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애의 씨네룩]극장서 외면받은 '21세기 뮬란'

[박미애의 씨네룩]극장서 외면받은 '21세기 뮬란'

이데일리 2020-09-26 06:00:00 신고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여성의 몸으로 적군에 맞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여성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이지만 큰 감동을 선사했다. 그 여성은 디즈니의 가장 혁신적인 캐릭터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뮬란’이다.

‘뮬란’
‘뮬란’이 22년 만에 실사(라이브액션)로 재탄생했다. ‘뮬란’은 검증된 원작(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디즈니 최초의 아시아 전사(류이페이)를 내세워 제작 초부터 관심을 모았다.

뚜껑을 연 ‘뮬란’은 원작과 스튜디오의 명성과 신뢰에도, 크리스토퍼 놀런 영화 중 역대급 난도로 불친절하다고까지 언급되는 ‘테넷’보다 반응이 시들하다. 이것은 코로나19나, 주인공의 발언과 엔딩 크레딧에서 촉발된 논란 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원작의 인물과 서사가 갖고 있던 매력과 감동을 잃은 탓이 크다.

그 매력과 감동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영웅의 이야기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원작의 뮬란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성장담과 다름없다. 몸이 성치 않은 아비와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입영을 했지만 장정들 틈에서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런 그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노력과 끈기, 지략으로 극복하고 전장에서 승리까지 거머쥐는 모습에서 짜릿한 쾌감 이상의 감동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사회적 편견에 억눌린 약자들의 성공담이야….

그러나 실사의 뮬란은 평범한 인간과 거리가 멀다. 날 때부터 비범한 ‘기(氣)’를 가진, 영웅이 될 운명을 지닌 인물로 나온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를 숨기고 살다가, 조력자의 도움으로 깨달음을 얻고 영웅으로 거듭난다. 영웅이 영웅이 되는, 운명론적 또는 ‘수저론’적 접근이 요즘 세대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갈지 미지수다. 비범한 뮬란이 거둔 승리는, 평범한 뮬란이 거둔 승리 그 이상의 쾌감과 감동을 주기가 힘들다. 자력이 아닌 운명과 조력에 의지한 서사는 원작보다 덜 혁신적이다.

디즈니는 ‘디즈니 프린세스’로 불리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 캐릭터 때문에 비판을 받곤 했다. 몇 년 전 영국 출신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한 토크쇼에서 자신의 두 딸에게 디즈니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를 못 보게 한다고 언급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제 디즈니는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캐릭터와 이야기로 화두를 던지고 담론의 장을 연다.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도 실사화(리메이크) 작업을 통해 캐릭터를 변형시켜 ‘디즈니 프린세스’의 이미지를 탈바꿈해왔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는 ‘뮬란’ 이후 최고의 여성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 디즈니의 21세기 뮬란 재해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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