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과학책』: 과학과 역사를 결합한, 초심자의 과학 입문서

『통통한 과학책』: 과학과 역사를 결합한, 초심자의 과학 입문서

ㅍㅍㅅㅅ 2021-04-09 15:08:35 신고

1.

중학교 2학년 딸아이에게 무슨 과목이 제일 재미없는지 물었다. 과학이라고 한다. 다시, 무슨 과목 제일 재미있는지 물었다. 역사라고 한다.

아, 그러면 과학에 관한 역사를 공부하면 되겠구나.

마침 정인경 교수님이 2020년 1월에 발간한『통합하고 통찰하는, 통통한 과학책』이 그런 책이다.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분량은 약 250페이지다. 1권은 질문, 물질, 에너지, 진화를 다룬다. 2권은 원자, 빅뱅, 유전자, 지능(뇌)를 다룬다.

과학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애초에 출판 의도가 청소년들이 과학을 재미있게 공부하도록 돕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딸아이와 같이 『통통한 과학책』 읽기 스터디를 했다. 나도, 딸아이도 매우 재밌게 봤다(둘이 절반씩 요약 발제를 했다).

1권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질문’은 과학 혁명의 전체 역사를 다룬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이 왜 그토록 강력했는지 알게 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믿는 것’을 진리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의미, 목적>과 같은 것을 찾고 싶어 해. 자연 세계에 대해서도 목적과 의미를 관성적으로 찾거든. 자연 세계를 탐구하면서 떨칠 수 없는 이러한 동기를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문으로 체계화했어.

  • - p.67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설명은 사람들의 상식하고 잘 맞아떨어졌어. 가령 하늘과 땅의 세계가 다르게 보이잖아? 아리스토텔레스는 달을 경계로 천상계와 지상계를 나누었어. 달 위의 세계인 천상계는 영원불변의 완전한 세계이고, 달 아래의 지상계는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는 불완전한 세계라고 말이야.

  • - p.67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에 운동까지 포섭해서 우주론, 물질론, 운동론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했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체계는 막강한 위력을 떨쳤지. (…)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기원전 4세기부터 17세기까지 2000년 동안이나 깨지기가 무척 힘들었던 거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하고서 넘어선다는 것은 인간이 믿고 싶은 상식과의 싸움이었어.

  • - p.68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물질론-운동론은 이후 중세 신학자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변형된다. 핵심은 ‘존재의 대사슬’이다. 존재의 대사슬은 신-교황-인간-동물-식물로 서열화된 구조를 갖는다.

‘존재의 대사슬’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체계가 강력했던 것은 상식의 학문화와 우주론-물질론-운동론의 통합 구조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무너뜨리려면, 우주론-물질론-운동론에 관한 상식 전반을 단일한 논리체계로 한꺼번에 무너뜨려야만 했다.

 

2.

2장, ‘물질’은 과학 혁명을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체계 전반은 너무 강력한 것이어서, 한두 명의 작업으로는 바꾸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제기된 이후 티코 브라헤,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이, 뉴턴에 이르기까지 약 150여 년에 걸쳐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달라붙어야만 했다.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과학사에서는 ‘과학혁명’이라고 표현한다. 과학혁명이 이뤄지는 과정은 언제봐도 감동적이다.

  • -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
  • - 1596년, 케플러 태양계 행성들의 ‘부등속, 타원운동’ 관측
  • - 1600년, 브루노 지동설 주장으로 화형
  • - 1610년, 갈릴레이, 달 표면 관측 + 목성 주변 위성 관측(달을 기준으로 한 천상계 이론과 지구 중심으로 우주가 돈다는 천동설이 붕괴됨)
  • - 1633년, 갈릴레이 종교재판 받음
  • - 1642년, 1월 갈릴레이 사망
  • - 1642년, 12월 뉴턴 출생
  • - 1687년, 뉴턴, 『프린키피아』 출간
  • - 1688년, 영국 명예혁명
  • - 1776년, 미국 독립혁명, 영국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출간
  • - 1789년, 프랑스 혁명

뉴턴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과학혁명에서의 주역은 역시 갈릴레오 갈릴레이라 할 수 있다. 갈릴레이는 1600년 지동설을 주장하던 브루노의 죽음을 지켜봤다. 종교재판의 엄혹한 분위기가 쌩쌩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도전에 나선다. 실험과 관측이라는 무기를 들고.

