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여행, 헬프엑스(HelpX)로 떠나다

교환여행, 헬프엑스(HelpX)로 떠나다

브릭스 2020-03-31 15:42:06 신고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모모와 함께 헬프엑스를 #1

나는 88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셋을 맞이하는 여성이다. 스물아홉 살 때 나는 첫 여행을 떠났고, 헬프엑스(HelpX)로 128일 간 이탈리아, 영국 런던, 독일, 스페인을 여행했다. 그때의 일기를 바탕으로 2년 전 『모모야 어디 가? : 헬프엑스로 살아보는 유럽 마을 생활기(정은문고, 2018)』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헬프엑스로 여행을 한다는 건 무슨 말일까? 헬프엑스는 ‘도움’을 뜻하는 헬프(Help)와 ‘교환’을 뜻하는 익스체인지(Exchange)의 X를 결합한 단어다. 전 세계에서 호스트를 찾아 그의 집에 머물면서 하루에 4~5시간의 일을 도와주고,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교환여행’ 방식이다.

그렇다면 호스트는 어떻게 찾느냐고? www.helpx.net에 들어가 보면 전 세계 6대륙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호스트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예컨대 ‘유럽’ 섹션에 들어가 보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대는 나라들이 펼쳐진다. 이탈리아,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체코, 터키, 노르웨이……. 호스트들의 자기소개와 사진 등을 보고 그들에게 연락할 수 있다. 여행자는 하루에 약간의 일을 도와주기만 하면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선생님 오리에따·안젤로 부부와 천방지축 아들들에게 2주간 한국인 주방장이 되어 한국식 저녁 메뉴를 선보였던 이야기, 아시시 옆 산속 시인의 집에서 하루에 네 번 대형 삽살개를 산책시키며 빈집을 지켰던 이야기, 런던의 공동체 마을에서 네 살 꼬맹이를 돌보고 마을 축제에 참가한 이야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의 공동체 마을 이야기, 독일 아름다운 작은 마을의 장애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장애인의 성(性) 문제에 대해 배운 이야기, 그리고 스페인 깊은 산 속의 요가인 사이먼의 오두막에서 느낀 이야기. 그 모든 경험을 나는 헬프엑스를 통해 얻었다. 나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았고, 사람들이 얼마나 비슷하지만 또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았으며, 앞으로 내가 가보아야 할 곳이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그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지 깨달았다. 헬프엑스로 여행하며 보고 듣는 ‘삶의 이야기’들은 그 어떤 공부보다 나를 단단하고 또한 유연하게 만들어주었다.

페루에서 감자깎기

교환여행을 하는 이를 해외에서는 Volunteer라고 부르고 헬프엑스에서는 헬퍼(Helper, 도우미)로 칭하는데, Volunteer를 ‘봉사자’라고 번역하면 그 느낌이 살지 않는다. ‘무보수’라는 면에서는 우리가 가진 ‘봉사’의 개념과 같지만 교환여행에서는 반드시 ‘숙식’을 교환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회사 생활 열심히 하고 월급을 받아 무엇을 하는가, 결국 기본적으로는 의식주, 그러니까 잘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한다. 헬프엑스는 그 과정에서 ‘돈’이 빠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서 나는 돈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돈이 꼭 필요한가? A↔돈↔B의 관계에서 ‘돈’이 빠지고 A와 B의 직접 교환이 일어날 수 있다면, 돈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그 자체의 보수는 없지만, 헬프엑스는 여행 경비를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는 세계여행방식임에 틀림없다. 경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숙박비와 식비니까 말이다. 유럽을 5개월 여행하는 동안 내가 쓴 비용은 한 달에 50만원 정도였고, 지금 남미에서는 한 달에 많아도 20만원을 넘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페루, 아니 남미에는 헬프엑스를 하더라도 약간의(하루 7~8천 원 정도가 평균인 것 같다.) 비용을 내달라는 호스트들이 많은데, 지금 내가 있는 콜롬비아의 한 친환경 농장은 그마저도 받지 않는 순수한 ‘교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르는 한 달 가량은 10만원도 채 들지 않았다. 

그러나 단지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방법으로만 헬프엑스를 대한다면, 그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고도 단지 유리를 자르는 도구로만 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헬프엑스는, 단연코 그 이상의 무엇이다. 서툴지만 내가 느낀 그 ‘무엇’을 다른 이들도 느끼기를, 온 마음으로 바라며 조심스레 이 글을 시작한다.

콜롬비아의 산 속에서

다시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서른셋이라는 나이는 스물아홉과는 달랐다. 아예 결혼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잖니, 출산하려면 더 늦으면 힘들단다, 그리고 네가 여행 다녀오면 이만한 일자리를 구하겠니, 얼마 안 되는 식구가 꼭 이렇게 떨어져 살아야겠니, 함께 오순도순 모여 살면 얼마나 좋니, 살면 얼마나 산다고 - 결국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나를 위해서 해주시는 말들, 그리고 분명 일말의 진실이 담긴 그 말들을 정중히 사양하고 여행을 지속하는 것은, 미뤄왔던 내 삶의 방향에 대한 결정까지도 앞당겨 요구하는 것이었다. 

내 나이가 서른셋이 될 동안, 내 아버지와 어머니도 꼭 그만큼 나이가 드셨다.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는 예순 초반의 나이는 머리로는 인생의 경험을 축적하고 몸으로는 아직 부지런히 활동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녹록하게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삼십, 사십, 오십 대를 거쳐 쌓아온 어떤 분야에서의 지혜와 경험은 나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평생을 아이들의 ‘대안교육’과 스스로의 배움에 매달리던 나의 아버지는 방향을 바꾸어 대형버스 운전사, 제설차 운전수, 지방 산림청 기간제 일자리 등을 구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수없이 거절당했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한번 일을 시작하면 특유의 성실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 내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시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파릇한 젊은이도 수많은 거절과 계속되는 구직활동은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인데, 인생의 황혼기에 서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살아온 삶 자체를 회의하게 하는 독약과 마찬가지다. 

내가 한국에서 살던 성미산 공동체 마을

그러나 부모님 세대는 부모님 세대의 인생이 있다고 읊조리며, 나는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떼고 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기꺼이 그 ‘생활’의 짐을 나누어져야 마땅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은 더 나의 길을 가고 싶다고 몸부림치고 있다. 

세상에 유일한 길은 없다고 믿는다. 설령 세상의 여러 길들이 대체로 하나의 방향, 그러니까 모두들 나이가 들고 안정을 추구하는 그 방향으로 수렴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길은 오른쪽으로 가기도 하고 왼쪽으로 가기도 하고 나누어졌다가 합쳐지기도 한다. 길은 여러 가지다. 그래서 나는, 수없이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하면서도 발걸음을 떼었다.

이 여행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돌아가는 티켓도 없고, 다음 행선지도 알 수 없다. 모아놓은 돈이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가 나의 유일한 계획이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을 따라, 강물이 흐르듯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흘러 가다보면, 어디에선가 무엇을 만나고 나는 그만큼 커 있겠지. 그래서 나는 아직은 여행을 하고 있다, 헬프엑스로.

글/사진 김소담(모모)

스물아홉, 외국계 기업을 그만두고 128일 동안 헬프엑스(HelpX)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현지 호스트의 집에 머물며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 받는 이 헬프엑스 여행으로 인생의 방향이 희한하게 바뀌어 버렸다. 현재 1~2년 계획으로 두 번째 헬프엑스 여행을 다니는 중이다. 헬프엑스로 여행했던 경험을 살려 『모모야 어디 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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