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주장을 뒷받침할 대법원 20XX 다 OOOO 판례가 있습니다! 확립된 대법원 판례입니다."
탄탄한 법리와 논리 구성, 뚜렷한 증거로 승패가 갈리는 법정. 변호사들은 '확실하지 않은' 무기는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한 변호사가 재판에서 '존재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를 토대로 자신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 번호도 또박또박 언급했다. 심지어 그는 이 허구의 판례를 동원해 상대방 변호사가 제시한 하급심(1·2심) 판례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거짓 주장인 줄 몰랐다. 상대측인 A변호사조차도 그를 '재야의 고수'라 생각했을 정도다.
진실은 재판이 끝나고 A변호사가 해당 판례를 찾다가 드러났다. A변호사는 상대측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그 대법원 판례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대법원 등 온갖 판결문 제공 서비스를 뒤지며 찾아다녀도,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판결문이었다.
진실만 말해야 하는 법정. 거짓 주장이란 무기를 판사 앞에서 휘둘렀던 변호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다른 사람도 아닌 변호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검색이 제대로 안 됐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는 대법원 판결문일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로톡뉴스 취재 결과, 법원의 판결서 사본 제공신청 서비스에서 찾지 못했다면 '존재하지 않는 판결문'이 맞았다. 열람제한이 걸려있다고 해도 존부(存否) 결과는 알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오래된 사건은 등록돼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말해 다시 한번 판결문이 존재할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여기에 해당하지도 않았다. 상대방 변호사가 언급한 판결문은 4년 선고됐다고 말했기에, 검색이 되어야만 했다. 존재하지 않는 판결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판결을 언급하며 거짓 주장을 한 변호사. 이런 행동은 향후 변호사에게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대법원 관계자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거짓 정보를 말한다고 해도) 불이익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B변호사는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다. 법적인 책임을 지는 않은 것은 물론, 법원에서 불이익조차 없다는 취지였다. C변호사 또한 "소송 사기가 된다는지 (법적으로 변호사의 행동을 문제 삼기는)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례 속 변호사는 왜 거짓 주장을 했던 걸까. 변호사들은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서도 "만약 실제로 발생한 일이라면, 의뢰인을 위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행인 건 거짓 정보로 승소할 일은 없다는 점이다. 재판부가 변호사의 주장을 다시 확인하기 때문이다. B변호사는 "변호사가 거짓말로 승소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며 "법원에서는 변호사가 판례를 얘기하면 당연히 확인을 한다"고 했다. 거짓 주장은 충분히 걸러진다는 취지다.
이어 "잘못된 정보라고 확인되면, 판사는 판결문에 '변호사가 ~라고 주장하나 이유 없다'라고 기재하는 식"이라고 했다. 변호사가 재판 과정에서 특정한 주장을 했고, 확인해보니 근거가 없다는 기록이 판결문에 기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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