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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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 2021-04-13 17:00:00 신고

취향의 기록

10여 년간 일관된 미감을 고수하며 2021 S/S 뉴욕패션위크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분더캄머. 디자이너 신혜영은 취향을 이야기한다.


이국적인 이름이다. 분더캄머는 무슨 뜻인가?
카메라가 없던 시절, 귀족들이 진귀한 물건을 하나씩 수집하고 이를 비밀의 방에 모아두었는데 바로 그 방의 이름이 분더캄머다. 그야말로 자신의 취향이 가득 찬 공간인데 나의 컬렉션도 오래도록 소장하고 싶은 옷으로 머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원래 독일어 철자는 ‘WUNDERKAMMER’지만 여기에서 U를 지우고 시각적으로 정돈했다.
일러스트, 마케팅 분야에서 일했다. 안정적인 직장 대신 브랜드를 론칭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적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기에 자연스레 관련 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원 재학 중 우연한 계기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패션 브랜드 톰보이와 작업할 기회가 생겼다. 그 인연이 이어져 마케팅팀에 입사하게 됐는데 회사 생활이 무척 즐거웠던 거다. 불현듯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브랜드 론칭의 꿈은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아 단박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분더캄머를 론칭한 2010년은 국내에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등장하던 시점이다.
소규모 브랜드를 위한 중소기업유통센터, 패션창작스튜디오의 지원 사업이 생겼고 이를 통해 작업실이나 홍보, 마케팅 분야를 지원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29CM나 W컨셉과 같은 온라인 편집숍도 등장해 개인 디자이너들이 도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학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소프트 카리스마다. 은은하고 절제된 이미지 속에서 묵직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것 말이다. 드러내고 꾸민 것보다 훨씬 멋지게 다가온다.
분더캄머가 그리는 이상적인 여성상이 있을 것 같다.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지닌 영리한 여성들을 동경한다. 예를 들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무용가 피나 바우쉬, 김환기 화백의 아내로 잘 알려진 수필가 김향안 같은 선구자적 여성들 말이다. 김향안의 경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은 남편을 위해 무려 1955년에 홀로 파리로 떠났고 무작정 미술관을 돌며 결국 전시를 성사시킬 정도로 깨어 있는 여성이었다. 환기미술관에 가면 시선이 닿는 곳곳에서 그녀의 확고한 취향을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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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캄머는 독일어 고어로 비밀의 방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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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신혜영 대표의 업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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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캄머의 절제된 미감을 꼭 빼닮은 쇼룸.


브랜드를 운영하며 반드시 지키고 싶은 철학이 있다면.
분더캄머라는 이름처럼 취향을 굳건히 고수하는 것. 시간이 쌓일수록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는다. 벼락처럼 등장해 세상을 뒤흔드는 트렌드나 매출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 때문에 흔들리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1년에 두 번 컬렉션을 선보이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그렇다 보니 특별히 시간을 내어 고민하기보다 일상의 모든 것을 관찰하려 한다. 일상 속에서 눈에 드는 것이 있으면 집요하고 치밀하게 분석한다.
옷을 디자인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보다 밸런스가 중요하다. 분더캄머가 정의한 이미지 속에서 실루엣과 소재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한다. 가령 소재가 독특하다면 실루엣은 최대한 담백하게 정돈하는 식이다.
소재를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가?
새로운 소재를 찾고 시도하는 것을 무척 즐긴다. 컬렉션마다 일정한 흐름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무척 다양한 소재를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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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캄머의 절제된 미감을 꼭 빼닮은 쇼룸.
5, 6
2021 S/S 컬렉션.


