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억대 넘보는 '수련'까지…인상파 걸작 어떻게 예루살렘에 모였나

900억대 넘보는 '수련'까지…인상파 걸작 어떻게 예루살렘에 모였나

이데일리 2020-01-28 00:35:00 신고

클로드 모네의 ‘수련연못’(1907). 하루 온종일 태양빛을 좇아 캔버스를 바꿔 세우던 모네는 결국 시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수련연못’은 시력을 잃기 전에 완성한 작품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스라엘박물관의 대표적인 인상파 ‘컬렉션’으로 한국에 처음 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세상은 그를 ‘인상파의 거두’라 한다. 프랑스 작가 클로드 모네(1840∼1926) 말이다. ‘인상주의’란 말은 그의 붓끝에서 처음 나왔다. ‘인상, 해돋이’(1872)란 작품에서였다. 도시풍경이 아스라한 바닷가에 노젓는 어부 머리 위로 떠오른 햇살의 색을, 아니 빛을 옮겨놨었다. “빛은 곧 색채고 색채는 곧 빛”이란 말이 그즈음 나왔다. 그 원칙은 그이의 평생을 좌우했고.

그러던 그가 42세, 당시 10만프랑(약 1억 1000만원)짜리 복권에 당첨되며 파리 외곽에 만든 지베르니연못은 또 하나의 결이 다른 ‘빛의 역사’를 쓰게 했는데. 바로 ‘수련’ 연작의 탄생이다.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따라잡은 빛의 변화는 수련의 꽃잎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하루 온종일 태양빛을 좇아 캔버스를 바꿔 세웠다. 시력에 치명적 손상이 생기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얻은 빛의 그림 ‘수련’의 최고가 기록은 ‘활짝 핀 수련’(1914∼1917)이 가지고 있다. 2018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자선경매에서 8470만달러(낙찰 당시 약 912억원)에 팔렸더랬다. 참고로 모네의 작품을 통틀어 최고가는 지난해 뉴욕 소더비경매에서 1억 1070만달러(약 1318억원)에 팔린 ‘건초더미’(1890∼1891)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의 젊은 여인들, 햇빛풍경’(1894). 인상주의가 견고해진 이후의 작품이다. ‘건초더미’를 주제로 도드라질 만큼 두껍게 색을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세계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걸작 퍼레이드. 모네의 그 행진이 서울로 방향을 잡았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펼친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박물관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걸작’ 전이다. 전시명이 가리키듯 모네만의 단독전은 아니다. 에드가 드가(1834∼1917), 폴 세잔(1839∼1906),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폴 고갱(1848∼1903) 등 이미 대중적인 인상주의 화가를 앞세워 카미유 피사로(1830∼1903), 아르망 기요맹(1841∼1927), 막시밀리앙 뤼스(1858∼1941), 폴 시냐크(1863∼1935), 피에르 보나르(1867∼1947) 등 프랑스 작가, 여기에 자주 접하기 어려운 막스 리베르만(1847∼1935), 레세르 우리(1861∼1931) 등 독일 작가, 차일드 하삼(1859∼1935) 등 미국 작가까지 대거 들여놨다.

폴 세잔의 ‘강가의 시골저택’(1890). 독학으로 평생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간 세잔은 다른 인상파·후기인상파 작가들에 비해 독특한 상징적인 요소로 두각을 나타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덕분에 막연하게 선을 그어왔던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의 스펙트럼을 크게 넓혔는데. 찰나의 순간을 잡아낸 붓터치가 단순히 풍경만이 아니란 걸 보여준 덕이다. 물과 빛의 반사, 도시풍경과 자연풍경, 정물과 인물, 거기에 판화까지. 하나의 미술사조라 보기 힘든 광범위한 색과 빛의 향연이라고 할까.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106점이지만 유독 눈길을 끄는 한 점이 있으니. 모네의 그 ‘수련’ 연작 중 한 점인 ‘수련연못’(1907). 그토록 햇빛을 좇다가 시력을 잃게 된 모네가 그전에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란다. 한국은 처음 찾았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레스트링게의 초상화’(1878). 친구 외젠 피에르 레스트링게를 그렸다. 얼굴은 섬세하게 묘사하되 손과 배경은 자유로운 획으로 그어낸 분방한 기법이 돋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왜 이스라엘 컬렉션인가

사실 모네를 비롯해 세잔·르누아르, 또 빈센트 반 고흐 등 한국인이 특히 좋아한다는 프랑스 인상파 작품의 한국행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간 못 봤던 작품을 몇 점이나 더 들이느냐가 관건이었을 뿐. 그렇다면 이제껏 봤던 그 전시와는 뭐가 다른가.

