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윤훼이와 데리야키의 상관관계

'이방인' 윤훼이와 데리야키의 상관관계

에스콰이어 2020-09-25 23:00:00 신고





윤훼이

1995년 출생. 한국에서 태어나 10살이 되기 전 바누아투로 떠났고, 청소년기부터는 미국에서 쭉 산 TCK(Third Culture Kids)다. 2015년 디지털 싱글 앨범 〈Fatal Love〉를 내고 데뷔했으며 2019년 Mnet 〈쇼미더머니 8〉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① 굿걸

스튜디오가 멋지네요. 여기서 전에 작업했던 거예요?
여기 글랩(Glab) 스튜디오라고, 〈굿걸〉 촬영 때 마지막 미션 곡을 녹음한 곳이에요. 에일리 언니랑 같이 한 ‘Grenade’라는 곡이었어요. 개관한 지 얼마 안 돼서 장비도 신상이고 깔끔하더라고요.
데뷔를 2015년에 했죠. 데뷔 이후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어요?
매번 짧고 굵게 전환점은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쇼미더머니 8〉 출연이겠죠? 제가 대중 앞에 이름을 확실하게 남긴 계기였으니까요.
음악을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저는 저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부모님이 그림을 그리셨기 때문에 미술부터 시작했죠. 근데 매번 제가 원하는 만큼의 표현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실망했다가 음악을 접하게 됐는데 어느 정도 표현이 되는 거예요. 그게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맨땅에 헤딩이었죠. 해보고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낫지, 안 해보고 후회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음악도 장르가 많잖아요. 랩과 힙합을 선택한 이유는 뭐예요?
사실은 계산적인 이유였어요. 2016년에 크루로 활동했는데, 그때 힙합 장르가 한국에서 엄청 힙했죠. 솔직히 지금도 그렇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자리가 많이 없거든요.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요. 그에 비해 래퍼들은 너무 잘되는 시기였고, 제가 더 오래 활동했는데도 어제 랩 음악을 만든 친구가 더 빨리 조명을 받더라고요. 음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내린 전략적인 선택이었어요.

② 양윤화

뮤지션은 코로나19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이죠?
그런 편이죠. 요즘은 공연이 아예 없어서 집에서 조용히 음악 작업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공연이 주로 밤에 있어서 밤낮이 바뀌는 일이 많았어요. 작업도 피곤한 상태에서 진행하고요. 요즘은 집에서 잠, 느지막이 일어나서 커피, 밥, 작업, 화초 가꾸고 게임, 잠. 이런 일상이죠.(웃음) 요즘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고 있어요.
〈쇼미더머니 8〉이 끝난 뒤에 래퍼 스윙스가 대표로 있던 레이블인 위더플럭에 들어갔잖아요. 독자적인 활동을 할 때와 차이가 있나요?
위더플럭은 일반적인 회사 분위기하고는 상당히 달라요. 자유분방하죠. 특히 음악적으로는 더더욱 그래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제한이 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지만, 아무도 ‘그런 노래는 돈이 안 될 것 같다’고 하지 않아요. 그런 점은 혼자 작업할 때랑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무래도 식구가 생겼다는 게 다르죠.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혼자서는 만나기 어려운 새로운 아티스트들과의 만남도 좀 쉬워졌고요. 좋은 점이 많네요.
어찌 보면 사회생활을 남들보다 빨리 시작한 셈이잖아요.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뭘까요?
직업 특성상 얼굴이 알려져 있어 사람들이 절 알아볼 수 있잖아요. 밖에 있으면 누군가 저를 알아보는 경우가 있고 프라이버시도 많이 없어졌죠. 그런데 그런 각오를 안 했으면 이 직업을 택하지 않았겠죠. 언제나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기브 앤드 테이크가 있어야 하잖아요?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1995년생이면 보통 이제 막 사회에 나가려고 준비하거나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나이잖아요.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입장에서 그런 친구들에게 해줄 만한 얘기가 있나요?
저도 다른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공부를 잘하고 싶었고, 성적이나 대학 이름으로 매번 누군가와 저를 비교했죠. 그런 순간들이 따로 떨어뜨려놓고 봤을 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다 모아서 보면 굉장히 사람을 바꿔놓는 시간이거든요.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자꾸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학창 시절, 대학 시절을 보내고 나면 취직도 바라지 않는 곳에 하게 될 가능성이 높죠. 그냥 이 순간, 진짜 내가 아닌 현실에 맞춘 내가 되어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가끔씩 멈춰 서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나는 진실되게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솔직했으면 좋겠어요.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남들의 기대치를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요.


