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식 시계가 뭔가요?

기계식 시계가 뭔가요?

엘르 2020-09-25 20:00:00 신고


1 반클리프 아펠의 ‘미드나잇 퐁 데 자모르’ 워치는 12시가 될 때마다 다이얼 가장자리에 있는 연인이 걸어나와 다리 중심부에서 만난다. 2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스켈레톤’ 기법을 적용한 까르띠에의 ‘파샤’ 워치. 3 바쉐론 콘스탄틴이 최근 선보인 여성용 모델 ‘에제리’ 워치의 초기 드로잉. 4 오메가는 자사의 기술력을 입증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만든 인증 시스템인 ‘마스터 크로노미터’를 통해 시계를 높은 자기장에 노출시키거나 물에 담그는 등 혹독한 환경에서 안정성을 테스트한다. 5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워치로 신기록을 세운 불가리의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 오토매틱’에 탑재된 ‘BVL 318’ 무브먼트는 두께가 3.3mm에 불과하다. 6 무브먼트의 각 부분을 섬세한 세공과 보석으로 장식한 브레게의 ‘트레디션 7038’ 워치.


적게는 몇 백만 원대부터 많게는 몇 천만 원대, 아니 몇 억 원대에 이르기까지! 시계의 가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떤 시계는 그 흔한(?) 다이아몬드 하나 찾아볼 수 없는데도 몇 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도대체 이 기하학적인 가격의 이유는 뭘까? 무브먼트가 남다른 기계식 시계이기 때문이란다. 기계식 시계는 뭐고, 무브먼트는 또 무슨 말일까? 기계식 시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숙지해야 하는 몇 가지 핵심 단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무브먼트’다. 말하자면 자동차의 엔진 같은 역할을 하는 무브먼트는 시계를 움직이는 심장을 가리킨다. 그 종류에 따라 시계는 기계식 시계가 되기도 하고, 전자식 시계가 되기도 한다. 그중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바로 전자식 시계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건전지로 움직이고, 시간의 오차가 없으며, 오래 사용할 수 있고, 고장이 생겨도 쉽게 수리할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하다. 기계식 시계는 정반대다. 시간의 오차도 존재하고, 주기적으로 태엽을 감아줘야만 멈추지 않고 작동하며, 고장이라도 한번 나면 수리하기가 몹시 까다롭다. 가격이 비싼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여전히 기계식 시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걸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기계식 시계의 작동 원리가 간단하면서도 절대 간단하지 않은 데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추억의 장난감 인형을 기억하는지? 등 뒤에 달린 태엽을 감으면 저절로 움직이는 인형 말이다. 그야말로 단순한 원리로 작동하는 것 같은 이 인형은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작은 부품들이 꽤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기계식 시계도 마찬가지다. 시계 옆에 달린 ‘크라운(왕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을 돌리면 무브먼트 속에 있는 스프링이 감겼다 풀리면서 톱니바퀴가 움직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시계의 크기 그리고 톱니바퀴의 갯수다. 보통 기계식 시계는 지름 3~4cm, 두께 1cm 남짓한 사이즈다. 위에서 보면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수준. 그런데 그 속에 들어 있는 톱니바퀴의 수는 수백 개에 이른다. 그 수많은 톱니바퀴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며 시, 분, 초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놀라운 톱니바퀴의 하모니는 시간을 표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날짜와 연도를 알려주기도 하고, 매일 달라지는 달의 모양을 표시하는가 하면, 시간에 맞춰 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오직 톱니바퀴와 스프링의 움직임만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기계식 시계에 입문하는 이들이 가장 처음 매료되는 부분이 바로 이 경이로움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장인 정신이 빠질 수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시계를 만들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시계 장인들은 수백 년 전부터 계승되어 온 시계 제작 기술을 수십 년에 걸쳐 전수받고, 또 오랜 시간 연마한다. 그렇게 숙련된 장인이 시계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하나를 직접 검수하고 조립한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스프링, 새끼손톱의 10분의 1 크기도 안 되는 톱니바퀴 수백 개를 조립하는 일은 극도로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이다.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될까? 손으로 ‘나노 로봇’을 창조하는 경지에 가깝지 않을까? 게다가 장인의 역할은 조립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계의 부품을 고정하는 나사에 사파이어나 루비 같은 보석을 세팅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면면에도 브랜드의 문양을 새겨넣으며 무브먼트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이렇듯 시계라는 작은 사물 안에 수없이 많은 세공과 기능이 집약되니 가격이 기하학적일 수밖에. 한편 어떤 이들은 기계식 시계의 기술적 측면보다 이야기에 더 매료되기도 한다. 중세시대부터 존재해 온 기계식 시계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채로운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 마리 앙투아네트와 브레게의 이야기가 좋은 예다. 1783년, 브레게의 애호가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브레게에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브레게는 퍼페추얼 캘린더(일·월·요일·연도를 표시하며 윤달까지 계산해 날짜를 알려주는 기능)와 미닛 리피터(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남은 동력을 표시해 주는 기능), 온도계, 크로노그래프 등 온갖 복잡한 기능을 동시에 탑재한 시계를 제작한 바 있다. 이 시계는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졌지만, 이를 아쉬워한 브레게가 2008년 이 시계를 복원하며 또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앤디 워홀과 까르띠에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한평생 까르띠에의 탱크 워치를 사랑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나는 시간을 보기 위해 탱크를 차지 않는다. 나는 탱크를 입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유명인사와 시계의 역사,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모여 기계식 시계의 헤리티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뛰어난 기술력, 유서 깊은 헤리티지를 고루 갖춘 기계식 시계를 두고 ‘손목 위의 작은 우주’라고 빗대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순간, 내가 이 세계에 ‘입덕’한 것을 깨달았다.



에디터 손다예 디자인 이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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