2021 S/S 시즌은 어떤 이야기로 풀어냈나?
마스터의 하우스. 독일 데자우에 위치한 바우하우스 교수들이 살던 집을 뜻한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을 상상하다 디자이너 플로렌스 놀을 알게 됐고, 그녀를 집요하게 연구했다. 그녀의 디자인과 스타일은 물론 유연한 사고방식에서도 영감 받았다.
의상에는 어떻게 표현됐는가?
가구에 쓰이지 않던 소재를 적용한 플로렌스 놀처럼 소파 패브릭과 최대한 비슷한 소재를 사용했다. 또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것이 자신의 브랜드가 지닌 힘이라고 여겼던 그녀처럼 아티스트와 협업을 시도했다. 최종적으로 제품으로 출시되진 않아 여러 측면에서 무척 아쉽다.
2021 S/S 컬렉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룩을 꼽는다면.
하나의 제품보단 전체 스타일링을 꼽고 싶다. 무척 여성스러워 보이는 퍼프 슬리브 드레스에 몸에 꼭 붙는 레깅스와 매니시한 안경을 매치한 룩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절제된 위트를 즐긴 플로렌스 놀이 상상되지 않나.
이번 시즌, 컨셉코리아를 통해 2021 S/S 뉴욕패션위크에 진출했다.
신기하고 희한하다.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뉴욕패션위크가 디지털로 전환됐기 때문에 뉴욕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내 컬렉션을 시청했다. 현장감이 없는 탓에 정말 내가 뉴욕에 입성한 건가 얼떨떨했다.
동시에 디지털 패션위크도 처음 경험하게 됐다. 현장 패션쇼와 디지털 쇼잉의 차이점을 꼽는다면.
현장 패션쇼가 의상을 직관적으로 또 자세히 보여줄 수 있다면, 디지털 패션쇼는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컬렉션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델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점이 재미있다. 지역, 시간에 상관없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것도 무척 큰 장점이다.
뉴욕패션위크 이후 변화가 있었겠다.
이전에도 해외 세일즈는 진행하고 있었지만 뉴욕패션위크 캘린더에 이름을 올리고 나니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바이어들은 물론 웹사이트를 통해 세계 각지 고객들의 주문도 많아졌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국내에서도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이다. 패션 필름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그로 인한 파급력을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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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F/W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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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F/W 컬렉션.


어느새 론칭 12년 차에 접어들었다. 브랜드를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패션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의 변화가 있는가?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웃음 지을 때가 많다. 옷은 예술이라 숭고한 분야라고 여겼고 사람들이 몰라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해를 거듭하며 그 생각은 보다 유연해졌다. 옷은 소비자와 소통하는 매개체다. 분더캄머의 이야기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풀어, 다 같이 즐기는 것이 좋은 옷이 아닐까 한다.
실제 자신의 스타일과 분더캄머의 공통점, 차이점을 각각 꼽아달라.
분더캄머는 완벽히 나와 동일시된다. 나의 취향은 물론 나의 신체에도 잘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분더캄머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있어 다소 아쉬운데 신장이 작은 나도 이렇게 소화할 수 있다. 직접 입어보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테다.
브랜드 운영 시기에 비해 의외로 오프라인에서 접할 수 없다.
옷은 어떻게 보여지느냐도 무척 중요하다. 그게 바로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적절한 공간을 찾지 못했다. 시간을 들여 고심하고 싶다.
옷 이외에도 관심을 쏟는 분야가 있는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집에서 하는 모든 일에 집중하게 됐다. 최근엔 특히 요리에 관심이 간다. 생경한 레시피를 찾고 잘 만들어 예쁘게 차려 먹는 것을 즐기고 있다.
가까운 시점에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편집숍 분더샵에서 팝업 스토어를 연다. 착용을 원하는 고객들의 요청이 많아 고심한 결과, 앞으로는 시즌 시작 시점에 맞춰 어떤 형태든 직접 입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
분더캄머를 통해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영화 <그녀> 의 감독 스파이크 존스를 무척 좋아한다. 우연히 그의 단편영화 <아임 히어> 를 접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앱솔루트 보드카의 예술 협업 후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였다. 문화적인 흐름을 만드는 브랜드의 영향력에 대해 막연하게 떠올렸는데, 이번 뉴욕패션위크에서 선보인 패션 필름을 제작하며 이에 한 걸음 다가선 것 같아 마음이 벅차다. 멋진 옷을 지으며 문화적으로도 즐길 수 있는 브랜드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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