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안중근의 청춘 써내는 것, 내 소망이었다”

소설가 김훈 “안중근의 청춘 써내는 것, 내 소망이었다”

이데일리 2022-08-03 16:34:52 신고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가장 놀라웠고, 기막히게 아름다웠던 대목은 (안중근과 우덕순) 두 젊은이가 블라디보스토크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만나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논할 때입니다. ‘왜 해야 하냐’는 대의명분 토론 없이 발딱 일어난 겁니다. 시대 전체에 대한 고뇌는 무거웠지만, 처신은 바람처럼 가벼웠던 거죠.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소설가 김훈(74)이 젊은 시절 인간 안중근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작심한 이유다. 그는 최근 펴낸 신작 ‘하얼빈’(문학동네)에서 안중근에게 드리워져 있던 ‘영웅 서사’를 걷어내는 대신 가슴 뜨겁고 혼란스러웠을 서른한 살 청년으로 되살려놓았다.

김훈은 3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간담회에서 “젊을 때 구상했지만 밥벌이하느라, 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일생동안 방치해 놨던 작품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면서 신작을 소개했다.

김훈 작가가 3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가 안중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 시절 안중근 심문조서를 읽고 난 뒤였다. “안중근 심문 조서와 이순신 난중일기가 그 시절 나를 사로잡았죠. 그때 봤던 글들로 두 책(‘칼의 노래’, ‘하얼빈’)을 내게 됐으니 제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죠. 책이라는 게 인간의 생을 지배할 수도 있겠구나 가끔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해 몸이 아팠고, 올봄이 돼서야 회복했다. 더는 미뤄둘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김훈은 “건강을 회복한 후 1월1일부터 쓰기 시작해 6월에 끝났다. 서둘렀는데 의외로 빨리 끝났다. 덜 만족하더라도 빨리 끝내야겠구나 생각했다”며 애초의 구상을 많이 줄인 이유를 이야기했다.

소설은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기존 도서들과 달리,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췄다. ‘칼의 노래’가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불안을 직시한 것처럼 이 작품도 안중근이라는 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다.


김훈은 “소설에서 안중근 형성기는 완전히 빠져 있다. ‘단지동맹’ 같은 사건도 안 다뤘고. 안중근의 의병투쟁은 소략하게 다루고 있다. 의병투쟁에서 의혈투쟁으로 전환하는 대목에서 소설은 시작된다”고 말했다. “안중근을 말할 때 민족주의적 열정과 영웅성을 뺄 순 없죠. 하지만 그의 청춘과 영혼, 생명력을 소설로 묘사하려는 것이 저의 소망이었습니다. 안중근과 이토가 운명적으로 하얼빈에서 만나 파국을 이루는 그런 비극성과 그 안에 든 희망까지도요.”

소설의 갈등구조는 크게 3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안중근과 이토의 갈등, 문명개화와 약육강식이란 시대적 갈등, 안중근이란 천주교 신자와 제국주의에 반쯤 발을 걸친 신부 간 갈등이다.

안중근과 대척점에 있는 이토의 심리 묘사도 공들인 부분이다. 그는 “안중근의 총에 맞아 죽어 마땅한 쓰레기 같은 인물이란 게 이토에 대한 지배적 시각이었다”며 “한 인간 안에서 문명개화란 큰 과업과 약육강식이란 야만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이토가 그것을 이 세계에서 어떻게 실현하려고 한 것인가를 묘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훈은 자신의 이번 소설이 “반일 민족주의로 읽혀지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며 경계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초야에 묻혀 글이나 쓰는 사람’이라면서 “개인의 소견을 말한다면, 민족주의는 국권이 짓밟히고 위태로울 때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정신의 동력으로써 매우 고귀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층 간 사회 먹이 피라미드 관계가 적대적인 현실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현실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강조했다.

책 후반부에 붙인 ‘작가의 말’에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고 쓴 것을 두고선 “안중근이 자기 시대에 이토를 적으로 생각해서 쏴 죽였다고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동양 평화의 명분은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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