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목의 경영전략] 지적 겸손

[최송목의 경영전략] 지적 겸손

소비자경제신문 2022-05-24 13:26:33 신고

3줄요약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다가 한 아이가 어른 키만 한 큰 물 항아리에 빠졌다. 어떤 아이는 어른을 부르러 뛰어가고, 어떤 아이는 당황해서 울고, 또 어떤 아이는 항아리 주변을 맴돌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한 어린이가 주저 없이 돌을 집어들어 항아리 밑 부분을 깨고 그 친구 아이를 구했다. 중국 북송(北宋) 시대 자치통감을 집필한 사마광(司馬光)의 어린 시절 일화다. 값비싼 항아리보다 친구의 목숨이 더 중하다는 걸 빨리 판단하고 돌로 항아리를 깨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결단’에 대해 성공 철학자 나폴레옹 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유부단은 성공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신속한 결단력의 소유자이며, 부를 축적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결단이 매우 느리다” 이같은 ‘결단’이라는 말에는 미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태를 나름대로 추론 정리하고 방향을 정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결단은 리더의 핵심 역할이다.

이 결단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바로 이웃해 있는 단어가 소통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직에서 소통을 통해 모두의 지지를 업고 민주적으로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SNS와 정보통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의 여론은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때로 전체의 뜻을 오도할 위험소지가 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만장일치는 현대 다수 민중 사회에서 환상이며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이론적인 목표다. 민주주의란 51%의 힘을 인정하면서 나의 49% 의견이 무시되거나 양보되어야만 하는 절차다. 여기서 51% 다수에게는 ‘배려와 소통’의 노력이, 그리고 나머지 49%에게는 ‘인내와 양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익의 목적성이 명확한 회사 조직은 민주주의 절차만으로 조직을 끌어갈 수 없다. 그 책임자인 CEO는 ‘과정’에 상관없이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CEO는 다수 직원들의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어 파악하고 전체 조직의 이익이 되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 이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소통이다.

이처럼 소통이 중요하다 해서 CEO는 소통과 결단 사이에서 우물쭈물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추앙하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잠깐 들여다보자. 이순신이 지금 이 시대 포퓰리즘적 소통을 했다면 그 치열하고 긴박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 세종대왕이 최만리와 같은 옹고집 중신들과 편안한 소통만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과연 한글 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했던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와 노무현의 FTA를 만약 국민투표로 결정했다면 지금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

역사에서 많은 경우 군중들은 집단 최면에 빠지기 쉽고, 눈앞의 개인 이기적인 욕망과 근시안적 눈으로 상황을 판단하곤 했다. 민중은 수많은 이익집단 간의 이해관계와 다양한 지적 수준과 정보가 혼재된 카오스 덩어리다. 불과 수 km 앞이 절벽 낭뜨러지임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매크로 관점을 가지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CEO는 제도·조직 간 이해를 넘어 상황을 판단하고 합리적인 추론에 기반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예컨대 바둑 7급의 천만 명 민중이 아무리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아이디어를 짜내고 묘수를 궁리한다 해도 단 1명 프로 바둑 1급의 한 수를 이길 수 없다. 따라서 결정적인 사안일 경우 병법 36계의 제1계 만천과해(瞞天過海)도 불사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 즉 CEO는 확실한 성공이 담보된다고 판단한다면 소통도 중요하지만, 조직원들의 눈을 잠시 가려서라도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일방적 결단의 불가피한 선택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지도자의 결단은 일종의 독단이며 엘리트주의 기반의 독재라 할 수 있다.

선거에서 패배한 상대도 하나의 통합된 국민으로 보듬어야 하는 정치세계와는 다르게, 하나의 이익을 지향하는 목적 집단의 수장인 회사 CEO는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종의 ‘독재’ 결정권을 부여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절대적 권한이 있는 만큼 무한 책임자이기도 하다. ESG기반의 경영으로 수익이 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해 발생, 노동분쟁도 최소화하면서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조직을 이끌어 가야 한다. 이 모든 문제가 소통과 결단 사이에 존재하는 과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CEO가 주어진 ‘독재’ 권한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허들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이를 견제하는 펜스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CEO는 아무리 확신하는 결정이라 할지라도 조직원들을 설득하려는 소통의 노력과 그들이 이해하는데 걸리는 다소의 시간을 참아내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CEO에게 가장 필요한 이 시대 덕목은 바둑 1급의 ‘신의 한 수’ 독단이나 카리스마로 강제화된 리더십이 아니다. 그 ‘신의 한 수’를 비전문가,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고 설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과감하게 자기를 낮추어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려는 ‘지적 겸손’이다.

글: 《사장으로 견딘다는 것》 저자 최송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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