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폼장] "어디에 있든, 어떤 사람이든, 넌 살아갈 권리가 있어" 

[지대폼장] "어디에 있든, 어떤 사람이든, 넌 살아갈 권리가 있어" 

독서신문 2020-01-27 12:55:45 신고

[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나는 여자로 태어났다. 그것이 사실이다. 나는 스스로 남자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말이 되는 것 같았다. 타고난 신체라는 복잡한 문제가 나를 찔러 대기 시작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다. 사람들은 나의 남성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에, 내가 구축한 남자의 성(城)에, 내 짧은 머리에 그 청사진이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모든 답을 아는 것처럼 굴고 싶지는 않다. <25쪽> 

남자들이란.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왜 이 말로 감정을 폭발시켰는지 이해했지만, 내 꿈속의 수염 난 남자와 이 말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플라스틱 블라인드의 틈새로 빛이 강하게 새어 들어올 무렵, 내 팔다리가 무거워지더니 나는 잠이 들었다. 아버지의 실패를 이해하려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나는 또한 가장 커다란 유령과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내 안에 완전히 망가진 끔찍한 것이 숨어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68쪽>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는 것처럼 이야기도 진공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제는 내게 소용 없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필요할 때 본능적으로 나서서 일을 처리해 준 것(로이가 내게 저지른 짓을 대신 자세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해 준 것이나, 아예 로이를 죽여 버릴까 고민했던 것)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내 힘으로 혼자 서는 남자가 되려면, 어머니의 해석이 끼어들지 않은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169~170쪽>

나는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었다. 나는 상대를 괴물로 만들 생각이 없는 남자였다.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4월의 그날 밤 내 등에 총이 겨눠진 것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 줄곧 내가 좇던 기분이 바로 이거였다. 나는 시간을 앞지를 수 있고, 내 몸이 나를 해방시키게 할 수 있고, 내 몸의 본능을 믿을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알 수 있었다. <196쪽>


『맨 얼라이브(Man Alive) 남자를 살아내다』
토머스 페이지 맥비 지음 | 김승욱 옮김 | 북트리거 펴냄│240쪽│15,000원

* 지대폼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폼나는 문장이라는 뜻으로 책 내용 중 재미있거나 유익한 문장을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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