유럽에서 과학 혁명은 세계관 혁명이었다. 왜냐하면 2000년간 유지되던 세계관이 바뀌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다가, 인간 이성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게 2000년간 유지되던 세계관이 바뀌자 새로운 상상력이 분출한다. 혁명적 에너지도 분출한다.

 

3.

3장 ‘에너지’에서 가장 감동적인 사람은 역시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이다. 패러데이의 일생은 과학혁명의 본국인 영국의 저력을 보여준다.

마이클 패러데이(Micheal Faraday, 1791~1867)

패러데이는 런던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13살에 제본공 노동자가 되었다. 형이 준 1실링의 돈으로 존 데이텀의 전기 강연을 듣고 『화학에 관한 대화』라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을 듣게 되고, 21살(1812년) 나이에 데이비의 실험 조수가 된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마이클 패러데이가 세계 과학사에서 한 획을 긋는 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당대 영국의 저력을 보여준다. 의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은 미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패러데이는 1821년부터 꼬박 10년에 걸친 실험과 도전에 힘입어 1831년에 전자기 유도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磁氣)를 통해 전기(電氣)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의 주요 업적과 관련된 연도를 줄줄 외우고 있는 편이다. 마르크스는 1818년생이고, 1883년에 죽었고, 1848년 『공산당 선언』을 썼고, 1867년에 『자본 1권』을 출간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청소년 시절이었던 1831년에 전자기 유도법칙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전화,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등의 전자 제품은 모두 마이클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법칙에 빚지고 있다. 칼 마르크스가 세상을 바꿨다고 하지만, 마이클 패러데이가 세상을 바꾼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자기 유도법칙은 운동, 자기, 전기의 배열 방향이 중요하다. 이는 오른손 법칙으로 집약된다. 엄지(운동=전류의 방향), 검지(자기=코일), 중지(전기)가 각각 90도를 이룬다. ‘운-자-전’의 순서이다.

나는 또한 헤르츠가 과학자 이름이자 동시에 ‘1초 사이에 반복되는 진동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 150헤르츠는 1초에 150번 진동하는 것이고, 150메가헤르츠(MHz)는 1초 사이에 15만 번 진동하는 것이다.

 

4.

4장, ‘진화’에 나오는 다윈의 이야기 역시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다윈은(…) 지구의 모든 생물들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출현했음’을 깨달은 거야. 문제는 진화론이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거였지.

  • - p.201

1851년, 다윈은 열 살을 갓 넘긴 큰 딸 앤이 열병으로 죽게 된 이후, 생각을 더 공고하게 바꾸게 된다.

다윈은 이제부터 믿고 싶은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자고 마음먹었어.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신앙에서 벗어나 진화론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단다.

