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셰프는 '을지면옥'의 국물을 재해석할 수 있을까?

프렌치 셰프는 '을지면옥'의 국물을 재해석할 수 있을까?

에스콰이어 2021-04-06 20:00:00 신고



이유석의 오마주


〈에스콰이어〉와 이유석이 처음 만난 건 지난 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지난해 명가의 국물을 그대로 재현해보는 일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 과정이 “고수들의 대국 기보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에디터는 이런 말을 절대 흘려듣지 않는다. 프렌치 셰프가 읽어낸 명가 국물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재현 가능할까? 그대로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유석 혼자 알기엔 아깝지 않은가?

저랑 그 국물들 똑같이 한번 만들어보실래요?

라며 미끼를 던졌다. 생각해보면,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졌다. 유면가는 2021년 미쉐린 플레이트 맛집에 이름을 올렸으나 그 미쉐린의 단물을 들이켜지 못한 채 코로나로 인한 임시휴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문을 닫아건 그 공간이 지금은 일종의 연구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일단 공간이 해결된 셈이다. 그간의 공부를 기사 형태로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다. “저도 공부한 걸 좀 정리한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재밌기도 하고요.” 이유석이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의 국물 명가 리스트를 만들고 그중 재현이 가능하고 의미 있는 3개의 국물을 꼽았다. 나는 “장은 내가 다 봐주겠다”고 약속하고 그가 말한 식자재를 모으기 위해 어시스턴트처럼 뛰어다녔다. 3월의 한 날 우리는 성수동 유면가에서 만났다.


Who’s the chef?
이유석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햇수로 10년간 압구정에서 프렌치 카스트로펍 ‘루이쌍끄’를 이끌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후 성수동에 면요리 전문점 유면가를 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잠시 문을 닫은 유면가는 현재 이유석이라는 브랜드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Q1.을지면옥 물냉면

‘명가’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동시에 내뱉은 첫 후보는 을지면옥이었다. 첫 모금을 들이켤 때 귀 뒤편에서 ‘쩡’하는 징 소리라도 나듯 강렬한 상쾌함을 선사하는 고기 육수계의 정수인 평양냉면. 그 평양냉면의 강자들 중에서도 간장 계열이 아닌 소금 계열의 맑은 국물을 대표하는 을지면옥이 오마주의 대상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맑아서 마치 냉수처럼 보이지만 입에 넣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칠맛이 폭발하는 바로 그 국물을 재현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차돌양지랑 돈육 전지가 필요해요.

첫 단추부터 묘수가 나왔다. 전지라니? 제육볶음이나 찌갯거리로 쓰는 돼지 앞다리 살이 거기서 왜 나온단 말인가? “저도 처음에는 이 맛을 내는 데 돼지고기가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돼지고기를 맑게 우려낼 때 나는 맛이 을지면옥의 국물 안에 있어요.” 나는 의심을 숨겨두고 군말 없이 마장동으로 향했다.

을지면옥 육수 재해석에서 가장 구하기 힘들었던 재료는 차돌양지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서너 군데의 한우 전문점을 찾아 차돌양지가 있는지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치마양지밖에 없다’는 대답이었다. 양지는 소의 부위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게 나뉘는 부위 중 하나다. 소 몸통의 앞가슴부터 복부 아래쪽 부위까지 붙어 있는 거대한 살코기 덩어리를 통틀어 양지라 부른다. 보통 국거리로 많이 쓰는 양지에는 구위용 부위가 숨어 있다. 앞다리 쪽부터 차돌박이(가슴), 업진살(윗배), 치마살(아랫배)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슴 쪽 차돌박이에 붙은 양지를 ‘차돌양지’라 부른다. 왜 이리 찾기 힘든지 물었더니 한 업장의 사장이 말했다. “육수를 내는 데 좋아서 대부분 업장으로 들어가요. 일반 소비자들이 차돌양지를 특정해서 찾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요.” 전지와 차돌양지의 핏물을 빼는 게 중요했다.

을지면옥류의 국물은 피를 빼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가정집이라면 락앤락 통에 고기를 넣고 찬물을 부어 냉장고에 두고 서너 시간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며 하루 정도 핏물을 빼는 걸 권해요.

