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가 만든 립스틱

에르메스가 만든 립스틱

엘르 2020-04-04 16:00:00 신고


립스틱이 하나의 오브제로 기능한다는 걸 명확히 보여주는 루즈 에르메스 디스플레이.

위트 있는 뉘앙스로 에르메스의 레드 의상들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소재’라는 키워드를 풀어냈다.

오래전에 방송된 미국 TV 시리즈 〈원더우먼〉. 빌런들을 무찌르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출동하기 전, 원더우먼(린다 카터)은 언제나 립스틱을 바르곤 했다. 그녀의 손짓과 표정에서 단호한 의지와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영화 〈만추〉에서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특별 휴가를 얻은 애나(탕웨이)는 트렌치코트를 벗어던지고 화려한 퍼 코트를 걸친 채 자유를 만끽한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레드 립스틱을 강렬하게 바른 그녀의 얼굴에서 관객들은 ‘죄수’가 아닌 ‘여자’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처럼 ‘립스틱’은 입술에 컬러를 입히는 단순한 과정 그 이상의 수많은 레토릭을 품고 있다. 립스틱 뚜껑을 여는 동작부터 바를 때 향하는 눈길, 컬러를 입은 입술이 만들어내는 표정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내면 상태까지, 뭐라 콕 짚어 설명할 수 없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행간의 의미들. 그 순간적이면서도 영원하고,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립스틱 속 무한한 은유들을 ‘제스처’라는 하나의 단어로 압축해 손에 잡힐 듯 펼쳐 보이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에르메스다. 에르메스 최초의 뷰티 메띠에(M`etier)의 탄생 그리고 메띠에의 첫 번째 오브제인 ‘루즈 에르메스’의 론칭을 기념하는 자리에 〈엘르〉가 함께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함께 루즈 에르메스의 다양한 컬러를 테스트해 볼 수 있었던 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함께 루즈 에르메스의 다양한 컬러를 테스트해 볼 수 있었던 존.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e`s)가 오픈한 마구용품 전문점에서 시작된 에르메스. 19세기 주요 이동수단이던 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도 말을 모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선사하는 퀄리티로 마구용품 시장에서 위상이 높았다. 현재의 에르메스 모습에 가까워지기 시작한 건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모더니즘 사조가 등장하고 말 대신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여성들이 운전하면서도 쉽게 가방을 열 수 있도록 지퍼 달린 핸드백과 스포츠, 여행을 즐기는 대담한 여성을 위한 가죽 amp; 실크 용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 이처럼 에르메스는 여성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는 브랜드이자 제품을 통해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 “에르메스는 문화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삶 속에 녹아 있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최상의 상태로 드러내주는 것, 마치 사람의 속 깊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가 에르메스입니다.” 파리 건축 amp; 문화재 박물관(Cit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에서 만난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는 아름다움을 대하는 에르메스의 비전과 철학을 이와 같이 설명한다. 현장에 함께한 에르메스 여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 발리 바레(Bali Barret)는 루즈 에르메스의 차별화되는 24가지 컬러에 대해 설명했다. “까레 스카프가 착용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듯, 루즈 에르메스는 겉을 치장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여성성을 표출하는 걸 추구합니다. 궁극적인 여성미를 선사하는 감동적인 컬러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에르메스에게 컬러란 황홀한 열정이자 미묘한 뉘앙스를 캐치해 내는 노하우, 정확한 톤을 찾는 집념이자 하나의 온전한 언어이니까요.” 이를 위해 7만5000여 가지 컬러의 실크 스와치가 과학적으로 관리되는 프랑스 리옹의 에르메스 아카이브에서 개개인의 시그너처 컬러가 될 수 있는 24가지 컬러를 선별했다. 특히 ‘24’는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 샤를-에밀 에르메스(Charles-E`mile Herme`s)가 오픈한 첫 번째 메종의 주소 ‘24 Rue du Faubourg Saint-Honore` ’에서 따와 더욱 의미를 더한다. 바통을 이어받은 에르메스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롬 뚜롱(Je`ro^me Touron)이 텍스처에 대해 부연 설명을 했다. “저는 메이크업 하면 텍스처, 즉 소재가 떠오릅니다. 컬러에 에너지와 섬세함, 특정 마무리감을 선사해 주죠. 피부 역시 고유의 텍스처를 지니고 있어 컬러와 상호작용을 하는 일종의 소재입니다. 에르메스 뷰티는 이를 고려해 컬러 피그먼트와 보습 성분 간의 농도를 선택합니다.” 역시 가죽과 실크의 장인다운 면모다. 립스틱 불릿(Bullet) 끝이 날렵하게 커팅된 매트 립스틱은 에르메스만의 도블리스(Doblis)와 복스(Box) 가죽을 연상시키며, 입술에 착 감기는 벨벳 같은 마무리감을 선사한다. 반면 끝이 둥글게 커팅된 새틴 립스틱은 실크에서 영감을 얻어 풍부하고 부드러운 윤기를 자랑한다. 에르메스 슈즈 amp;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가 루즈 에르메스의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오래 지속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아름다움을 형상화했습니다. 여성들이 매일 가지고 다니는 이 작은 오브제의 컬러 블로킹을 통해 시각적인 유희를 느낄 수 있어요.” 골드 메탈 소재와 유광 화이트, 블랙, 오렌지 컬러 등을 블록처럼 조합한 모던한 디자인, 여기에 시즌별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더해지는 리미티드 컬러 블로킹 에디션을 통해 립스틱을 꺼내고 바를 때마다 미학적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립스틱은 알맹이만 쏙 빼내어 또 다른 컬러로 리필이 가능해 ‘지속 가능성’이라는 에르메스의 미래 가치까지 두루 담아내고 있다.