눈길을 끄는 한 가지가 있으니 ‘예루살렘의 이스라엘박물관’이란 거다. 이번에 나들이한 106점 모두는 이스라엘박물관 소장품이다. 2000년 역사를 가진 사해 사본 등 성서·유물·고고학을 앞세워 현대의 유명 회화·조각작품까지 이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작품 수는 무려 50만점. 가히 세계 문화·예술의 주요 줄기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한 점은 작품을 컬렉션한 경로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미술애호가들의 기부·기증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소장한 작품값은 1965년에야 문을 연, 국립도 아닌 일개 문화기관이 가질 규모를 훌쩍 뛰어넘으니까.

폴 고갱의 ‘개가 있는 풍경’(1903). 세상을 떠난 해에 그린 작품이다. 이국적인 색감과 대담한 구성이란 독보적인 특성 위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상징을 곳곳에 들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전시작을 이끌고 내한한 시반 에란 레비안 이스라엘박물관 순회전시책임자는 “유럽 국가가 아닌 이스라엘의 박물관이 방대한 인상주의 컬렉션을 자랑하게 된 이유는 문화·예술로부터 강건한 이스라엘을 꿈꾼 많은 이들의 기부와 기증 덕”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사로의 유화 7점, 고갱의 유화 5점을 비롯해 인상파 화가들의 판화·소묘까지 보유하고 있다”며 “박물관이 판화·소묘를 갖춘 경우는 거의 없는 만큼 세계 다른 박물관과는 다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참고로 모네의 ‘수련연못’은 폴란드 출신 유대인 영화제작프로듀서 샘 스피겔(1901∼1985)이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후기인상주의에서 빠뜨리면 섭섭한 고흐의 작품이 한 점도 함께하지 못해 진짜 섭섭한 전시가 된 것. “우리가 소장한 고흐의 작품들이 다른 곳에서 순회전 중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폴 시냐크의 ‘예인선, 사모아의 운하’(1901). 1884년 조르주 쇠라와의 만남을 통해 터득한 점묘주의의 색채와 기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원색의 모자이크 같은 붓놀림이 독특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조롱이 만든 시대사조…‘인상주의’

“이것은 단지 인상주의에 불과하다.” 이번 전시는 그림이 아니라 선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우호적이 아닌 적대적인. 이는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모네·르누아르·피사로·드가 등이 연 인상파 첫 전시회에 대한 루이 르로이(1879∼1944·미술평론가)의 배배꼬인 평이었다. 특별히 콕 찍어 몰아세운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모네의 ‘인상, 해돋이’. 어딘가 끝이 나지 않은 듯 거칠고 애매한, 이제껏 한번도 보지 못한 그림에 대한 반발이었던 거다. 르로이의 개인적인 생각만도 아니었다. 대중적인 조롱은 한동안 이어졌으니까. 결국 이번 전시는 종내 세상의 눈을 뒤바꾼 인상파 붓질의 정수를 보이겠다는 구성인 셈이다.

레세르 우리의 ‘베를린의 겨울날’(1920s). 인상파 작가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독일 출신 우리가 그린 고전적인 베를린 풍경. 생전에 그는 길거리 풍경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래선가. 시대를 압도하는 유화 명작은 ‘정중동’의 자태로 고고히 빛을 낸다. 모네의 ‘지베르니의 젊은 여인들, 햇빛풍경’(1894)과 ‘아발의 절벽, 에트레타’(1885), 세잔의 ‘강가의 시골저택’(1890)과 ‘강굽이’(1865), ‘햇살을 마주 본 레스타크의 아침풍경’(1882∼1883), 고갱의 ‘개가 있는 풍경’(1903)과 ‘우파우파’(불춤·1891), 르누아르의 ‘레스트링게의 초상화’(1878), 시냐크의 ‘예인선, 사모아의 운하’(1901), 우리의 ‘베를린의 겨울날’(1920s), 뤼스의 ‘노트르담 드 파리, 몽트벨로부두에서 본 전경’(1897)과 ‘무제’(연도미상) 등등. 세잔의 채색석판화 ‘목욕하는 사람들’(연도미상), 르누아르의 에칭 ‘시골의 무도회’(연도미상), 오귀스트 로댕의 드라이포인트 ‘빅토르 위고’(연도미상) 등 희귀 판화는 덤이고. 하지만 이 모두는 그저 나열을 위한 리스트일 뿐. 저마다의 숨은 걸작은 전시장에서 찾아내기 나름이란 뜻이다. 전시는 4월 19일까지.

막스밀리앙 뤼스의 ‘무제’(연도미상). 파리에서 나고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뤼스는 평생 번화한 도시거리와 공장, 노동자의 일하는 모습이 관심거리였다. 살아 움직이는 시대의 풍경을 분할주의적인 붓터치로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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