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책이 가진 매력

자동차 책이 가진 매력

모터트렌드 2020-01-16 10:00:49 신고

디지털 시대로 종이책의 설 자리가 줄고 있지만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고 사진을 감상하는 건 여전히 큰 즐거움이다. 특히 자동차 마니아에게 자동차 전문지는 절대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방을 옮기며 책장을 정리했다. 책장에 꽂힌 자동차 잡지 양이 적지 않다. 어릴 때부터 잡지 읽는 것이 취미였다. 잡지도 독서가 분명한데, 문학 서적을 읽으면 칭찬받지만 잡지는 그렇지 못하다. 학창 시절, 어머니는 자동차 잡지 구독이 내 공부에 방해된다 하셨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방법 중에 자동차 전문지 읽는 것도 훌륭한 취미다. 외국의 유명 인사가 자동차 잡지 읽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 괜히 애정이 솟는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자동차 잡지를 읽고, 영국 코미디언 미스터 빈은 시승하고 글도 썼다. 미국의 가정을 방문하면 어느 집이나 자동차 잡지 한두 권은 정기 구독을 한다.

중학교 때부터 모은 잡지가 넘쳐흘렀다. 국내 자동차 잡지가 없던 시절, 명동 헌책방에서 미군부대를 통해 들어온 <모터트렌드>, <카 앤드 드라이버>, <로드 앤드 트랙> 같은 미국 잡지를 샀다. 이상하게 항상 겉장이 뜯어졌는데, 안 팔린 책은 표지만 뜯어서 반품하고 알맹이가 헌책방으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중학생이 용돈을 털어 산 귀중한 자료였지만 얼핏 보기에 폐지와 다를 바 없었다. 입대하면서 많은 양의 잡지를 사촌 동생에게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숙모는 폐지 더미에 놀라 모두 갖다 버렸다. 오래전 얘기다.

요즘도 구독하는 7~8가지의 월간지들은 일정한 기간이 되면 상자에 넣어 다른 곳에 보관한다. 한번 상자에 담은 책들을 다시 풀어 볼 것 같지는 않다. 누구에게 넘겨줄까? 내게는 소중한 자료지만 많은 사람들은 폐지 더미로 여길 뿐이다. 그렇게 모은 상자가 벌써 1t 트럭 분량을 넘는다.

외국에 갈 때마다 책을 사 모았다. ‘반스 앤드 노블’ 같은 책방의 자동차 섹션은 정말 많은 자동차 책으로 넘쳐났다. 욕심에 고르고 골라 서너 권만 사더라도 책은 무척 무거웠다. 요즘은 모두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지만 종이책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르다. 특히 사진을 좋아해서, 내가 살아보지 않은 1950년대 미국차와 주유소 풍경을 보며 감상에 젖기도 한다. 잡지의 예쁜 사진을 모아 스크랩도 만들었다.

대부분 책은 클래식 카와 자동차 역사에 관한 것들이다. 글 쓰는 데 도움 되는 자료를 찾다 보면 대체로 역사 관련 책이 많았다. 외국어 실력 때문에 에세이나 소설 같은 것은 잘 손이 가지 않는다. 1970년대부터 세계의 자동차 연감을 모아놓은 나의 책장은 손길이 닿는 순간 생명을 얻는다. 책 안에 나의 젊은 날 좋아했던 차들이 가득하다. 오랜 세월 시승기를 쓰느라 함께한 차들이 나를 반긴다.

디자인에 관한 책이나 오프로드 관련 책도 한구석을 차지한다. 자동차 디자인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고,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얘기는 이루지 못한 나의 꿈 이었다. 랜드로버 취재를 하다 보니 영국에서 4×4 인스트럭터 자격증 코스까지 밟았다. 고성의 뒤뜰에서 레인지로버를 타던 기억이 아련하다. 어느 틈에 모터사이클 잡지도 한구석을 차지했다. 나이 50 넘어 바이크 면허증을 따고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자동차 잡지를 사 모으는 것도 재미있었다. 인도 잡지는 대부분 우리가 아는 <카> 등 영국 잡지의 라이선스로 만들지만 그 내용은 인도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와 바이크로 가득 차 흥미롭다. 거리에 온통 경차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그들의 자동차에 대한 애정은 우리보다 깊은 것 같았다. 글을 읽을 줄 몰라 상상력만 한껏 키우는 중국 자동차 잡지 역시 그 가짓수나 발전 속도가 놀랍다. 중국 자동차는 이제 전기차라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우리를 뛰어넘는 것 같다.

외국을 다니며 방문했던 많은 자동차 메이커의 안내 책자도 끔 들춰볼 때마다 당시 기분이 새록새록 난다. 모건, 케이터햄, TVR 등 많은 영국의 백야드 빌더들, 그리고 자동차 박물관 팸플릿이 아련한 추억을 불러낸다.

자동차로 여행한 도시의 관광안내 책자도 다시 볼만하다. 랜드로버로 보르네오의 정글 속을 달렸는데, 비 내리는 원시림의 공포가 인상 깊었다. 진흙탕 속의 궂은일은 모두 현지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구경만 하는 호화판 정글 탐험이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로서 나의 삶은 쉽게 얻기 힘든 경험의 연속이었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를 타고 며칠간 이탈리아를 달리고, 페라리로 알프스 돌로미테 지역을 감싸 돌았다. 슈퍼카에 걸맞은 호텔과 음식을 즐기며 유럽의 부자를 코스프레할 수도 있었다.

국내 작가들이 쓴 자동차 단행본도 모았다. 대부분 아는 분들 책이라 반갑다. 그중에 내 책도 하나 끼어 있어 뿌듯하다. 책을 내본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오랜 세월 써온 시승기와 칼럼을 정리해놓은 파일도 책장의 한두 칸을 차지한다.

책장을 정리하다 잊고 있던 책들을 보면 마치 새 책을 보는 듯 반갑다. 책마다 먼지를 쓸어내며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자동차 이야기라면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해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요즘도 자동차 책은 관심을 갖고 모으는 중이다.
글_박규철

CREDIT
EDITOR : <모터트렌드>편집부 PHOTO : 모터트렌드 ILLUSTRATION : 이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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