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을 하는 지금은 2020년

옻칠을 하는 지금은 2020년

엘르 2020-01-26 17:00:00 신고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여분의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었다. 서울의 몇몇 기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통 공예를 가르친다는 소식을 접하고 솔깃했다. 그중 옻칠이 마음에 박히듯 눈에 띄었다. 내가 일상에서 즐겨 쓰는 물건 중 옻칠한 기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반, 쟁반, 함, 차망 등. 유리처럼 투명한 광 아래 짙고 깊은 색을 띠는 옻칠 기물은 내게 이따금 이를 만든 장인을 상상하게 했다. 특히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연대, 작자 미상의 소반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언젠가 손을 봐야 했다. 순간 상상했다. 옻칠을 배워 소반을 직접 수리하는 내 모습을. 늘 그려온 상상 속 주체가 내가 돼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시무형문화재 교육전시장에서 여는 수업은 시에서 수업료를 지원하여 재료비만 내면 됐다. 잃는 셈 쳐도 될 정도로 적은 금액에 부담 없이 수강 신청했다. 한편으로는 꼬박꼬박 떼이는 세금을 이제야 누린다는 보상심리도 있었다. 그런데 옻칠에는 다른 공예와 구별되는 특수한 지점이 있었다. ‘옻’이라는 피부염을 일으키는 강력한 항원을 지닌 진액을 활용한다는 점. 옻 중독, 옻 알레르기를 흔히 일컫는 ‘옻독’을 한 번쯤 들어봤을 터. 옻독은 체질에 따라 평생 항체와 내성이 생기지 않으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년간 옻나무를 넣고 끓인 오리백숙을 먹어왔으며 그때마다 별 반응이 없었던 터라 괜찮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첫 주부터 독이 잔뜩 올랐다. 옻칠 수업을 들은 며칠 후 피곤한 상태에서 술을 마시는데 평소보다 몸이 더 빨리 달아오른다 싶더니 작업하며 옻이 스친 팔이 가렵기 시작했다. 헬게이트를 연 기분이었다. 실제로 얼굴이 헬보이 같기도 했고. 벌겋게 달아오른 표피에 좁쌀처럼 작고 노르스름한 수포가 삽시간에 퍼졌다. 절망하여 밤새 치료 방법을 찾다가 다음 날 해가 밝자마자 바로 병원에 달려갔다. 의사는 두 팔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키보드를 두들기며 건조한 투로 물었다. “항문은 괜찮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안이 벙벙했고, 침묵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질문한 의도를 묻자 “항문이 우리 피부 중 가장 연하다’며 ‘옻독이 연한 피부에 많이 오른다”고 설명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곳은 괜찮다고 답했다. 그런데 의사가 물러서지 않고 재차 물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히 말하라며. 항문의 안부를 묻는 대화는 내가 원망 섞인 눈길로 의사를 째려본 후 겨우 갈무리됐다. 약 꾸러미를 받아 나오면서도 나는 의사가 팔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공기에 노출되지 않는 어둡고 은밀한 그곳의 안부를 물은 이유가 못내 의아했다. 혼자 한참 고민하다가 번뜩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21세기에 옻독이 올라 피부과를 찾는 환자 중 나처럼 옻칠이 원인인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 옻닭, 옻오리 백숙을 먹고 올랐겠지. 그러니 몸속에 들어간 독이 기어 나오며 항문에 독을 옮기는 모양이다. 나는 의사와 같은 의심을 품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내 항문은 안녕하다고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어댔다. 곧 다가올 위기는 알지 못한 채.
다행히 항문은 안녕했지만, 옻독으로 일상이 영 괴로웠다. 조금만 피곤하거나 술을 마셔 간에 무리가 가면 어김없이 수포가 올라 가렵고 퉁퉁 부었다. 한동안은 너무 심해 무 알코올 맥주를 찾다가 임신했다는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관둘까, 고민했다. 실제로 옻독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하고 도중하차한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런데 관두기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옻칠 작업은 내가 상상한 것만큼 멋있거나 대단하지는 않았다. 사포질이 대부분이었다. 우선 나무 그릇에 있는 미세한 구멍을 메우기 위해 흙 가루를 개운 토분을 바른 후, 사포질로 매끈하게 만든다. 사포질을 두어 시간 하다 보면 조금 전 토분을 바른 자신을 찾아가 멱살을 잡고 싶어진다. 칠을 올리기 시작한 후에도 칠이 마르면 매번 사포질하며 표면을 매끄럽게 한 후 덧칠한다. 10분짜리 칠을 위해 2시간 가까이 사포질을 하는 격이다. 최근 들어 손끝이 아린데,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사포질하다가 피부가 쓸린 것. 손가락을 같이 갈아 피를 본 적도 있었다. 돈 내고 시간 들여 하는 뻘짓이 이런 거구나, 가끔 한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묘하게 몰입됐다. 특히 더디게 느는 속도가 나를 더 감치고 안달나게 했다. 동작을 몸으로 익혀 체화하는 예체능이 대부분 그렇듯, 1년 배웠다고 생색 내기 무색할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었다. 무엇이든 눈치껏 빨리 익히고 금방 싫증 내는 내게 옻칠은 먹구름 속을 걷는 것처럼 오묘하다.
