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폼장] 1990년대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잘못된 길』

[지대폼장] 1990년대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잘못된 길』

독서신문 2020-02-21 11:52:00 신고

[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희생자로 자처하기’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면서 이들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정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가해자들에게 어떤 형벌과 제재를 가할 것 인가만을 화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중략) 이제는 대단한 업적을 성취한 여성보다 ‘남성 중심 사회의 희생물인 여성’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략) 슈퍼우먼은 이제 비정상인으로 간주되고, 심지어는 고통 받는 다른 여성들과의 공동 연대 계약을 저버린 이기적인 특권자로 간주되었다.<17쪽>

이런 식으로 통계 수치를 부풀려 가면서 여성운동을 진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드워킨이나 매키넌처럼 극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결국 여성은 점차적으로 ‘아동’과 같은 사회 신분으로까지 떨어지게 된다. (중략) 영원한 미성년자인 여성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집안의 남자들을 불러대는-옛날의 가부장적 시대의-상투적인 개념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옛날과는 달리 그녀들을 보호할 남자는 이제 없다.<51~52쪽>

바로 여기에 오늘날 새로운 페미니즘의 문제가 있다. 어떻게 진부한 사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여성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할 것인가? 자유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어떻게 본질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남성/여성을 철저히 분리시켜 온 감옥을 다시 짓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의 이원론을 지지할 것인가?<56쪽>

아동의 문제는 곧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남자들에게 아동과 여성은 모두 순수하고도 무력한 희생자들이다. 희생자는 언제나 옳다는 생각에, ‘희생자는 악의 힘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선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추가되었다.<73쪽>

확실하지 않거나 미정인 상태, ‘예’인 동시에 ‘아니오’가 공존하는 상황인 것이다. 종종 모순적이기도 한 이 복잡한 회색지대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리는 차라리 이것을 모른 척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에 관한 이론과 정책에서 무의식이라는 것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151~153쪽>

여성을 방어 능력이 없는 피해자인 어린이로 보는 시각과, 남녀동등성 실현의 필요에 의해 여성을 어머니로 보는 시각, 그 두 시각 사이에서 우리가 그렇게도 꿈꿔왔던 이상형인 자유로운 여성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182쪽>

『잘못된 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지음│나애리‧조성애 옮김│필로소픽 펴냄│224쪽│14,500원

* 지대폼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폼나는 문장이라는 뜻으로 책 내용 중 재미있거나 유익한 문장을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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