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Wave Architecture

New Wave Architecture

노블레스 2020-01-26 17:00:00 신고


버려진 지하 공간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뉴욕 로라인 프로젝트
ⓒRAAD Studio

급속한 인구 증가와 과도한 개발로 도시 건축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전처럼 최신 기술을 뽐내며 더 크게, 더 높이 건물을 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요즘 건축업계의 화두는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재생 건축, 착한 건축, 자연 건축 3가지 키워드로 귀결된다. 과거 건축물의 원형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해 새로운 용도로 재창출하거나 산업화 시대에 조성한 낙후된 도심을 재정비하는 ‘재생 건축’, 저에너지와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착한 건축’, 주변 환경을 디자인으로 끌어들여 자연과 상생하며 살아가는 ‘자연 건축’에 더 많은 힘을 쏟기 시작했다.





1 서울수목원을 컨셉으로 공원화되고 있는 서울로 7017 / ⓒMVRDV
2 거대한 곡물 저장 탱크를 개조한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 ⓒHeatherwick Studio

Upcycled Architecture
건축가 마크 쿠쉬너(Marc Kushner)가 쓴 <미래의 건축 100>을 보면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의 건축 행위 가운데 90%가 기존 건물을 바탕으로 이뤄질 거라고 예고한다. 이 말은 건물을 부숴 없애고 새로 짓는 대신 오래된 건물을 현재 용도에 맞게 고쳐 쓰는 재생 건축이 주를 이룰 거란 의미다. 낡은 공간을 개조해 카페, 호텔 등 상업 공간으로 만드는 사례가 마치 최근의 유행인 듯 보이지만 사실 재생 건축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특히 화력발전소를 문화 공간으로 만든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기차역을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등은 재생 건축을 논할 때마다 회자되는 사례다. 얼마 전 문을 연 아프리카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Zeitz MOCCA)과 베를린의 고대 박물관도 이러한 산업화 시대의 유물을 동시대 문화 예술의 장으로 만드는 방식을 취했다. 원통 모양의 거대한 곡물 저장 탱크를 개조한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은 곡식 낱알 모양으로 베어낸 독특한 내부 디자인이 시선을 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 벙커로 활용한 공간을 업사이클링한 고대 박물관은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낙후된 외관과 낡은 콘크리트 기둥, 천장 등을 그대로 살렸다. 이런 크고 작은 레노베이션은 옛것을 되살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낡은 장소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혀 현재성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더 가치가 있다.
좀 더 시야를 넓히면, 최근 도시의 인상을 바꿀 만한 재생 프로젝트가 활발한 것을 볼 수 있다. 버려진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뉴욕 하이라인 파크는 도시 재생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 뒤를 이어 최근 뉴욕에서는 또 다른 도시 재생 공원을 조성 중이다. 로라인(Lowline) 프로젝트가 그것. 1948년 전차 운행이 중단된 이후 방치된 윌리엄스버그 전차 터미널이 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도심의 허브 역할을 할 자연 공간을 지하 세계에 만든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과연 지하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을까? 로라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라드 스튜디오의 디자인 디렉터 박기범은 “한국의 선포털(Sunportal)사와 함께 개발한 원격 채광 기술을 적용하면 가능합니다. 태양광을 모아 배관을 통해 지하로 내려보내는 거죠. 그리고 배급부에서 산광 렌즈를 통해 빛을 확산시키는 원리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지상은 기후와 계절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성할 수 있는 식물군이 제한적이지만 이곳에선 빛과 습도, 온도 등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뉴욕의 기후대에서 볼 수 없는 식물군도 키울 수 있다고. 어쩌면 이미 포화 상태인 대도시에서 지상보다 지하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맨해튼 반대편 동네에서는 오래된 공장과 창고 부지를 현대 도시의 위상에 걸맞게 재개발하는 뉴욕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이 여기에 150피트 높이의 대형 조형물을 세운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벌집을 연상시키는 격자 모양의 조형물은 다시 태어난 허드슨 야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을지로와 세종로의 지하보도, 여의도 지하 벙커, 옛 국세청 남대문 별관 자리 등 서울의 지하 공간을 공원으로 탈바꿈하려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건 올 4월 개장을 앞두고 있는 서울로 7017. 서울역을 휘감고 도는 오래된 고가도로를 공원화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7017’은 1970년대 건설한 고가를 2017년에 철거 대신 새로운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건축 및 도시 설계 회사 MVRDV에서 설계를 맡아 ‘서울수목원’을 컨셉으로 공중에서 볼 때나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나 큰 나무 형상이 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938m에 이르는 다리 위에 플라워 숍, 북 카페 등 편의시설과 함께 684개의 다양한 식재 화분을 배치해 하늘 위 공원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낙후된 시설을 허물지 않고 옛것의 가치를 인정하며 재생을 감행하는 움직임은 도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1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 벙커로 활용한 공간을 개조한 베를린의 고대 박물관
2 현대 도시의 위상에 걸맞게 재개발하는 뉴욕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 /ⓒHeatherwick Studio



