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미리보기 #4]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책 미리보기 #4]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비전비엔피 2020-01-18 13:50:03 신고


나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들이 나의 허전한 부분을 채워주기를, 그 사람에게 내가 큰 의미가 있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자꾸 무리하게 되었고, 결국 그 무리수들이 모여 인간관계는 점점 힘들어지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 지쳐갈 무렵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나'라는 인간에 대해 말해주고 알려주려고 애쓰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마치 연극을 하듯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했다. 늘 먼저 다가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가 아닌, 낯을 가리고 사람들을 피하며 혼자 조용히 지내는 나로.

그러자 믿을 수 없게도, 이십대 중반 즈음에 들어간 직장에서 삼 년 동안 사람들은 나를 낯을 가리는 조용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수줍음 많고 사람들 많은 곳에 잘 가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퇴사를 하는 날, 마지막 송별회에서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본모습을 다 보이고 말았다. 사람들이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 이후 최대의 반전이라며 놀라워했다. 꽤 오랫동안 내가 아닌 나로 살았던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타인과 나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그 적당함이란 어떻게 만나 어떤 것을 함께하고 싶으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 또 사람마다 다 다르기에 외려 그때그때 임기응변처럼 대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할지,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얻은 답은 그 모든 것에 진심일 것, 그러나 절대로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간혹 진심을 전달하려다 보면 선을 넘을 때가 있다.

하지만 진심을 다하고 표현하되 그 사람의 영역까지 침범해서는 안 된다. 흔히 진심 어린 충고랍시고 하는 말,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얘기라는 식의 말은 내뱉을 때 신중해야 한다.

하는 쪽에서 마음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쪽에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마음껏 해대는 것에 불과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정신과 의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는 실패한 관계라고. 적정한 거리가 30센티미터인지 1미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사 그런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절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알던 사람이든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이든 끊임없이 그와의 적당한 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지구와 달은 적정거리를 유지하기에 서로에게 영향은 주되 서로를 파괴하거나 서로에게 삼켜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가까워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아예 서로의 영향권 밖으로 튕겨 날아가 버리지도 말아야 한다.

진심이 전달되는 정도의 거리,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을 거리가 필요하다. 적정한 거리 찾기는 어쩌면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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