루즈 에르메스를 바른 뒤 미소 짓는 입술을 캐치해 그려주고 있다.

실크와 가죽 등 다양한 레드 컬러의 소재들을 느낄 수 있었던 현장.

모아놓을수록 더 매력적인 루즈 에르메스의 컬러 블로킹 패키지.

‘제스처’라는 키워드를 전달하기 위한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

시즌 한정으로 6개월마다 선보이는 리미티드 컬러를 표현한 현장. 온고잉되는 제품과는 다른, 한정판 배색 패키지에 담겨 출시될 예정이다.

루즈 에르메스를 탄생시킨 4인과의 랑데부가 끝나고 파리 18구에 있는 호텔 파르티퀼리에(Ho^tel Particulier)로 자리를 옮겼다. 앞서 프레스 컨퍼런스를 통해 컬러와 텍스처, 오브제(패키지)라는 키워드를 이해했다면, 이곳에서는 에르메스 뷰티의 핵심 키워드인 ‘제스처’에 대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에르메스의 기원이 된 가죽과 실크 용품 아카이브 전시를 배경으로 아티스트들의 현대무용, 실크와 레더 소재의 붉은색 의상을 입고 벗는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립스틱을 발라볼 수 있는 테스트 존, 립스틱 컬러명이 적힌 종이에 짧은 시구나 글귀를 즉흥적으로 적어주는 스토리텔링 존으로 이어지며 전 세계 프레스들의 탄성을 이끌어냈다. 200년 가까이 역사를 유지해 오며 위트 있는 방식으로 에르메스 문화를 전파하는 엄청난 여유와 브랜드 아카이브, 미학이 너무나도 부러웠던 순간. 지속력, 발색력 등 립스틱의 ‘기능적 측면’을 넘어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는 순간부터 뚜껑을 열고 입술에 댄 채 양옆으로 슬라이딩하는 동작에 담긴, 여자라면 말하지 않아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미묘한 ‘뉘앙스’와 ‘은유’를 어쩜 이리도 명확히 각인시킬 수 있는 건지! “저는 여성들이 메이크업을 하는 동안 자신과 특별한 만남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장소에서든, 어느 순간에서든, 그 시간을 채우고 있던 공기에 즉각적 변화가 일어나죠. 심플하고 세심하면서도, 일상적이고 소중한 이 제스처는 아름다움을 위한 필수적인 제스처입니다. 에르메스만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제스처이기도 하고요.” 현장에서 만난 제롬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루즈 에르메스를 발라본다. 립스틱 오브제가 손끝에 와닿는 감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입술을 물들이는 사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내 안의 감정과 주변 공기에 집중하면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에르메스 제스처’임을 느끼면서 말이다.

보습 효과가 탁월한 립 케어 밤, 입술에 자연스러운 펄 광채를 선사하는 포피 립 샤인 그리고 립스틱. 각 8만8천원, 모두 Hermes.



에디터 정윤지 사진 COURTESY OF HERME`S 디자인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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