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74)이 젊은 시절 인간 안중근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작심한 이유다. 그는 최근 펴낸 신작 ‘하얼빈’(문학동네)에서 안중근에게 드리워져 있던 ‘영웅 서사’를 걷어내는 대신 가슴 뜨겁고 혼란스러웠을 서른한 살 청년으로 되살려놓았다.
김훈은 3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간담회에서 “젊을 때 구상했지만 밥벌이하느라, 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일생동안 방치해 놨던 작품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면서 신작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몸이 아팠고, 올봄이 돼서야 회복했다. 더는 미뤄둘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김훈은 “건강을 회복한 후 1월1일부터 쓰기 시작해 6월에 끝났다. 서둘렀는데 의외로 빨리 끝났다. 덜 만족하더라도 빨리 끝내야겠구나 생각했다”며 애초의 구상을 많이 줄인 이유를 이야기했다.
소설은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기존 도서들과 달리,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췄다. ‘칼의 노래’가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불안을 직시한 것처럼 이 작품도 안중근이라는 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다.
소설의 갈등구조는 크게 3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안중근과 이토의 갈등, 문명개화와 약육강식이란 시대적 갈등, 안중근이란 천주교 신자와 제국주의에 반쯤 발을 걸친 신부 간 갈등이다.
안중근과 대척점에 있는 이토의 심리 묘사도 공들인 부분이다. 그는 “안중근의 총에 맞아 죽어 마땅한 쓰레기 같은 인물이란 게 이토에 대한 지배적 시각이었다”며 “한 인간 안에서 문명개화란 큰 과업과 약육강식이란 야만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이토가 그것을 이 세계에서 어떻게 실현하려고 한 것인가를 묘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훈은 자신의 이번 소설이 “반일 민족주의로 읽혀지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며 경계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초야에 묻혀 글이나 쓰는 사람’이라면서 “개인의 소견을 말한다면, 민족주의는 국권이 짓밟히고 위태로울 때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정신의 동력으로써 매우 고귀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층 간 사회 먹이 피라미드 관계가 적대적인 현실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현실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강조했다.
책 후반부에 붙인 ‘작가의 말’에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고 쓴 것을 두고선 “안중근이 자기 시대에 이토를 적으로 생각해서 쏴 죽였다고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동양 평화의 명분은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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