막상 육수를 내는 시간은 예상보다 길지 않았다. 핏물을 쫙 뺀 전지 부위는 40분, 치마살은 2시간가량을 삶았다. “처음 끓어오를 때 검은 거품을 싹 거둬내고 불을 줄인 상태로 그냥 두면 됩니다.” 이 셰프가 열심히 거품을 거둬내며 말했다. 그러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나를 향해 이렇게 덧붙였다. “다시 끓어오를 때 하얗게 올라오는 거품은 거둬낼 필요가 없어요. 이제 점차 국물이 맑아지기 시작할 거예요.” 그의 말대로 20여 분을 중불에 끓이자 치마양지 육수와 전지 육수가 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온도로 끓여야 고기에서 감칠맛만 쭈욱 올라오고 잡내가 녹지 않아요.” 옆에서 티스푼을 들고 슬쩍 다가가 두 고기 육수의 맛을 봤다. 간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국물의 아주 먼 곳에서 을지면옥 육수 유전자의 특징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 멀다. 굳이 따지자면 방계 5촌 정도의 느낌? 그는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마 이 단계에서 이미 먼 핏줄 같은 느낌을 받았을걸요?”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다 끓인 육수를 냄비째 얼음물에 담그더니 오이를 꺼내 얇게 썰기 시작했다. 오이야말로 그의 히든 카드.

‘쩡’한 그 맛은 이 오이를 소금에 절인 국물로 낼 수 있어요. 일종의 ‘킥’(셰프의 비법)이죠.

이 셰프가 을지면옥의 육수를 아무리 재해석해보려 해도 진품에 가닿을 수 없다고 느꼈던 어느 날, 평양냉면에 고명으로 올라가거나 찬으로 나오는 오이지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이게 정말 을지면옥의 레시피에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얼음물로 차갑게 식힌 육수 위로 굳은 기름과 작은 불순물들이 떠 있었다. 고운 면보에 거르니 국물이 생수처럼 맑아졌다. 소고기로 낸 육수는 살짝 갈색 빛이 돌았지만, 돼지고기 육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투명했다. 이걸 다시 두 시간 동안 냉장한 후 한쪽에는 돼지고기 육수만 담고, 다른 한쪽에는 두 국물을 적당히 배합한 육수를 담았다. 간은 오이 절인 국물로 잡았다. 짜디짠 오이 국물을 두 육수에 적당히 섞었다. 아주 천천히 예민한 표정으로.

돼지고기로만 낸 국물과 소고기 육수를 배합한 국물을 두 개의 청자 종지에 따로 따랐다. “고기도 한 점 올리죠.” 이 셰프는 차돌양지 한 점을 썰어 두 종지에 올리고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내 앞에 냈다. 마장동을 돌아다니며 치마양지를 구걸하던 나의 수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원샷으로 국물을 들이켠 나의 눈은 아마 사슴만큼 커졌을 것이다. 두 육수에서 을지로와 장충동의 맛이 거의 완벽한 형태로 살아났다. 그러나 명심할 것. 이 셰프의 ‘재해석’은 어디까지나 오마주를 위한 재해석일 뿐 을지면옥이 이 레시피를 쓴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Q2.명동교자 칼국수

명동교자의 국물은 너무도 익숙해서 가끔 그 특징을 잊어버리곤 한다. 매번 바지락 칼국수만 먹던 사람이 명동교자의 칼국수를 처음 먹었을 때 가장 놀라는 점은 뭘까? 이 칼국수 국물에서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뭘까? 결국 불맛이 아닐까? 사실 영계를 5시간 동안 삶아 우린 고소한 국물이 그 불맛의 바탕을 차지한다.

명동교자의 닭 육수는 무척 훌륭해요. 간도 적당하고 면과 섞이는 형태도 이상적이죠. 그런데 사실 명동교자에서 닭 육수는 도화지 같은 존재예요. 진짜 그림은 고명이 다 그려요.

이 셰프는 당당하게 말했다. “저도 사실 그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재현해볼 순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더니 이 셰프는 내가 홈플러스에서 사 들고 온 하림의 최상급 육계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번개 같은 칼질이 몇 번 지나가자 닭의 날개, 다리, 엉덩이 쪽 지방이 잘려나갔다. 그가 육수용으로 해체해 사용하는 ‘닭뼈’라 부르는 형태는 가슴살을 분리해내고 목부터 척수와 등뼈가 붙은 형태다. “닭 손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척추와 등뼈에 붙은 내장을 깨끗이 제거하는 겁니다. 이렇게 검붉은 내장들이 달려 있는데 여기서 잡내가 엄청나게 올라와요. 업장에서는 이 부위의 뼈를 칫솔로 긁어내 싹싹 손질하기도 해요.” 살이 거의 붙어 있지 않은 ‘닭뼈’ 부위를 끓이면 기름이 거의 없는 맑은 국물이 우러난다.

