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앱에도 올라오지 않는 이 타운 하우스는 이누리가 어렵게 수소문해 중개업자를 찾은 다음에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첫눈에 반했다. 큰 창을 통해 사방으로 빛이 들어오고, 3m에 달하는 층고가 시원시원한 공간감을 자아내며, 실내는 불필요한 장식 없이 여백미가 살아 있었다. 처음부터 질 좋은 자재로 지어 연식이 오래됐음에도 리모델링하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사생활이 보호되는 정원. 집 앞 골목보다 한 층 위에 자리한 정원은 율마처럼 키 낮은 나무를 심어도 충분히 외부와 분리할 수 있었다. 이누리는 정원을 보자마자 갓 태어난 강아지였던 ‘믿음이’가 씩씩하게 뛰어놀고, 텃밭을 만들어 직접 채소를 기르고, 먼 훗날 아이들과 바비큐를 즐기는 따뜻한 저녁 시간을 상상했다. “공간의 자세한 부분까지 취향대로 뜯어고치는 리모델링 공사 대신, 이미 잘 갖춰진 부분을 최대한 살리는 부분 리모델링 작업을 했어요.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이 집에 맞춰 천천히 변해왔어요.” 나무를 가지치기하거나 잔디를 깎으며 정원을 관리하고 한겨울엔 상상 이상의 추위를 겪으면서 주로 아파트에 거주하며 몸에 밴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총체적으로 뒤집혔다. 온실에서 토마토와 로즈메리, 버터헤드 등 갖가지 채소를 길러 샐러드를 해먹고, 돌아올 봄을 위한 튤립 구근을 심고, 장작에 불을 지펴 고구마를 구워 먹거나 ‘불멍’을 즐기는, 변화의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새로운 일상은 그들이 꿈꿔 온 삶을 관통했다.
오피스텔 원룸에 살던 시절에도 자기만의 방식대로 꾸며놓아야 숨통이 트이는 사람. 이누리는 이런저런 경험을 거치며 지금의 집에 다다랐다. 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그녀와 남편이 원했던 건 한없이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파리에 몇 해 동안 머물 때, 마레 지구에서 홈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헤어 디자이너 친구 집에 간 적 있어요. 마레가 워낙 혼잡하고 골목골목 시끄럽잖아요. 그런데 골목 어귀의 건물로 들어서서 친구 집 문을 열었더니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더라고요.” 조용한 전자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다종다양한 가구와 오브제가 자유롭게 널브러져 있고, 테라스 창가에는 무성하게 자란 식물과 햇빛을 쬐고 있는 갓 세탁한 컨버스 스니커즈…. 그야말로 ‘힙’했던 그날의 장면은 이누리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파리 대부분의 집들이 그렇듯 오래된 건물 특유의 고전적 디테일이 있는데 그게 현대적인 물건이나 음악과 믹스되니 묘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함이 정말 좋았어요. 저에게 집에 대한 로망이란 줄곧 그런 거였어요. 자유롭고 내 마음대로인 공간.” 모든 게 새것 같고 인위적인 분위기를 지양하는 그녀는 오래된 것을 잘 가꿨을 때 생기는 세련미의 힘을 안다. 아파트보다 지금의 집이 마음에 든 이유도 오래됐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고급스러운 자재들이 풍부하게 집을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상업공간이 아니에요. 그저 사는 사람들의 취향이 최대한 드러나는 게 자연스럽죠. 트렌드에 따라 공간 곳곳을 새로 바꾸고 또 바꾸는 소모전은 상업공간의 몫으로 남겨둬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진 맹민화 에디터 이경진 디자인 김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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