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한 BBC 기자의 이야기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한 BBC 기자의 이야기

BBC News 코리아 2020-12-10 15:20:39 신고

BBC 페르시아어 서비스의 하니프 마즈루에이 기자는 영국에서 실시 중인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자원했다
Getty Images
BBC 페르시아어 서비스의 하니프 마즈루에이 기자는 영국에서 실시 중인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자원했다

비좁은 검사실에 홀로 앉아 있는 동안, 내 머릿속은 각종 위험한 시나리오들로 가득했다.

언젠가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사람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게 떠올라 심란했다.

난 이게 좋은 생각이라고 확신했나? 만약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이게 원래 예상됐던 범위 내의 일인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기자로서 이것이 일선 현장에서 그 내부를 살펴보고 기사를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란에서 나는 수감도 당해보고 고문도 당해봤다. '사람들의 눈'이 돼 진실을 보도했단 이유였다. 이 정도는 분명 감당할 수 있을 테다.

의사는 내게 많은 질문들을 했다. 내가 가진 질문은 딱 하나였다.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위험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아내와 딸이 걱정됐다. 당뇨를 앓고 있으며 건강이 취약한 부모님의 건강도 우려됐다.

하니프 마즈루에이 기자는 미국의 바이오테크 기업 노바백스가 영국에서 실시하는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참가했다
Hanif Mazrooei
하니프 마즈루에이 기자는 미국의 바이오테크 기업 노바백스가 영국에서 실시하는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참가했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후에는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초조했다.

그러나 의사는 임상시험이 내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나는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나는 미국의 바이오테크 기업 노바백스가 영국에서 실시하는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참가했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자 나는 오랫동안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걸 고민해왔다.

지난 여름, 백신 개발에 대한 기사들을 읽었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은 전 세계를 괴롭히는 이 '악몽'을 끝장내는 걸 도와야겠다는 것이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기자로서 나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봤다.

실험실과 연구소, 대학, 제약사들이 런던에 많았기 때문에 임상시험에 참여하기에 적격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인로서의 나는 코로나19를 하나의 기사로 다루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에 깊이 참여하길 원했다.

온라인 등록

나는 정상적인 삶이 되돌아오길 갈구했다. 내 딸이 아무런 걱정없이 학교에 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세상.

전화를 받았더니 아끼는 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자유로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여행을 다니며 물건을 살 수 있는 그런 세상.

그래서 임상시험 참가신청을 받는 웹사이트를 봤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내 건강 상태와 배경에 대한 수십 개의 설문에 답을 채웠다.

온라인 등록을 끝내자 '선정되면 연락을 드리겠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후로 한 달간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는 수십 개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Getty Images
현재 전 세계에서는 수십 개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선정되셨습니다'

나는 거의 희망을 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30일 후 나는 '다음 단계에 선정됐다'며 지금도 계속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이메일을 받았다.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물론이고 말고! 나는 필요한 양식에 서명하려고 했는데 웹사이트는 많은 접속량으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백신 임상시험에 자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내겐 불편한 일이었지만 인류에게는 건강한 신호였다.

하루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아 웹사이트에 들어가 나의 가족력과 여행 이력, 건강 상태에 대한 매우 상세한 설문을 답하는 데 20분가량을 썼다.

일주일 후, 어떤 간호사가 내게 전화를 해 임상시험을 계속하고 싶은지를 확인했다. 이미 작성했던 양식에 있는 질문을 그대로 반복해서 물었다. 재확인을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이번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과거에 코로나19에 감염된 적이 있는가였다.

아마도 내가 과거에 감염된 적이 있다면 임상시험에 참가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내가 아는 한 그런 적은 없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검사를 위한 일정을 잡았다. 하루가 1년처럼 느껴졌다.

임상시험 기간 1년 동안 마즈루에이 기자는 병원을 6번 방문해야 한다
Getty Images
임상시험 기간 1년 동안 마즈루에이 기자는 병원을 6번 방문해야 한다

나는 9000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이 될 것이었다. 참가자의 25%는 65세 이상이다.

참가자 절반은 컴퓨터로 무작위 추첨돼 실제 백신이 아닌 플라시보를 맞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1년짜리 임상시험에 참가하기로 했고, 이 기간에 6번 시험실을 방문하기로 했다. 1일 차, 21일 차, 35일 차 그리고는 3개월, 6개월 ,12개월 후에 한 번씩이었다.

언제든 참여를 포기할 권리는 있었지만 어쨌든 이제 임상시험은 한동안 내 삶의 일부가 될 것이었다.

1일 차

나의 첫 방문 일정은 지난 10월 20일 킹스칼리지의 시험실이었다.