그는 기름기를 살짝 더하기 위해 다른 부위를 활용한다. “닭뼈는 오래 우려내고 다리와 가슴은 넣었다가 금방 꺼낼 거예요. 기름이 너무 많이 우러나지 않게요.” 육수용 부위에 물을 부어 불 위에 올리고 양파를 꺼내 다듬었다. “단맛을 올리려면 양파랑 대파 흰 부분이 조금 들어가야 좋아요.” 사실상 여기까지는 특별한 조리법이랄 것이 없었다. 그의 손이 바빠진 건 육수를 올리고 난 이후다. 돼지고기를 다지고, 물에 불린 목이버섯, 애호박, 양파, 마늘을 적당한 크기로 썰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두태 기름을 꺼내 들었다. 나를 괴롭힌 두태 기름, 바로 그놈이다. 두태 기름은 다양한 부위의 소기름(우지) 중에서도 신장 쪽에 붙어 있던 덩어리를 말한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실제로 소 정육 작업을 하는 업장 몇 개를 돌아본 후에야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업장이 아니고는 거의 쓸 일이 없어 거저나 다름없을 만큼 싸지만, 작업하는 이른 오전이 아니면 구하기가 힘들다. 이 하얀 기름 덩어리를 주먹 반만 하게 썰어 팬에 살살 녹였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자 흡사 종로 황소곱창의 환풍기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향미가 솟아난다. 이 셰프는 손질해둔 애호박, 목이버섯, 양파, 마늘을 두태 기름을 녹인 팬에 달달 볶기 시작하더니 중국의 전통 간장인 노두유(노추)를 꺼냈다. 원어 발음으로 ‘라오처우’라 하는 노두유는 당도와 감칠맛은 한국 간장과 비슷하거나 더 강하면서도 염도는 낮은 특징이 있다. 이날 사용한 브랜드는 해천노추왕. 두태 기름에 노두유를 살짝 넣어 고명을 볶기 시작하자 익숙한 향이 국물 연구소를 가득 메운다.

명동교자 칼국수를 먹으며 우리가 ‘국물 맛’이라고 느끼는 특징의 80%는 이 고명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닭 육수의 도화지 위에 중국 간장을 태운 불맛과 소고기의 향미를 입히는 거죠. 보통 사람들이 불맛이라고 느끼는 향미는 간장이 탄 냄새인 경우가 많아요.

이 셰프는 다 볶은 고명을 다시 토치로 그을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다 끓은 닭 육수를 면보에 걸러 종지에 담고 그 위에 고명을 올린 뒤 내 앞에 놨다. “오늘은 돼지고기가 있어 그거로 했어요. 하지만 소고기로 볶은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겁니다.” 고명을 한 술 떠 입에 넣자 웃음이 난다. 이 셰프를 쳐다보자 그 역시 능글맞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국물까지 한 입 먹고 난 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손벽을 치며 크게 웃었다. 내가 먹은 국물이 어이가 없을 만큼 명동교자의 맛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 이 셰프의 ‘재해석’은 어디까지나 오마주를 위한 재해석일 뿐 명동교자가 실제로 이 레시피를 쓴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Q3.우동대박포차 국수

홍제동 우동국수라고 혹시 아세요?

라고 물었을 때 이 셰프는 단호하게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곳”이라고 답했다. ‘홍제동 우동국수’는 면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마치 프리패스와도 같은 이름이다. 수십 년 전부터 유진상가 뒤편 골목에서 수타로 반죽한 기계 면을 뽑아 멸치 국물에 말아냈다. 가격은 지금도 한 그릇에 3000원. 현재 ‘홍제동 우동국수’라는 간판의 본점은 휴업 중이고, 본점에서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따님이 ‘우동대박포차’라는 이름을 걸고 엄마의 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이 집의 육수는 멸치의 거의 모든 향미를 품고 있다. 멸치 육수의 끝판이라고 춤을 추며 너스레를 떨어도 설명이 모자랄 지경.

멸치를 베이스로 하는 육수는 정말 어려워요. 일단 좋은 멸치를 찾는 게 힘들거든요.

