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김훈, 그가 그려낸 피(血)의 세상

[니가 사는 그책]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김훈, 그가 그려낸 피(血)의 세상

독서신문 2020-07-01 08:43:04 신고

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 작가 김훈이 그려낸, 전에 본 적 없는 원초적인 세계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 서점에 깔리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소설은 지난 4월 전자책 월정액 정기구독 서비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종이책 정기구독자에 한해 선공개됐는데, 지금 서점에 깔린 책은 여기서 약간의 보정작업을 거친 것이다. 두께가 더 두꺼운 이유는 종이 재질 때문이다.      

이 책은 복잡한 듯 보이나 사실 단순하다. 작가는 초(草)나라와 단(旦)나라의 전쟁을 통해 자연과 인위의 싸움, 즉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세력과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의 전쟁을 그려낸다. 이 전쟁의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 높이 쌓았던 모든 것들은 무너지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초나라는 자연을, 단나라는 인위를 상징한다. 그 상징은 먼저 이름을 통해 드러난다. 가령 단나라의 단(旦)은 지평선 위에서 해가 뜨는 형상을 나타내는데, 이 단어에는 ‘밤을 새우다’라는 의미도 있다.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밤을 새우는 것은 인위적이다. 또한, 단나라는 왕을 ‘캉’이라고 부른다. 캉은 일(一)을 의미하는데, 온 세상을 하나로 아울러서 모든 사람과 짐승과 초목 위에 더없이 높다는 뜻이다. 반면, 초나라는 그 이름부터 풀(草), 초원이고, 소설에서 단과 싸우는 초나라 왕의 이름은 목(木)이다.

자연의 이미지는 지평선과 강, 바다가 그러하듯 수평적이며 인위는 피라미드와 고층빌딩이 그러하듯 수직적이다. 초나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사방 수백 리에 아무런 건조물 없이 초원이 펼쳐진다. 마을에도 자작나무 껍질 지붕의 단층건물들뿐인데, 심지어 왕의 거처도 단층이며 소박하다. 이 나라 백성이 초원의 평평함을 사랑하고 눈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풍경을 아름답게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단은 높은 성벽을 쌓고 탑과 비석을 세운다. 성벽을 쌓다가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시체로 풀을 만들어서 성벽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말 그대로 인위(人爲,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는 일)다.     

수직의 이미지와 수평의 이미지는 두 나라의 장례 풍습에서도 나타난다. 단의 백성들은 사람이 죽으면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무덤들은 떼를 이루며 언덕에서 언덕으로 이어진다. 반면, 초나라 백성은 죽은 자를 묻은 자리를 꾸미지 않고, 흙이 들뜬 자리에 풀을 옮겨 심고 가랑잎을 덮어서 무덤이 늘어나도 초원이 평평하다. 또한 식량이 모자랄 때 늙은이들이 스스로 강에 목숨을 던지거나, 병들고 배고픈 늙은이들이 떼로 모여서 강으로 배를 타고 사라지는 ‘돈몰’(旽沒) 풍습도 있다. 죽은 자는 그저 자연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단은 선왕들의 무덤은 더욱 크게 쌓았는데, 왕의 무덤에는 왕의 첩들 가운데 가장 총애받던 여자 두 명과 왕을 가까이 모시던 고위직 무장 두 명을 죽여서 함께 묻었다. 왕의 무덤 출입구를 마무리한 석공들은 산채로 이 무덤에 가뒀다. 삶과 죽음조차 인위적이다. 반면, 초에서는 왕조차 스스로 돈몰해서 사라진다. 

인위와 자연의 대조는 또한,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를 넘어 통제와 흐름으로 표상된다. 바람이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고, 강물이 흐르고 또 흘러서 매일 새로움을 나타내듯, 초나라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생활한다. 반면, 단나라 사람들은 한곳에 말뚝을 박고 농사를 짓는다. 전자는 자연(自然, 우주에 저절로 이뤄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이고 후자는 자연에 대한 통제다. 땅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 것은 인간이 땅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말(言)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도 상징적이다. 초나라는 문자를 멀리한다. 왕들은 문자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일을 금했고, 자연을 노래하는 노랫말이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고 반드시 외우도록 명령했다. 문자가 실제를 나타내지 못하는 허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단은 글자로 가지런히 드러나는 것들을 귀하게 여겼고, 글로 표현된 것은 무엇이든 실제로 존재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곧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믿었다.

문자는 통제에 대한 상징이다. 일례로 단 사람들은 강남 대륙에 우뚝 선 산을 백산(白山)이라고 부른다. 하얗다는 것이다. 사실 백산은 희고 또 검어서 검지도 희지도 않았으며, 아침이나 저녁, 흐린 날이나 갠 날, 봄이나 가을마다 색이 바뀌어서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흘러간다. 그런데 문자로 ‘백산’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산의 색을 통제해버린 것이다.  

“수와 공은 다르지 않고 공과 수는 서로를 포함하면서 어긋난다. 모든 공과 모든 수는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른다. 그러므로 공에서 수로, 수에서 공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 엎어지고 뒤집히는 틈새를 사람의 말로는 삶이라고 부른다.” (23쪽)

인위와 자연의 대조는 조화와 부조화로도 나타난다. 초나라 군대는 개에게서 싸움의 기술을 배우는데, 공과 수가 섞여 있는 그 기술은 마치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태극 문양을 연상시킨다. 반면 단의 군대는 융통성이 없다. 무조건 공격과 수비 중에 하나다. 밀집대형으로 움직이면서, 나아가든지, 지키든지, 무너지든지 셋 중 하나를 택한다.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 작가가 책의 맨 뒷장에 썼듯,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인위의 편을 들지 않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힘은 깨끗하나, 그렇지 않은 힘에서는 냄새가 난다. “가라. 너는 가서 초원을 평평하게 하라. 돌무더기를 치워라.” 목왕이 아들 표에게 명령하자 초와 단의 싸움이 시작되고, 세상은 평평해진다. 

한편, 책에는 그 제목이기도 한 ‘달 너머로 달리는 말’들이 나온다. 이들은 ‘신월마’와 ‘비혈마’라고 불리는 품종의 야생마인데, 재갈을 물고 인간을 등에 태우다가 마침내 인간에게서 벗어나 자연의 시원(始原)을 간직하고 있는 백산으로 향한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비혈마 야백(夜白)은 스스로 어금니를 뽑고 재갈을 뱉어버린다. 목에서 피를 뿜으며 백산으로 달리는 야백의 모습은 인위에서 벗어난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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