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더스] 와불을 찾아 신화 속으로

[마이더스] 와불을 찾아 신화 속으로

연합뉴스 2020-04-05 10:30:02 신고

화순 운주사 와불 화순 운주사 와불

(화순=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헬기에서 내려다본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와불. 2017.7.12 hs@yna.co.kr

비가 몹시 내리던 날 별 생각 없이 찾았던 운주사에서 평생 잊히지 않을 풍경을 뇌리에 새겼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산을 든 채 대웅전으로 향했다. 다른 절과 달리 사천왕이 없고, 일주문에 들어서니 늘어선 탑들이 반긴다. 여태껏 봐왔던 석탑들과 다른 둥근 모양의 석탑이 눈에 띈다. 둥근 바닥 돌에 둥근 돌을 올린 돌탑이다.

그 뒤로는 돌집을 지어 앞뒤로 석불을 모신 탑도 있다. '석조불감'이라고 하는데, 남쪽과 북쪽을 향하고 있는 여래좌상을 집안에 모셔둔 듯하다. 탑과 함께 줄지어 있는 돌부처들은 저마다 얼굴과 크기가 다르다.

와불을 보러 언덕을 올랐다. 발길 닿는 곳곳엔 작은 부처들이 지천이다. 큰 바위를 지붕 삼아 서 있기도 하고, 산비탈 위에도 솟아 있다. 더러는 바위에 기대 서 있기도 하고, 무거운 몸을 주체하지 못해 누워 있다. 아직도 발굴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어딘가에 박혀 있는 돌부처도 지천일 것이다.

드디어 높이 12m, 폭 10m의 와불 앞에 섰다. 돌부처 2기가 나란히 누워 있다. 와불은 처음 본다. 크기가 너무 커 카메라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천 년을 누워 있었을 와불은 빙그레 웃고 있다. 처음에는 세우려고 했는데 어떤 이유로 세우지 못한 게 아닐까?

운주사에는 1천 개의 불상과 1천 개의 탑을 하루 만에 도력(道力)으로 만들었다는 천불천탑 신화가 있다. 그러나 일제와 한국전쟁 등을 헤쳐 오면서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더러는 집을 지을 때 고임돌로 쓰였고, 누군가 죽으면 무덤 앞에 상돌로 쓰였다. 논두렁과 밭두렁을 쌓는 축석으로 쓰인 것도 많다.

누구 하나 돌부처와 석탑에 눈길을 주는 이가 없었다. 발에 채이고 널려 있으니 몇 개 가져간다고 문제 될 게 없는 시절이었다.

험한 꼴을 견디고 남은 게 지금 운주사에 있는 돌부처와 석탑들이다. 지금은 탑 18개와 불상 70개 정도다. 형체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비바람에 씻겨 얼굴이 지워져 어렴풋한 형체만 존재한다.

시간이란 긴 강을 건너오며 상처받고 할퀴어져 스스로 누군지도 모르게 된 돌부처들. 그러나 순박하고 꾸밈없는 이 돌부처들이 있어 운주사를 찾을 때마다 경외의 마음을 갖게 된다.

운주사 탑과 불상들 운주사 탑과 불상들

(화순=연합뉴스) '천불천탑의 성지'라고 불리는 운주사 경내의 하늘을 찌를듯 우뚝 선 탑과 불상들.<저작권자 ⓒ 2009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빗속에서 돌부처들을 만나고 나니 으슬으슬한 추위가 몰려와 차를 마시러 갔다. 대추차를 손에 들고 창밖을 보니 주차장까지 이어진 잔디밭의 돌부처와 탑들에 빗줄기가 더해져 신비롭다. 모든 상념이 사라지고 세상이 멈춘 듯하다.

화순엔 '세량지'라 불리는 무릉도원도 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제방인데, 10m 높이에 50m 정도의 길이다. 산벚꽃이 만발하는 봄엔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저수지에 비친 벚꽃이 수면 위로 솟아오른다. 물이 산벚꽃과 나무, 햇살, 물안개를 버무려 몽환적인 풍경을 내놓는다.

또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든 산과 빛을 버무려 그림을 만들어낸다. 내 그림자는 그저 까만데, 세량지의 그림자는 색을 더하고 신비를 더해 무릉도원을 만든다.

화순읍 수만리에서 안양산까지 이어지는 철쭉공원은 '한국의 알프스'라고 불릴 만큼 경관을 자랑한다. 봄에 철쭉이 활짝 필 때면 산꼭대기까지 울긋불긋 꽃 융단이 깔린다. 온 산을 덮고 멀리서도 유혹하니 가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름다운 마을 숲'에 선정된 연둔리 '숲정이'는 개천을 따라 물가에 심어진 나뭇가지가 동복호수와 어우러져 멋있다. 느티나무, 서어나무, 검팽나무, 왕버들이 섞여 있는데 450여 년 전 하천변에 둑을 만들고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물가를 따라 약 900m나 늘어서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만든다. 쓰러질 듯 하천으로 가지를 뻗은 고목들이 수면에 그림자를 만든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떨어진 잎으로 바닥도 붉게 물든다.

숲정이 근처에는 화순적벽이 있다. 동복댐 상류에서 약 7km에 걸쳐 형성된 절벽이다. 동복댐이 광주시민의 식수원으로 지정되면서 출입이 통제된 후 약 30년 만에 화순적벽이 부분 개방됐는데 셔틀버스를 타야만 볼 수 있다.

호수와 산만 어우러져도 일품인데 칼로 자른 듯한 수직 절벽이 더해져 노르웨이의 피오리드보다 멋있다. 담양에서 보성을 향해 가다 슬쩍 들렸던 화순은 '숨은 보석'이었다.

오현숙 오현숙

배낭여행가 | 여행작가 | 약 50개국 방문 | 저서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 등 | insumam42@hanmail.net [오현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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