  • - p.203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는 잘 알려져 있다. 오히려 다윈의 진화론이 본격 주창되기 전에, 다양한 학문들에서 이뤄진 새로운 발견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분류학, 지질학, 고생물학에서 이뤄진 학문적 성과들이 다윈의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 18세기, 린네는 ‘꽃들에 성기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암술과 수술이다. 오늘날 용어로 ‘자가수분’이다. 식물이 동물처럼 암수의 성(性)이 있고, 유성(有性)생식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 -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 종 분류법인 ‘계, 문, 강, 목, 과, 속, 종’ 역시 린네의 업적이다.
  • - 다윈은 린네가 식물이 ‘자가수분’만 한다고 주장한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다른 개체를 매개로 하는 ‘타가수분’도 한다고 봤다. 꽃이 색깔, 향기, 꿀을 통해 벌과 곤충을 꼬시는 이유는 타가 수분 때문이다. 꽃은 ‘꼬시기 위해’ 아름답다.
  • - 린네의 분류체계는 ‘계층적 구조’를 갖는다. 생물들은 서로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면서 위계적으로 분류된다. 고양이와 개는 포유동물로 다리가 네 개이고 털이 있지만, 서로 종이 다르다. 생물학적으로 이를 유연관계라고 하는데, 다윈은 린네의 분류체계 자체가 진화의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생물들이 창조되었다면 서로 연결된 위계구조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공통의 조상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서로 공통된 특징을 갖고 달라지게 된 것이다. 다윈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 - 지질학자와 생물학자들에 의한 ‘멸종’의 발견은 그 자체로 창조론에 대한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신의 창조에 의해 ‘종이 고정되어 있다면’ 새로운 종이 출현해서도 안 되고, 멸종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1796년, 프랑스의 고생물학자 퀴비에(1769~1832)는 시베리아에서 매머드 화석을 발견한다. 멸종에 대해, 퀴비에는 천재지변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는 ‘격변설’을 주장한다.
  • - 제임스 허턴(1726~1797)은 1788년 스코틀랜드에서 암석 지층을 발견한다. 흥미롭게도 수직의 암석층 위에 수평의 암석층이 놓여 있는 곳이다. (성경에 근거한) 6천 년이 아닌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를 ‘허턴의 부정합’이라고 한다.

  • - 이후 허턴은 퀴비에의 격변설과 대비되는 동일과정설을 주장하게 된다. 동일과정설이란 ‘과거의 변화’는 ‘지금의 변화’와 같은 방식으로 됐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는 동시에, 아주 긴 세월 동안 점진적 변화를 의미한다.
  • - 다윈의 진화론은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성과물 위에서 탄생했던 셈이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는 1839년에 출간됐다. 다윈의 비글호 항해는 1831년~1836년 동안 이뤄졌다.

 

5.

다윈 이전에도 진화론을 주장하는 이론은 있었다. 하지만 다윈 이론의 독창성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다.

‘자연선택’이라고 하면 자연이 주체적 의지나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연 선택을 하는 행위자 같은 것은 없어. 진화의 목적이나 방향성 같은 것은 없지.

사실 진화는 해가 지고 뜨고, 중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냥 일어나는 과정이야. 우연히 지구라는 곳에서 생물체가 등장하면서 생긴 자연의 법칙이었어.

  • - p.239

다윈의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출간됐다. 1831년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법칙만큼이나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은 인류 역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지어 진화론의 영향은 최근까지도 사회과학 전반으로 확장되는 중이다.

『종의 기원』 출간 이후, 다윈 주장은 ‘다수설’로 공신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1924년에 다윈의 예측을 입증하는 화석이 발견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쪽 지방의 원숭이)가 발견된다. 인간과 유인원이 갈라지기 이전 ‘공통 조상’이 발견된 것이다.

인간과 유인원의 결정적 차이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뇌 용량, 다른 하나는 직립보행이다. 뇌 용량과 직립보행 중 무엇이 먼저 달라졌을까? 1974년,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화석이 발견된다. 도널드 조핸슨이 발견한 화석은 유인원처럼 팔이 길고 뇌 크기는 작았지만, 직립보행을 하고 있었다.

즉 ‘직립 보행’이 먼저 등장했다. 도널드 조핸슨은 이 화석의 이름을 ‘루시’라고 붙였다. 화석을 발굴하던 순간, 비틀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화석 발굴까지를 종합하면, 인간은 700만 년 전에 직립보행을 하며 유인원과 다른 특징을 보이게 됐다. 350만 년 전에 살았던 ‘루시’의 뇌 용량은 (유인원과 비슷한) 450cc에 불과했다. 오늘날 인간의 뇌 용량은 1500cc 정도 된다. 20만 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게 된다.

(…)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우연적이고 무계획적으로 일어났어. 자연 선택에는 앞날을 내다보는 눈이 없어. 그날그날 생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탄생한 거야. (…)

신에 의한 창조론은 인간의 특별함과 삶의 목적을 설명해준다. 인간주의적 우월함, 인간 중심주의의 토대를 만들어준다. 진화론은 인간 역시 생명체 중 하나이며, 오랜 세월 동안 환경과 우연의 결합에 의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음을 말해준다.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우주도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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