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종교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는

꼭 종교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는

씨네리와인드 2020-09-18 15:05:00 신고

▲ '데칼로그' 1,2 포스터  © CGV 홈페이지 제공

[씨네리와인드|임채은 리뷰어] 우리는 다양한 울타리에 묶여 있다. 암묵적으로 합의한 규칙,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는 법, 마땅히 해야 할 윤리처럼. 3000년 전에는 그것이 십계명이었다. 두껍고 딱딱한 법전처럼 십계명은 단호하다. ‘-하라’, ‘-하지 말라는 형태로 신에 대한 사랑부터 이웃에 대한 사랑까지 요구한다. 폴란드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십계명에 영향을 받아 10편의 TV연작을 만들었다.

키에슬로프스키가 보여주는 세계와 인물들은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신을 믿지 않고 컴퓨터의 수치(이성)를 믿었다가 아이를 잃은 아빠(데칼로그 1), 자신의 엄마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훔친 젊은 여자(데칼로그 7), 아버지 유산으로 물려받은 우표 컬렉션을 한 순간에 잃은 형제(데칼로그 10), 자신의 말 한 마디에 태아의 생사가 결정되는 의사(데칼로그 2) 등등.

열 가지 이야기에는 옮고 그름을 확실히 재단할 수 있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판단을 유보시키는 사건도 있다. '데칼로그 7'(도적질하지 말라)에는 대여섯살 정도 된 꼬마 아이 앙카가 나온다. 안냐는 할머니 에바를 엄마라 부르고, 친 엄마인 마이카를 언니라 부른다. 마이카가 이른 나이에 학교 선생님과 일을 벌여 앙카를 낳자, 에바가 아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린 것이다.

▲ '데칼로그' 7,8 포스터  © CGV 홈페이지 제공

앙카가 에바만을 따르자, 마이카는 엄마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긴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앙카를 유괴한다. 에바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 마이카에게 제발 앙카를 돌려달라내가 죽으면 네 차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여러 의문이 쏟아진다. 도대체 누가 도둑질을 했다고 봐야 하는가(에바 혹은 마이카?), 도둑질은 남이 소유한 것을 훔치는 행위인데 과연 사람(에바, 마이카)이 사람(앙카)을 소유할 수 있는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다양한 사건을 조명함으로써 그 속에 있는 사람과 사연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사연들은 다채롭다. 너무 다채로워서 잘못 섞이면 검정색이라는 파국을 가져온다. 파국을 막기 위해 십계명은 질서로서 세상을 관장한다. 감독은 십계명을 단순히 신을 섬기는 증표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삶을 좀 더 이롭게 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바라본다.

▲ '데칼로그' 5,6 포스터  © CGV 홈페이지 제공

그런 점에서 십계명이라는 모티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신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선택을 하고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고 절망을 한다. 그들의 행동은 서로의 삶에, 서로의 사연에 영향을 미친다.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은 나를 구원할 뿐 아니라 내 주변인까지 구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도로 한복판에는 차들이 위협적으로 달리고 있다. 초록 불이 빨간 불로 바뀌자마자, 차들은 슬며시 멈추고 사람들은 분주히 이동한다. 혼란과 무질서가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신호라는 규칙 속에 산다. 신호는 우리가 멈추어야 할 순간과 이동해야 할 순간을 알려준다. 십계명도 하나의 신호등이라고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말한다.

한편, CGV910일부터 23일까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특별전을 전국 18개 아트하우스전용관에서 개최한다. 특별전에서는 '데칼로그'연작 외에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 가지 색' 시리즈,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다큐멘터리 '사진' '첫사랑' 등을 만나 볼 수 있다. 흔치 않은 이번 기회를 잡아, 가까운 아트하우스에 발걸음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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