내가 도착하자 직원들은 내게 대기실로 가달라고 말했다. 대기실에는 19개의 의자가 있었고 한 간호사가 의자에 앉은 참가자들에게 임상시험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참가자의 절반가량이 60세 이상이었다. 노인들이 인도주의적 신념이 더 강한 걸까?

나는 유일하게 비어있던 의자에 앉아 다음 단계가 어떤 것일지 생각하며 초조해했다. 간호사가 내게 와 신원을 확인한 다음, 의사가 검사실로 가달라고 요청했다.

의사가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하며 나를 검사했고, 간호사는 임상시험의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했다. 긴 과정이었지만 덕분에 초조함을 덜 수 있었다.

처음에 의사는 내 혈압과 심박, 체온을 측정했고 그 다음에는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다.

주사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수주일의 간격을 두고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2번 맞아야 한다
PA Media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수주일의 간격을 두고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2번 맞아야 한다

얼마 후 그는 첫 번째 백신을 내 왼팔에 주사했다.

나는 열광하는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됐다. 좋든 싫든, 이제 백신은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다.

의료진은 나를 30분가량 관찰하더니 다른 부작용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를 보내줬다.

이 30분간 나는 휴대전화에 클라우드 앱을 설치했다. 연구실과 의료진에게 매일 내 건강 상태와 체온을 보고하기 위한 앱이었다.

또한 코로나19 검사 키트도 3개 줬다. 만약 코로나19 증상이 있을 경우 검사 키트를 사용한 다음 우편으로 의료진에게 보내면 된다.

이 검사 키트도 나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됐다. 걱정이 될 때마다 내 상태를 검사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상

첫 백신 주사 이후 나는 며칠 동안 앱으로 내 체온을 보고했다.

즈루에이 기자는 집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할 수 있는 키트를 받았다
Getty Images
즈루에이 기자는 집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할 수 있는 키트를 받았다

주사 후 10일이 지나자 두통과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졌다. 눈도 충혈되고 몸살도 느껴졌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딸과 아내는 주기적으로 내게 열이 있는지 물었다.

가까운 친구들도 메신저로 내 건강 상태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이때부터 자가격리를 실시했다.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동안 나는 앱으로 모든 증상들을 보고했다. 14일 차가 되자 앱을 통해 3일 동안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라는 조언이 전달됐다. 이때쯤 나는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몸에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었고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상황이 점점 악화하자 나는 임상시험에 참가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코로나19의 증상들을 겪고 있었지만 가장 흔한 증상인 기침과 열은 없었다.

그는 앱으로 모든 증상들을 보고했다
Googleplay
그는 앱으로 모든 증상들을 보고했다

이틀 후 나는 첫 번째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받았다. 음성이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 매우 안심했다. 딸은 다시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나는 다시 희망을 갖게 됐고 나머지 두 차례의 검사 결과도 음성으로 나오면서 체력도 점차 회복됐다. 첫 백신을 주사한 지 21일 차였다.

두 번째 백신 주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전처럼 초조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번엔 다른 대기실로 보내졌고 의사는 내게 건강 상의 변화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내가 겪은 것들에 대해 말했고 그는 모든 것을 보고서에 받아 적었다.

두 번째 주사

혈압과 체온을 측정한 다음 나는 다른 커다란 대기실로 보내졌다. 간호사는 그곳에서 내게 2번째 백신을 주사했다. 이번에는 오른팔이었다.

의료진은 이번에도 30분가량 나를 관찰했다. 간호사는 내 건강 상태를 다시 점검했고 마지막으로 코로나19 검사 키트 3개를 추가로 줬다.

영국에 사는 올해 90세인 마가렛 키넌 할머니가 지난 8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았다
PA Media
영국에 사는 올해 90세인 마가렛 키넌 할머니가 지난 8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았다

며칠 후 내 건강 상태는 마침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의 충혈은 그대로였고 때때로 약간의 두통과 어지럼증이 있었다.

나는 35일 차 때 다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고 경과 보고를 했다. 간호사는 연구를 위해 내 혈액 샘플을 추출한 다음 차기 방문 일정을 잡았다. 2021년 2월이었다.

임상시험이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이젠 모든 게 달라졌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소식이 매일 전해진다. 영국은 대규모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난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아직도 연구진이 내게 주사한 것이 진짜 백신인지 아니면 내가 대조군에 속해 가짜 백신을 받은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 연구의 일원이었다는 게 자랑스럽다. 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해결책에 일조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따뜻함이 돌아오는 내년 여름이 되면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로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길 기원하자. 우리의 행복, 안도감을 표현할 수 있고 서로가 얼굴에 미소를 띠는 걸 볼 수 있도록.

Copyright ⓒ BBC News 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