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도 전략” 기업들 실리주의 행보 강화

“투자도 전략” 기업들 실리주의 행보 강화

데일리임팩트 2022-07-20 20:34:35 신고

3줄요약
기업들이 투자, 배당 등을 추진하기에 앞서 적절성 여부를 검토하는 분위기다. 재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의 혜택이 약속되지 않는 투자는 신중하게 단행하는 '실리주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기업들이 투자, 배당 등을 추진하기에 앞서 적절성 여부를 검토하는 분위기다. 재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의 혜택이 약속되지 않는 투자는 신중하게 단행하는 '실리주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기업들의 실리주의 행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5월 경쟁적으로 조 단위 투자계획을 내놓을 때만 해도 기업들은 공격적 경영을 예고했다. 국내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발생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투자액을 늘려야 경기 회복 이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고히 하고 첨단 산업 분야를 선점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랬던 기업들 사이에 불과 두달여만에 ‘관망’ 기류가 뚜렷해지고 있다. 당장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기업이 설비투자를 놓고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분야에서도 투자 효과를 따져야 할 만큼 경영 시계가 불투명하다는 의미다.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수익을 올리기는커녕 대출이자를 내기도 빠듯해지자 기업들이 경영 효율성을 따져 실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청주 팹 증설을 보류했다. 약 4조3000억원을 투입해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 신규 팹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지난달 이사회에서 부결됐다. 

SK하이닉스는 시장의 전망과 달리 메모리반도체 가격 변동 주기가 짧아졌고, 향후 수요가 견조하다는 점을 들어 선제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1분기 실적설명회에서도 “향후 몇 년간 시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능력을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면서 “용인 팹 이외에 추가적으로 다른 공장의 필요성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를 놓고 청주 팹 증설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경기 이천캠퍼스는 여유 공간이 없고, 용인 클러스터는 향후 신설되는 팹을 비(非)수도권 지역에 세우는 조건으로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주에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M11·12·15가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2019년 43만3000㎡ 부지가 확보된 상태였다. 산업단지 조성이 끝난 터라 2025년이면 제품 양산이 가능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당 SK U타워를 SK리츠에 매각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용인-이천-청주를 잇는 삼각 축을 중심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존재감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설비투자에 속도를 냈다. 계획보다 3년 앞당겨 M14·15·16을 증설했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를 진행시켜왔다. 지난해 M16까지 3개 팹 설비투자액만 총 46조원, 용인 클러스터에 추가로 120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기업으로 확실히 자리 잡겠다는 최태원 회장의 의지가 강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최 회장은 투자 속도 조절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지난 13일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세웠던 투자계획은 당연히 바뀔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원재료 부분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원래 투자대로 하기에는 계획이 잘 안 맞고, (하반기 경기 침체 때문에) 전술적 측면에서 투자 지연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지난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파이낸셜 스토리와 기업가치를 연계할 것을 주문한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나옴직한 발언이었다는 평가다. 성과와 주가 관리를 모두 좇아야 하는 만큼, 재계에서는 SK가 투자 계획을 놓고 ‘전략적 판단’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2022년 국내 상장사 시가총액 변동 추이. 자료. 한국CXO연구소.

투자 적절성을 따지는 기업은 SK하이닉스만이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미국 투자 건을 고심 중이다. 이달 초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 건걸 건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배터리업체 최초로 미국 현지에 원통형 배터리 전용공장을 지어 시장 영향력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1조7000억원을 들여 연간 생산량 11GWh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3월 이 같은 내용을 밝힌 뒤 4월 부지 매입, 5월 부지 사용 계획 승인을 마쳤고, 이달 착공만 남은 상태였다. 

파우치형보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데다 안정성이 높은 원통형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의 실적 견인차이다. 확장성 또한 좋다. 전자제품부터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응용처도 다양하다. 주요 소비시장인 미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하면 실적 개선과 함께 시장 점유율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투자를 강행하는 대신 재무 부담을 줄일 방안을 없는지 살펴보기는 방향으로 틀었다. 

기업 환경은 올 초부터 악화돼왔다. 물가와 환율, 금리가 일제히 뛰었고,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래이션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이에 시장에서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6개월 사이 상장사 2441곳의 시가총액은 480조원 이상 주저앉았다. 연초 2575조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2095조원으로 하락하면서 5분의 1 가량이 증발했다. 

문제는 하반기에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산업 자문위원회 조사를 분석한 결과, 31개 회원국 경제단체 중에 하반기 경영 환경이 개선을 전망한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낙관론은 50%포인트나 줄었다. 자국 기업투자 감소를 예상하는 응답도 2%에서 23%로 21%포인트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경제단체들이 올해 하반기 경영 환경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면서 투자 가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료. 전경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경제단체들이 올해 하반기 경영 환경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면서 투자 가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료. 전경련. 

이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이 내년에 일부 사업부문 인력 충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매년 5~10%가량 증원해왔으나, 내년에는 퇴사자가 생겨도 충원하지 않기도 했다. 신제품 개발 필수 인력 외에 불필요한 인건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구글, 아마존, 메타, 스냅 등도 채용과 지출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감원에 들어갔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경영계의 진단이다. 경기침체와 원가 압박, 수요 약세를 이유로 지출을 줄인 기업이 등장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처음으로 반기배당을 실시할 예정이었지만 기말배당만 실시하기로 했다. 하반기를 버티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일각에서는 인원 감축 기조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를 포함해 국내 주요 그룹들이 향후 5년 간 약속한 투자액은 1000조원 이상, 채용 인원도 28만명을 넘는다. 매년 200조원 이상을 투입해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최소 5만명 이상을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자면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공장 증설을 진행하고, 재직자 중 일정 인원 이상을 새 인물로 채워야 한다. 기업들의 재무 부담이 늘어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기업의 대출 이자 부담이 3조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낮은 금리 덕분에 주식·채권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익숙해졌던 만큼, 기업들이 이자 갚기도 버거운 처지에 놓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숫자만 봐도 기업들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긴 힘들다”면서 “일단 ‘의지’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M&A나 스타트업 투자 등에 활발히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소화할 수 인력은 한계가 있다”며 “어떤 식으로든 국내외 사업장에서 인력 재배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만 기업들의 긴축 경영이 ‘정략적 의도’가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은 투자 선순환을 위해서는 법인세 인하, 투자·상생협력 촉진세 폐지 등 조세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반영해 OECD 평균에 맞도록 정비할 방침이다. 오는 21일 발표될 세제개편안에는 법인세를 25%에서 22%로 낮추고, 법인세 구간을 단순화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소수 재벌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라며 저지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혀 기업들의 요구가 온전히 관철되기 어려울 수 있다. 때문에 투자 보류, 배당 철회 등을 통해 기업들이 정부의 측면 지원을 강력히 요청했다는 분석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데일리임팩트에 “공장 증설은 현재 업황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제 감면이나 각종 혜택, 규제 해소 여부가 더 중요한 고려 요소”라면서 “투자 프리미엄을 최대한 끌어오기 위한 고민이 반영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데일리임팩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인기 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