볼품없고 투박하던 나무 그릇에 칠을 올리고 깎아 내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연마하고 광을 낸다. 그러면 어느 날 나무의 물성이 유리로 바뀐 듯 맑고 투명하며 가벼워 보인다. 가끔 정말 바탕이 된 물체가 유리라고 착각할 정도다. 나무가 뒤틀리지 않도록 삼베를 붙이고 칠하기도 하는데, 듬성듬성하고 우둘투둘한 삼베의 짜임새에 칠이 오르면 또 다른 기품이 깃든다. 지금은 멋을 위해 옻칠 기물을 많이 활용하지만, 고대에는 옻칠이 필수였다. 이 땅에 산이 많아서인지 집부터 작은 기물까지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그런데 나무는 물과 불, 빛, 벌레에 약했다. 공들여 만든 물건을 오래 쓰려면 무엇으로라도 감싸 보호해야 했다. 이때 옻만 한 게 없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독한 옻은 내염, 내열, 방충, 방수, 절연, 항균 효과가 있다. 그리하여 모든 목재 기물에 옻칠을 했다. 한반도에서 옻칠이 발달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옻칠을 배운 지 1년이 되니 선생님뿐 아니라 함께 배우는 학생들과 꽤 친밀해졌다. 사실 동갑인 선생님을 제외한 학생들은 모두 50~60대다. 평소 친분을 쌓을 만한 나이대가 아님은 분명했다. 이분들은 내가 그나마 젊고 최신 정보에 밝다는 이유로 나를 요리조리 잘도 이용했다. 평소 같으면 발끈했겠지만, 나이 차도 크고 정이 쌓여 그러려니 한다. 한번은 선생님이 옻닭백숙을 해주겠다며 학생들을 공방으로 불렀다. 덜컥 겁이 났다. 옻독이 오른 상태에서 옻닭을 먹었다가 무슨 변을 당하는 게 아닐까. 선생님은 불안해 하는 나를 안심시키며 혹시 모르니 항히스타민제를 한 알 먹고 오라고 했다. 나는 옻독 대선배의 말을 믿고 옻닭에 손을 댔고, 그날부터 말 못할 사정이 생겼다. 의사가 그렇게 걱정한 부위에 변고가 생긴 것. 며칠 밤 침대에서 울부짖으며 선생님을 원망했다. 어려서부터 운동에 취미가 없고, 여럿이서 몰려다니는 일을 즐기지 않았다. 40년 가까이 사람을 사귀고, 10년 넘게 회사 생활하면서도 몰랐다. 내가 협동심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마 회사에서는 팀원들과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행동했고, 일상에서는 동류의 사람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몰랐을 터. 예닐곱 명과 옻칠 수업을 들으며 내 심각한 결핍을 처음으로 직면하고 고민했다. 폭넓은 연령대만큼 서로 다른 사람들과 대단한 명분 없이 연대하며 비로소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나를 돌아본 것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공예 분야는 ‘킨츠키’다.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일본 기술이다. 국내에서 차나 공예를 다루는 몇몇 문화 공간에서 일본 선생을 모셔와 고가의 수업료를 받고 가르친다.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단순히 킨츠키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친한 학생 분들과 대화하다 보니 따로 배우지 않고 당장 우리가 가진 기술로도 충분히 흉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옻칠과 금속공예에 능한 우리나라에 독자적인 도자 수리 기술이 없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자 수리 기술을 굳이 일본어로 부르는 행위가 못마땅했다. 우리는 도자 수리 기술과 관련한 문헌을 찾고 이를 우리만의 기술로 재현하자고 뜻을 모았다. 고작 옻칠 1년 차의 새내기 주제에. 아무튼 수업 끝나고 어디서 막걸리를 마실지 논하다가 1년 차가 되니 이렇듯 건설적인 상상도 해본다. 남편은 수업이 있는 수요일이면 아침부터 부산 떠는 내 모습을 못마땅해 한다. 돈도 안 되는, 쓸모 없는 일에 힘 뺀다고 핀잔하며, 가끔 “그래서 그걸로 뭘 할 건데”라며 따져 묻기도 한다. 나는 그때마다 모든 일이 꼭 목적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 동안 완전히 몰입하여 내가 주체가 된 창작 활동을 하는 행위 자체가 충분히 목적성을 가진다. 사포질에 몰입하여 땀 흘리고 돌아오는 길에 얽히고설킨 원고의 실마리를 풀기도 한다. 한 할아버지 학생이 그랬다. 우리와 달리 일본이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이유는 당장 성과를 낼 수 없는 분야에도 매진하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라고. 또 혹시 아는가, 이러다 덕업 일치 할지. 오늘도 난 칠을 올린 그릇을 사포질하며 나를 한 겹 벗겨낸다.


사진 우창원 글 이주연 에디터 김아름 디자인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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