 무관심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해도 체력적으로 언제까지 지금처럼 일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 생겨난다.

게다가 세상 거의 모든 일에는 정년이 있다. 자영업자라면 본인이 정하는 날이 정년이겠지만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젊고 재기 발랄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물론 사십 대가 직장에서 가장 인정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시기라고들 하지만 물 들어올 때가 있으면 빠지는 때가 온다는 것을 잘 알기에 두려움은 더욱 크다.

마흔의 경제 상황이란 제각각이라서 어떻게 보면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이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공통된 고민이 있다. 언젠가 더는 일할 수 없고 더는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 날이 그리 머잖은 미래로 다가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과연 그때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실질적인 고민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아무리 사회보장이 잘되어 있다 하더라도 말 그대로 밥만 먹고 최소한의 돈만 쓰면서 목숨만 부지하는 삶을 노후대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때도 우리는 지금처럼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걸 보고 싶어 하며 때로는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노후 걱정을 날릴 기막힌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그런 방법 같은 건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한다. 이십 대에도 삼십 대에도 나는 단 한 번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언제나 필요한 것들과 가지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했고 매일 저녁 가계부를 적으면서 다음 달에는 좀 나아지려나 기대했다. 그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흔이 되면 백화점에서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물건을 사겠다느니 백화점에 마트용 쇼핑카트를 끌고 가서 사고 싶은 모든 걸 싹 쓸어 담겠다느니 하는 꿈들은 진작에 접었다. 대신 돈을 어떻게 잘 쓸지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흔이 되고부터는 단순히 소유욕에서 비롯된 소모적 소비를 끝냈다. 미니멀라이프까지는 아니더라도 물건 하나가 늘어나면 원래 가지고 있던 낡은 혹은 잘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릴 줄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경험을 위한 것, 혹은 내가 알고 싶은 것에 돈을 쓰는 일에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물질적 형태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그래서 내가 돈을 썼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것에 돈을 쓰고 있다.

예전부터 관심 있었던 도자기 , 프랑스 자수, 조향 등을 배우며 뭔가 돈을 쓴 티가 나지 않아도 내 안에 남는 것, 그 돈을 지불하고 내가 얼마나 더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가에 초점을 둔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을 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사십 대에는 내일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만을 즐길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막 살 수도 없고, 막 살아지지도 않는 마흔이니까. 하지만 이런 걱정들에 눌려 현재를 담보로 잡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마흔에도 역시 오늘이 소중한 것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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