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할수록 지켜야 하는 '대투자 시대'의 원칙

불안할수록 지켜야 하는 '대투자 시대'의 원칙

에스콰이어 2021-04-14 21:00:00 신고



불안과 욕망의 ‘대투자 시대’에 지켜야 할 것


18층에 물리긴 했는데, 이럴 때 물타기 좀 해야죠. 저거 외계인들이 개미털기 하는 거거든요. 어차피 승차감 보고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재료는 확실한 종목입니다.

출연자 대기실에 앉아 있던 20대 젊은 작가의 입에서 방언 터지듯 현란한 주식 용어들이 튀어나왔다. 처음엔 분명히 오늘 진행할 방송 주제인 ‘미국 주식시장과 게임스톱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이야기가 주식 투자로 튀었다가, 작가가 최근 개인적으로 투자한 종목의 동향까지 가버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제약회사였는데,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 막바지 단계라는 ‘관계자 피셜’을 듣고 매수했다고 한다. 아니, 그보다 저게 다 무슨 소리냐고? 저 ‘전문 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번역을 하면 이렇다.

“1만8000원대에 매수를 한 종목의 가격이 한창 하락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점은 오히려 좋은 종목을 싸게 매수해 평균 단가를 낮추고, 향후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하락세는 외국계 투자자들이 소액 투자자를 떨궈버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입니다. 어차피 종목 흐름이 안정적일 거라고 예상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주가 상승 요인은 확실한 종목입니다.” 저런 외계어를 어떻게 알아듣냐고? 일단 아무 주식이나 산 후 포털 사이트 종목 게시판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주식토론방에 사흘만 몸을 담가보시라.

그야말로 ‘대투자 시대’다. 만화 〈원피스〉에서 해적왕 골 D. 로저의 외침에 따라 ‘대해적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3000피(코스피 지수 3000선)’의 붉은 상승 곡선을 신호탄 삼아 대투자 시대가 열렸다.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은 물론, 퇴근 후 방문한 치맥집 그리고 명절 밥상머리에서도 모두가 주식 이야기만 한다. 방송국 출연자 대기실도 점령당했다.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9만전자(9만원대 매수한 삼성전자 주식)’를 찬양했다가 셀트리온을 공격하는 공매도 세력을 욕한다. 그러다가 테슬라 탑승(매수)이 이미 늦은 건 아닌지 토론을 나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트렌드를 주도하긴커녕 끌려다니게 된 지 오래인 방송이지만, 이렇게 대세인 이야기엔 빠질 수 없다. 〈개미는 오늘도 뚠뚠〉에는 방송인 노홍철과 가수 딘딘이, 〈말년을 행복하게〉에서는 웹툰 작가 이말년과 주호민이 주식 초보의 ‘망한 투자 일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식을 안 하면 아차 하는 순간 ‘벼락거지’로 내몰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한국인이라면 불안할 때 학원을 찾는 게 국룰이다. ‘선생님’을 찾아 수많은 개미들이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하염없이 헤맨다. 경제 팟캐스트 최강자였던 〈신과함께〉는 유튜브에서 순식간에 구독자 123만 명을 끌어모았다. 지상파에도 종종 출연하는 경제 유튜버 〈슈카월드〉의 주말 라이브 방송은 시청자만 8만 명을 넘나든다. 웬만한 방송사의 메인 뉴스를 압도한다.

이런 흐름은 2030 젊은 투자층의 대량 유입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대투자 시대’의 트렌드세터인 셈이다. 정작 이들의 성적은 영 시원치 않다. 모두가 재미를 봤다던 2020년의 주식시장에서 20대 남성은 겨우 3.8%의 수익을 거뒀다. 전 연령 평균인 23.32%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30대 남성의 수익률 역시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원인은 간단했다. 주식 거래를 너무 빨리, 너무 자주 한 것이다.

단타 매매와 뇌동 매매(남을 따라 매매하는 것)가 멸망의 지름길이라는 건 진리다. 그 유명한 워런 버핏도

10년 동안 보유할 주식이 아니라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

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이런 선인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2030 동학수컷개미들은 꼭 하지 말라는 ‘단타’ 방식만 골라 실천했다. 오전 9시가 되면 회사 화장실로 사라져 HTS를 두드리는 개미들이여, 아아. 그들의 모습은 흡사 2000년대 초반, ‘바다이야기’ 게임기 앞에서 슬롯을 당기던 아재들과 같다.

이는 사실 투자보다는 도박에 가까운 행동이다. 3년 전의 비트코인과 1년 전의 부동산 광풍을 기억하시는가. 비슷한 바람이 이번에는 코스피 상승을 타고 주식시장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인생 역전’을 꿈꾸며 복권을 사는 사람에게 10년 뒤에 긁을 복권을 사라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일확천금을 기대하며 ‘풀매수’를 달리는 이들에게 장기 투자는 꿈같은 이야기다.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결과가 나오는 로또의 행운을 주식에게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타에 목숨을 건 투자자는 스스로 투자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결국 그의 주식 계좌에는 ‘강제 존버’와 ‘영원한 물타기’만 남게 된다.

18층에 들어간 20대 작가 역시 ‘로또 투자자’ 중 한 명인 셈이다. 그가 목숨을 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의 곁에는 ‘영끌’해서 서울에 아파트를 산 선배가 있고, 공기업에 입사해 노후 준비가 끝난 친구가 있다. ‘나도 빨리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이 조바심을 내게 한다. 이 불안을 만드는 건 남들 다 돈을 벌 때 나만 못 벌면 가난해진다는 논리, 이른바 상대적 박탈의 파생인 상대적 가난의 논리다. 이 문장에 ‘로또’라는 단어를 넣어 마음을 가라앉히자.

남들 다 로또로 돈을 벌 때 나만 못 벌면 가난해진다.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다 로또로 돈을 버는 세상이 오는 게 가능한가? 당신의 불안에 근거는 있는가? 불안은 미래만 볼 때 생기고, 우울은 과거만 볼 때 생긴다. 한국은 미래만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이 불안에 시달리며 하루를 보내는 나라다. 어떻게 보면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높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담보 잡힌 삶일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의 발전에 대한 믿음, 모험적인 성향과 급한 성격은 지금의 주식투자 열풍을 만들어냈다. 사실 그건 결국 오늘날 한국을 만들어온 ‘어떤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쉽게 ‘욕망을 통제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욕망을 위해 통제할 대상이 무엇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결국 왕도는 ‘국영수 위주로 예습 복습 철저히’다. 차트 들여다보면서 마음 졸이지 말고, 시간과 여유를 갖고 나와 함께 성장할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주식 게시판 대신, 경제 뉴스를 챙겨 보고 운동도 하자. ‘존버’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10년 투자할 종목’에 나 자신의 커리어가 편입되는 ‘호재’가 펼쳐질 수도 있다. 결국 투자는 나 좋자고 하는 거니까.



Who`s the writer?
임경빈은 유튜버 ‘헬마우스’로도 활동하는 시사평론가다. 방송작가 출신으로 〈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추월의 시대〉 등의 책을 썼다.



EDITOR 김현유 Illustrator 이은호 WRITER 임경빈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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