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걸 좋아한다. 사람이든 옷이든 책이든. 날씨 또한 말해 뭐할까. 당연히 비 오는 날과 지나치게 더운 날엔 참는다. 아무리 골프가 날 유혹해도 말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여름부터 초가을 사이 한낮 라운드는 ‘자제’하게 되더라. 기왕이면 선선하게, 땀 덜 흘리면서 공 치면 좋으니까. 어떤 이는 저녁엔 공도 잘 안 보이고, 더웠다 추웠다 할 테고, 끝나면 너무 늦어서 동반자들과 밥 먹고 오기도 힘들고, 피곤할 야간 운전이 두려울 거란다. 인정한다. 그럼에도 밤 골프는 좋다. 밤 골프만의 매력이 있기에.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우선 싸다. 그렇다, 비용이 적게 든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골퍼들의 가장 큰 고민은 줄지 않는 스코어, 빠지지 않는 살, ‘광클’해야 겨우 잡을 수 있는 부킹이 아닌 라운드 날의 ‘총 지출금액’이 아닐까. 올라도 너무 올랐다. 슬프게도 코로나19의 확진자 수 증가 추세와 정비례하게 쭉쭉 그린피가 인상됐다. 해외에 못 나가니, ‘적체’된 내수 골퍼들의 수요가 넘쳐 공급자가 ‘갑甲’이 된 셈. 토요일 오후 2시에 골프 치러갔더니 26만원을 내라더라. 오직 그린피로만 말이다. 밤 골프는 그에 비하면 양반이다. 가격이 착하다. 그린피가 아무리 비싸도 20만원대까지 도달하지 않는 편. 평균적으로 15만원 언저리이다. 잘 찾으면 10만원 초반대의 골프장도 있고. 코스 관리는 걱정하지 마시라. 요즘엔 잔디 제대로 안 깎아두면 골프 유튜버들의 생생한 리뷰에 ‘주홍글씨’가 찍히니. 전통의 명문 ‘몽베르 CC’를 추천한다. 10월 기준 그린피가 평일엔 16만원, 주말엔 22만원이다. 찾아가기엔 꽤 먼 길이었지만 사진에서만 보던 웅장한 클럽하우스에 압도됐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비용보다 거리가 중요하다면 가까운 데로 가자.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골프 8학군 용인으로 가자. 주말 황금 시간대에 춘천 가다 도로에 2시간 반 갇혀봤고, 충주로 향하다 골퍼 인생 최초로 ‘노쇼No-show’ 할 뻔했다. 용인이라면 그럴 걱정 전혀 없다. 심지어 22시 이후 심야 시각엔 차도 안 밀리지 않나. 용인에서 서울 마포까지 45분 만에 도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 물론 합법적으로 살포시(?) 밟았다. 어쨌든 밤 골프는 귀갓길이 짧다. 18홀 다 돌고 난 후 밀려오는 피로도는 낮이나 밤이나 그리 차이 나지 않을 테니. 돌아오다 열받지 않고 졸지도 않으려면 길 뻥뻥 뚫리는 밤 골프가 괜찮지 않을까. 시원하게 달리다 보면, 해저드로 마구 날아가던 내 골프공들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을 테고. 용인의 핫한 신상 골프장 ‘세현 CC’와 비교적 어렵지 않은 코스의 ‘골드 CC’를 추천한다.
사실 골프는 4인의 스포츠다. 아니, 이었다. 종종 멤버 수 채우는 게 힘들었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 당당히 둘이 나갈 수 있다. 역설적으로도 코로나19 덕분에 말이다. 수도권은 집합 제한 조치 덕(?)에 저녁 라운드는 ‘반드시’ 2인 플레이만 가능해졌다. 이제 “같이 갈래?” 하면, “좋지!” 하고 단둘이 라운드할 수 있다. 죽마고우 라운드, 부부 라운드, 커플 라운드, 비밀 라운드 모두 가능해진 요즘 밤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얼른 2인 라운드 한 번 경험해 보시길. 감사하게도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그땐 아쉽게도 ‘오붓한’ 라운드는 불가할 테니.
여러분, 일찍 떠나려는 가을을 놓아주지 마세요. 하루하루 꼭 붙잡아 골프 추억 쌓으세요. 저도 충실히 그래볼게요. 그래서 전 내일도 떠납니다. 저 멀리 홍천으로. 아, 물론 2인 라운드고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Writer 이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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