이 셰프가 설명을 이어간다. “멸치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계절 따라 변하는 조류마다 잡히는 멸치가 다 다르고 이걸 어떻게 처리하고 말리느냐에 따라 또 달라요. 멸치는 보통 잡아서 살짝 데친 다음 급랭해서 보관했다가 말리거든요. 그 과정에서 뒤틀어지고 눈이나 내장이 튀어나오고 그런대요.” 좋은 멸치를 고르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국물용은 대략 7cm 이상의 대멸을 쓴다. 이때 멸치의 몸이 곧고 등의 푸른 비늘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온전히 붙어 있으며, 눈이나 내장이 튀어나오지 않는 게 좋다. 이 셰프가 내게 준비해달라고 부탁한 건 멸치 전문가 홍명완 선장이 판매하는 육수용 대멸이었다. 눈이 또랑또랑하게 붙어 있고 등이 곧고 푸른 비늘이 아름답다.

바로 하나 집어 먹어보니 고추장만 찍어 먹어도 될 만큼 거부감 없이 깔끔한 맛이다. “상태가 좋은 멸치는 머리와 내장을 굳이 제거하지 않고 국물을 내도 좋아요”라며 그는 맑은 물에 멸치를 한 움큼 집어넣더니 마늘, 양파, 파뿌리, 마른 홍고추, 마른 홍합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멸치처럼 강한 육수 재료에는 파뿌리를 넣어요. 파뿌리가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는데, 조심해야 해요. 그 자체의 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닭이나 고기 육수에 넣으면 그 향을 잡아먹을 수 있어요.” 이 셰프는 멸치로 육수를 낼 때 거품을 계속 걷어내지 않았다. 처음 끓어오를 때 위로 뜬 거품만 거둬내고 뭉근하게 익도록 불을 줄인 후 50분가량 끓여냈다. 유면가 업장 안에 고릿하면서도 짭조름하고 달디단 바다의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엔 걱정이 앞섰다. 멸치가 들어가는 건 분명한데, 저 재료만으로 그 맛이 날까? 게다가 중요한 건 어쩌면 국물에 들어가는 면일지도 몰랐다.

근데 솔직히 그 집은 국물도 국물이지만, 면이 최고예요.

이유석도 내 걱정에 동의했다. 우동국수집의 면은 겉면에 찰기가 살짝 돌면서 쫄깃한 듯하지만, 입안에 들어가면 의외로 쉽게 끊어지는 순한 밀가루 면으로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 “그 집에서 면 만드는 걸 옆에서 쭉 지켜본 적이 있거든요. 정말 밀가루랑 소금만 넣더라고요. 그런 면을 뽑을 수 있는 건 엄청나게 열심히 손반죽을 하고 또 적당한 힘의 기계 밀대로 펴주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면은 국물을 적당히 머금기 마련이라 맛있다.

달걀흰자 분말만(난백분말)을 넣으면 면이 탱글탱글해지지만 국물을 많이 머금지 않아 면에 간이 잘 배지 않아요. 반면에 홍제동 우동국수 면은 육수를 흠뻑 빨아들이죠.

또 면 겉의 탄수화물이 육수에 녹아 살짝 당도를 올리며 전체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마치 전가복 등의 중식 요리에서 마지막에 넣는 전분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물을 끓인 지 4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이 셰프가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이 앞의 두 국물을 오마주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때 나는 멸치 육수는 ‘완전한 성공’과는 조금 거리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가 내온 육수는 누가 뭐라 해도 최상급 멸치 육수였다. 멸치 내장과 머리까지 통째로 끓여낸 짜릿한 맛과 통후추가 아닌 순후추로 낸 특유의 향이 일품이었다. 특히 아주 소량 넣은 홍합이 잘 어우러졌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바로 그 국물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게 뭔가가 빠졌는데, 뭐가 빠졌는지 모르겠네요. 공부를 더 해야겠어요.” 빠진 게 뭔지는 알 수 없다. 다른 건해물이거나 향신료일 수도 있다. “좀 더 해봐야겠어요. 그런데 솔직히 그 우동집 사람들은 워낙 털털해서, 가서 물어보면 그냥 가르쳐줄지도 몰라요.” 이 셰프가 이날의 실패를 갈음하려는 듯 학구열을 불태우며 말했다. 그러나 명심할 것. 이 셰프의 ‘재해석’은 어디까지나 오마주를 위한 재해석일 뿐 홍제동의 우동대박포차가 실제로 이 레시피를 쓴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송시영 Illustrator XIHA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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