 

Sustainable Architecture
지속 가능한 건축을 지향하는 한 건축 회사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2050년에 지구촌 인구가 100억 명에 육박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열에 일곱은 도시에 살게 된다. 도시에 기반을 둔 중산층은 지금의 2배인 40억 명으로 늘어난다. 과연 이 많은 인구를 지구가 견뎌낼 수 있을까?” 인구 과잉과 기후변화, 환경 파괴라는 지구촌 빅 이슈를 염두에 두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건축물도 친환경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속 가능한 건축이 세계적 트렌드로 부각되었을 때 건축 공법 중 하나인 컨테이너를 활용한 모듈러 공법이 각광받았다. 이동과 해체가 쉽고 재활용이 가능한 데다 건설 폐기물 발생을 줄일 수 있어 지속 가능한 건축의 보편적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듈러 건축보다 친환경 소재의 사용을 비롯해 재생에너지, 에너지 절감과 저장, 수경 재배, 자원 재활용 시스템 같은 혁신 기술을 조합하는 추세다.





친환경적 설계로 주목받은 한국타이어 테크노돔

한국타이어 테크노돔 Hankooktire Technodome
지난 10월,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에 문을 연 한국타이어 테크노돔. 2만9139평의 이 거대한 연구단지는 세계적 건축 회사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Partners)가 한국에 지은 최초의 기념비적 건물이다. 특히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자재만 사용한 착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 측면에서도 수준급이다. 건물 스스로 태양열과 지열 그리고 빗물 같은 자연을 활용해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에너지를 자체 충당할 수 있고, 연못에 모인 물을 순환시켜 건물의 열을 컨트롤한다. 고성능 절연체와 자연 채광으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 제도 LEED(Leadership in Energy & Environmental Design)의 골드 인증을 받은 테크노돔은 한국타이어가 최첨단 테크놀로지 기업임을 보여준다.





모든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 하는 리젠 빌리지 / ⓒRegen Village

리젠 빌리지 Regen Villages
지속 가능한 건축으로 현재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건 단연 리젠 빌리지다. 미국의 재생주거형 부동산 개발업체 리젠 빌리지와 덴마크 건축설계 사무소 에펙트(Effekt)가 손잡고 만든 재생 마을이다. 리젠 빌리지는 단순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에너지를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에코 커뮤니티다. 개별 주택에는 태양광발전 패널을 설치해 가정에 필요한 전기를 자급하고, 각 가정마다 연결된 온실 네트워크에서 과일과 채소 등을 직접 재배한다. 또 태양광, 지열, 풍력 등으로 친환경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모든 차는 전기차로 마을 전체가 공유하며 필요할 때마다 돌아가며 이용한다. 자연과 생산, 소비를 모두 마을 내에서 해결하는 ‘진짜’ 지속 가능한 구조인 셈. 첫 번째 모델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인근의 알미러 시 교외에 100가구로 구성한 자족형 마을로 2017년 하반기에 완공 예정이다.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 축구 클럽이 계획 중인 나무로 만든 세계 최초 축구장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 축구 클럽 The Forest Green Rovers’ Football Club
영국 내셔널 리그의 세미프로 팀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는 지난해에 영국 네일스워스에 새 홈구장 건립 계획을 밝혔다. 전 세계의 50여 개 업체가 공모에 참여했고, 자하 하디드 건축팀이 제시한 에코 파크가 최종 낙점되었다. 약 1400억 원을 투자해 5000여 석 규모로 짓는다고 알려진 이 축구장은 시공 전부터 화제 만발이었다. 경기장 전체를 나무로 짓는 최초의 축구장이기 때문이다. 보통 축구장은 탄소 배출의 4분의 3 정도가 자재에서 비롯하는데, 탄소 배출량이 매우 적은 나무만 사용해 친환경적 경기장이 될 전망이다. 또 지붕을 투명한 막으로 덮어 주변의 초원 풍경과 어우러지도록 할 예정이니 가장 자연친화적인 축구장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1 나무로만 지어 숲속의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홀리데이 캐빈 / ⓒRRA
2 조립식 모듈로 짓고 각 모듈에 나무를 심은 FPT 대학

