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형상을 빚는 중인가, 깨는 중인가. 인물을 알아보라는 건가, 알아보지 말자는 건가. 멀쩡하게 잘생긴 얼굴이, 칼날이 스친 듯 매끈하게 도려낸 절단면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복잡해지는 건 저 두상 어디쯤에 시선을 둬야 하는가다. 그래도 살아남은 얼굴을 봐야 하는지, 깨끗이 잘려나간 단면을 봐야 하는지.
작가 정득용(45)은 조각을 한다. 또 조각을 지운다. 역사 속 인물이든, 주변의 인물이든 손에 닿으면 예외가 없다. 애써 빚어내고 가차없이 밀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회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리고 지우는’ 일을 작가는 조각에서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내가 지운 건 얼굴도, 머리도 아니라”고 한다. 지운 건 생각일 뿐이란다.
그 시작은 흔한 석고상이었다. 두상의 일부를 대나무처럼 베어내 보니, 아니 산업용 샌딩머신에 갈아내고 보니 다른 게 보였단 건데. 바로 본질에 다가서는 방법, 비워야 비로소 채울 수 있는 ‘생각’이란 것 말이다. 저 형상, 저 인물, 저 얼굴 ‘나폴레옹 마스크’(2020)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24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스튜디오 디바인서 여는 개인전 ‘생각하는 내가 있기 이전에: 생각 지우기(Erasing Cogito)’에서 볼 수 있다. 20여년을 이탈리아에서 살며 활동해온 작가가 한국에서 연 첫 개인전이다. 조각·드로잉 28점을 세우고 걸었다. 레진. 21×9×29(h)㎝. 스튜디오 디바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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