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원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콜센터 상담원이 글을 쓰게 된 이유

비전비엔피 2020-04-03 10:01:02 신고

현대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관리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야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 있겠지만,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퇴근해서 집까지 갖고 가거나 며칠이 지나도록 마음에서 털어내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든지 오래 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콜센터 업무에서 가장 적합한 성격은 무던함이 꼽히곤 한다.
 
예민한 성격인 나는 처음엔 콜센터 업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사 밖을 나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의외로 잘 맞는데?’ 하며 다니다가 3년쯤 되었을 때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진상 고객은 지긋지긋하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무기력해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커지고 마음에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자존감은 갈수록 바닥으로 떨어졌고 항상 우울했다. 고객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기에 주위 사람들과 마찰이 생겼다. 팀장이나 부팀장이 뭐만 시키려고 하면 그걸 왜 저한테만 시키세요?”, 다른 사람 다 하는 거면 저도 할게요.” 같은 말을 내뱉으며 엇나갔다. 말 잘 듣는 나만 더 부려먹는 것 같아 괜히 분해서였다. 그나마 잘 지내던 동료들과도 삐거덕거렸다. 만날 헤헤거리고 다니니 우습게 보는 것 같고,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다는 생각에 짜증을 부리는 일이 많아졌다. 화가 가장 일어나는 순간은 예상외로 점심시간이었다. 동료의 작은 농담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발끈해서 식사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상처를 주는 일이 생겼다. 내가 외면해버린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에 쌓여 망가지고 있었다.

온갖 사람을 상대하며 멘탈이 강해진 게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마주하기 힘들어 회피하는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남을 배려하던 내 장점까지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아 이곳에 남은 정마저 떨어졌다. 이렇게나 망가진 나를 어떻게 구제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그 당시에도 퇴사 생각이 났지만, 회사를 관두더라도 지금 상태에서 그만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부터 먼저 달라져야 퇴사를 하고서라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처음 시작한 게 명상이다. 우연히 스트레스 관리에 명상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명상 앱을 활용해 자기 전과 아침에 일어나서 10~15분 정도 명상을 했다. 욱해서 동료에게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올 것 같으면 마음속으로 30초를 세며 멈췄다. 불안한 마음이 생길 때는 점심시간에도 명상을 했다.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효과는 분명 있었다. 동료들의 작은 농담에도 발끈하던 전과 달리,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한없이 우울해지고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는 일도 줄었다.

그다음으로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도움이 된다는 마그네슘과 비타민 D를 챙겨 먹었다. 위약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마음의 동요가 줄어든 듯했다. 차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됐다. 회사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멍한 기분이라 아침, 점심마다 커피를 마셨다. 이상하게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면 매번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카페인 중독 현상이라고 했다. 짜증, 불안, 신경과민과 같은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커피는 하루 한 잔으로 줄였다. 대신 카모마일, 라벤더 차를 마시면서 심신 안정을 도왔다.
 

 무엇보다 마음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숭례문학당을 다니며 필사 수업을 듣고, 100일 글쓰기 수업을 끝마쳤. 글을 쓰는 동안 내 마음을 차근히 바라보고, 막연하게 느낀 불안과 결핍, 아픔을 대면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불안은 나를 삼킬 듯이 크지만, 직접 보려고 노력하면 불안의 크기는 작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짧지 않은 100일간 나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성실히 글쓰기를 마치며 자부심이 한 뼘 자라난 기분이었다. 이때 시작한 글쓰기가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콜센터 이야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회사 사람들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하는 말이 있다.
 
콜센터가 만병의 근원이며, 퇴사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말. 아마 직장이든 어디에 속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현실의 문제로 당장 퇴사를 할 수 없던 나는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았다. 게임 또는 운동, 여행 등 자신에게 잘 맞고 유익한 취미생활을 찾아보자. 스트레스에 짓눌리지 말고,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모른 척하지도 말자. 적당히 달래고 때론 져주기도 하며 스트레스와 동고동락하면서 우리는 모두 잘 살아야 하니까.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저자 박주운

출판 애플북스

발매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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