Natural Architecture
일본 건축가 구마 겐코는 책 <자연스러운 건축>을 통해 현대건축과 자연의 관계성 상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름다움만 중시하는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건축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연과 접속하는 방법을 어필한다. 예를 들어, 그는 쌀 창고를 돌 미술관으로 재건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벽돌이나 돌을 쌓아 올리는 대신 아시노 마을 뒷산에서 얻을 수 있는 아시노석을 이용해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했다. 이렇게 자연적 소재를 사용하고 주변 환경을 건축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자연 건축은 거대한 빌딩이나 공공 프로젝트보다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건축 사무소 이스튜디오 보라치아(Estudio Borrachia)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카사 데 마데라(Casa de Madera)라는 목조 주택을 지었다. 이들이 나무 소재를 사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주위에서 쉽게 얻을 수 있고, 운반이 용이해 빨리 집을 건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5개월 만에 집을 완공했다. 나무 집은 키 큰 나무가 울창한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며, 통풍이 잘되고 그늘진 곳에 집을 지어 인위적으로 온도를 조절할 필요가 없어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서쪽으로 300km 떨어진 뢸달(Røldal) 계곡에는 가족 휴양지 홀리데이 캐빈이 있다. 자연과 환경을 중시하는 노르웨이 건축가 레이윌프 람스타트(Reiulf Ramstad)의 작품. “잘 지은 건물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건물입니다. 건축가에게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죠.” 큰 건물을 지으면 주변의 자연을 더 많이 훼손할 것을 우려해 경사진 면을 활용해 두 채의 건물을 올렸다. 이 집 역시 나무로만 지어 숲속의 오두막 같은 형태다.
녹지 감소와 높은 기온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자연을 주목하기도 한다. 싱가포르는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다. 현대건축가들은 이곳에 건물을 짓는 일은 24시간 에어컨이 필요한 유리 상자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킹 앨버트 파크(King Albert Park)에 위치한 그린 킹덤은 3층 구조의 주택으로 모든 층을 직사광선을 피해 설계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방을 배치해 에어컨 사용량을 줄였다. 2층에 위치한 침실 한쪽 벽면은 나무 스크린으로 만들었는데, 지그재그 방식으로 여닫을 수 있어 수동적인 온도 제어가 가능하며 밖에서 보면 지붕을 나무로 지은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아열대기후인 베트남 하노이에도 풍부한 햇빛과 바람 등 자연의 요소를 들인 건축물이 있다. 베트남의 그린 건축 사무소로 알려진 VTN의 최근 프로젝트인 FPT 대학이 그것이다. 네모난 모듈 하나하나가 조립식으로 이어지는 이 독특한 건물은 각 모듈에 나무를 심어 아열대의 뜨거운 열기가 창문에 직접 닿지 않도록 했다. 이 나무들은 보기에도 싱그러울 뿐 아니라 환경에 대한 자각을 유도하고 자연과 인간이 끊임없이 소통하게 한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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