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에서 죽어야 '과로사' 인정되는 대한민국

[단독]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에서 죽어야 '과로사' 인정되는 대한민국

로톡뉴스 2020-01-23 16:33:19 신고

판결뉴스
로톡뉴스 조하나 기자
one@lawtalknews.co.kr
2020년 1월 23일 16시 33분 작성 / 2020년 1월 23일 16시 35분 수정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산업 재해 판결문 5건 분석⋯소송 모두 기각
5개의 판결문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건강 관리 소홀'
변호사들이 말하는 '업무상 질병'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
'원래 건강하지 않았으니 과로로 죽은 게 아닐 수 있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이 아빠'가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급사였다. 사인은 심장마비. 부인은 법원에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일하다 죽었으니 당연히 산업재해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 아빠가 평소 피우던 담배, 불규칙적인 식사 시간, 운동 부족 등을 문제 삼았다. 쉽게 말해 '원래 건강하지 않았으니 과로로 죽은 게 아닐 수 있다'는 말이었다. 유가족은 답답하다.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에서 죽어야만 산업재해라는 건가요?"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 1년에 2146명 소송

전국 곳곳 법원에는 이런 소송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온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2146명이 공무상 재해⋅산업 재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피해자의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면 유가족은 연금 등 여러 가지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인정되는 비율은 높지 않다. 법원 관계자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비율은 극히 드물다"며 "10%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톡뉴스가 가장 최신 판결문 5건을 분석해봤더니, 5건 모두 '산업재해 불인정'이었다. 재판부는 "업무로 인해 사망했다고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유가족 주장을 기각했다.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점 한 가지 '건강 관리'

지난 2018년 청주의 한 광고회사 영업부 과장인 최모(45)씨는 거래처에 전달할 배송 제품을 확인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심근경색이었다. 유족 측은 최씨가 하루 종일 운전하며 10~15곳의 거래처에 제품을 배송하고 수금하는 등 과로에 시달려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씨가 과로로 죽은 게 아니다"고 봤다. 업무가 규칙적이었고 휴일엔 쉬었다는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한, 산재로 인정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최씨의 고혈압이었다. 최씨가 생전에 고혈압 치료를 성실히 받지 않았고 흡연을 한 것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최씨가 건강관리를 소홀한 탓에 고혈압이 심해졌고, 그 결과 심근경색이 유발됐다고 봤다. 흡연은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요인 중에 하나로 판단했다. 유가족이 "심장마비는 흡연 영향보다는 과로 탓"이라고 주장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다른 판결문에도 똑같은 근거를 찾아볼 수 있었다. '건강관리 소홀'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주요 근거였다. 판결문 속 30-50대 남성 사망자들은 공통적으로 ①생전에 고혈압⋅고지혈증⋅당뇨 등의 지병이 있었지만 ②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등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③과로로 인한 죽음이 아닐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건강관리 소홀에는 흡연과 음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흡연과 음주 등 '건강관리 소홀'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주요 근거였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변호사들이 알려주는 '인정받지 못한 이유 : 입증책임'

변호사들은 법원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행정소송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과 판결문을 분석해봤다.

①'제3의 요인'을 배제할 수 없는 질병 사망

변호사들은 "질병으로 사망한 근로자들을 산업재해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 건강 상태'를 꼼꼼히 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추락 등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우에는 "업무 중 재해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비교적 명확하게 내릴 수 있지만, 심근경색 등 질병으로 죽은 경우에는 '제3의 요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유스트의 이준호 변호사는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인지, 아니면 근로자 개인의 건강 상태 등이 사망에 영향을 준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된다고 말했다.

이준호 변호사는 쟁점을 가르는 기준으로 '근로자의 사적(私的) 요인'을 말했다. 이는 지난 2002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다. 이는 "발병⋅악화의 원인은 반드시 업무에 관련된 것뿐만이 아니라 사적 생활에 속하는 요인이 관여하고 있으므로 (과로와 스트레스를) 곧바로 (사망의) 인과관계로 추단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즉 △흡연 △음주 △과거 병력과 관리 여부 등 근로자의 사적으로 생활하면서 발생한 원인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면 '업무로 인한 사망' 주장에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법무법인 서울의 이장우 변호사도 "사망한 사람이 생전에 흡연, 음주를 꾸준히 했다면 이 또한 불리한 논거가 된다"며 "고혈압 등 질병은 건강관리를 필요로 하는데, 이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질병이 악화돼 사망했다고 볼 여지도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국 곳곳 법원에는 이런 소송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온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2146명이 공무상 재해⋅산업 재해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박선우 기자

② 유가족이 입증해야 하는 사망 인과관계

유족의 승소를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입증책임' 때문이다. 현행 산업재해법은 사망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책임이 유가족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법무법인 문장의 임원택 변호사는 "현행 산재법 시행령은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으로) '의학적 관련성'을 요구하는데, 그 증명책임을 근로자에게 두고 있다"며 "근로자 측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의학적 관련성을 입증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족 급여를 달라고 하는 쪽(유가족 측)에서 노동자의 죽음이 의학적으로 '일 때문'이라고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임원택 변호사는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방향으로 산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률자문

왼쪽부터 '법무법인 문장'의 임원택 변호사, '법무법인 서울'의 이장우 변호사, '법무법인 유스트'의 이준호 변호사. /로톡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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