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을 하러 갔다가 현재 연애 중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연애 칼럼니스트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질문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마지막 연애를 떠올려보았다. 곧이어 그 이후로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지막 사랑이 언제 어떻게 끝이 났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눈이 많이 온 그날, 나와 남자친구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서운한지 알리기 위해 그에게 화를 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내가 무엇 떄문에 화가 났는지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화를 위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그와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거의 모든 연애의 끝이 그러하듯 대단한 사건도 사연도 없었지만,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서로에 대한 불만과 서운함이 결국 우리를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연애의 끝에서 이제 아주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없었다.
그만큼 그 연애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때처럼 누군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자신이 없었고 사랑에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즈음 나는 마흔을 앞두고 있었기에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만큼 사랑처럼 격렬한 감정의 동요보다는 평안함을 택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후 가끔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을 만나 아주 짧게 연애 바로 직전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거기에는 마음 아플 것도 속상할 것도 서운해할 것도 없었다. '너 아니면 안되는'이 아닌 '너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들을 만났고, 오직 하나뿐인 그대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중에 어쩌다 보니 그대라고 말해도 좋을 만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방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더는 썸이나 데이트만으로 끝나도 좋은 관계가 아닌, 다시 예전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관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지난 마지막 사랑을 떠올려도 더는 전처럼 마음 아프지 않았고, 시간을 되돌려 그 순간으로 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후회의 감정도 들지 않았다.
마흔을 넘어서면서 마흔의 감정과 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러나 나이가 조금 더 든 내가 있을 뿐이다. 이십 대처럼 뜨겁게 사랑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다시 따뜻해지고 싶어졌다. 사랑 없이 보낸 그 모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아까웠고 누군가로 인해 마음 설레는 순간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랑은 내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다고 당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는 평온한 일상을 이제 더는 지속하고 싶지가 않다.
마지막 사랑에서 참 많은 날을 지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나 그늘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써도 좋은 날이 온 것 같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내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흔이니까 이래야 하지 않을까, 마흔이 되었으니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이런 생각은 내가 스스로에게 씌운 굴레일 뿐 아무도 내게 그렇게 살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나이를 혹은 그 나이에 맞는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직 낯선 마흔을 사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
- 마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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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진진
출판 애플북스
발매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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