③ 이방인

한국인에게 생소한 나라인 바누아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거긴 어떤 곳인가요?
작은 섬나라인데 4년을 살았어요. 아버지는 종종 “나중에 여기가 엄청 그리울 거야”라고 하셨거든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2003년이었는데도 바누아투는 랜선을 꽂아야 인터넷이 되고, 인터넷이 되면 전화가 안 되는 그런 곳이었어요. 재미도 없었고, 빨리 여길 떠나서 도시에서 살고 싶었죠. 그런데 지금 뒤돌아보면… 아버지 말씀이 맞더라고요. 되게 많이 그리워요. 매일 바다에서 강아지랑 친구들이랑 놀고. 뭔가 판타지처럼 남아 있는 시간이에요.
바누아투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갔을 때는 어땠나요?
처음 몇 년은 혼란스러웠어요. 한국에서 살 때는 한국인으로서의 삶밖에 없고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바누아투에서 몇 년 살고 미국으로 넘어갔더니 사람들이 저에 대해 정의를 못 내리더라고요. ‘쟨 해외에서 온 동양 여자애인데 영어를 하네? 그런데 미국식 영어가 아니라 호주식 영어네?’ 또 미국에서는 동양인은 공부를 잘한다는 이미지가 강해요. 근데 저는 교육열이 높지 않은 나라인 바누아투에서 온 데다 월반을 했기 때문에 조금 뒤처지는 면도 있었죠. 처음에는 다들 신기해하다가 나중에는 트집을 잡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어요.
어딜 가나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었겠어요.
저의 정체성을 딱히 정의하지 못했어요.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한국에서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누아투 사람인 것도 아니니까요. 미국에서 11년을 살았지만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제 자신이 밉거나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거나 한 적은 없는데 외롭다는 마음은 좀 컸어요. 그렇게 살아온 저를 이해하거나 공감해줄 사람이 많지는 않았으니까요.

④ 데리야키

랩을 할 때 항상 ‘데리야키’라는 단어가 들어가잖아요. 인터넷상에서는 ‘스윙스’와 ‘돈가스'의 관계처럼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더라고요.
하하하. 싫을 건 하나도 없죠. 전 너무 좋아요. 아티스트로서 사람들이 저를 떠올렸을 때 제가 하는 일, 제 음악 외에 전혀 엉뚱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스타일이 항상 화려하고 독특한 걸로 유명해요. 패션 철학 같은 게 있다면 뭘까요?
‘윤훼이 하면 딱 이런 스타일이다!’ 하고는 싶은데, 아직 저도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있어요. 막 다 입어보는 것 같아요. 입혀주는 것, 추천해주시는 것 많이 입고요. 요즘 들어서는 깔끔한 게 최고라고 생각하지만요.
여성 래퍼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쇼미더머니〉 시리즈 보면 출연자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더 주목받은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여성 아티스트가 힙합 쪽에 별로 없는 건 사실이에요. 제가 느끼기에 그 이유는, 여성 아티스트는 뭔가 흐름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때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가 정말 많았다가, 남성 발라더가 인기를 끌다가, 여성 아이돌이 떴다가 하잖아요? 조명을 받는 사람들이 매번 달라지는 거죠. 지금까지는 랩이나 힙합이라는 음악 카테고리가 한국에서는 새로운 장르였기 때문에 여성 아티스트가 적었을 뿐인데, 이젠 또 새로운 흐름이 생길 것 같아요.


⑤ 25+

올해로 만 25세죠. 앞으로 뮤지션 윤훼이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시작한 이상 끝까지?(웃음)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25년 후, 만 50세가 됐을 때도 계속 음악을 하고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은 음악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하죠. 이걸 직업으로 삼아서 일하고 있으니까 지금의 마음으로는 평생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또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바뀔 수도 있겠죠? 만 50세라면… 또 다른 걸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음악도 하면서요. 제가 원래 욕심이나 호기심이 많거든요.
그럼 앞으로 25년은 어떻게 펼쳐지기를 기대하나요?
인생은 매번 대비를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올해도 코로나19로 이렇게 될 줄 아무도 몰랐잖아요? 제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10년 전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을 상상하지도 못했거든요. 그냥 저는 매 순간 솔직하게, 후회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어요.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 김현유 PHOTOGRAPHER 이기석 HAIR & MAKEUP 권호숙 Cooperation 글랩 스튜디오 ASSISTANT 윤승현 DIGITAL DESIGNER 이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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