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교도소 내 고문·성적 가혹행위 조직적으로 이뤄져,' 전직 수감자들 폭로

'러시아 교도소 내 고문·성적 가혹행위 조직적으로 이뤄져,' 전직 수감자들 폭로

BBC News 코리아 2022-08-10 14:35:30 신고

알렉세이 마카로프는 교도소 측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가혹 행위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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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마카로프는 교도소 측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가혹 행위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직 수감자들이 B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교도소 내에서 강간과 고문이 조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작년에도 내부자에 의해 이러한 인권 유린 장면을 담은 영상이 유출된 바 있다.

피해자들은 BBC에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정의를 위해 어떤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 털어 놓았다.

주의: 이 기사에는 성적 학대 및 폭력 등 보기 다소 불편한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해 러시아 남서부 사라토프 교도소에 세간의 주목이 집중됐다. 교도소 내 의료시설에서 벌어진 끔찍한 수감자 학대 영상을 어느 인권단체가 입수해 전 세계 언론이 이를 보도했기 때문이다.

알렉세이 마카로프는 2018년 폭행죄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기 전부터 사라토프 교도소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지역 다른 교도소에서 사라토프로 이송된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의료 기록이 조작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은밀하게 고문이 자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엔 교도소를 독립적으로 감독하는 기관이 미비하며, 보건 격리 규칙이 적용되는 교도소 내 진료소를 감독하는 기관은 더더욱 부재하다.

결핵으로 몸이 편치 않았던 마카로프는 사라토프 교도소에서 지내는 동안 2차례 강간당했다고 한다.

피해자들과 전문가들은 교도소 측의 승인 아래 마카로프와 같은 수감자에게 폭력이 행해지며, 보통 수감자를 협박 또는 위협하거나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폭행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라토프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학대당하는 바디캠 영상이 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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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라토프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학대당하는 바디캠 영상이 유출됐다

교도소 내 가혹행위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러시아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실제로 러시아 독립 언론 '프로엑트'에 따르면 2015~2019년까지 러시아 전 지역의 90%에서 고문 행위가 보고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치는 신속히 이뤄지지 않았다.

BBC가 같은 시기 작성된 수천 건의 법원 기록을 분석한 결과 가장 심각한 가혹행위 혐의로 열린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교도관은 총 41명이었다. 그러나 거의 절반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BBC는 마카로프 등 전직 수감자들을 접촉해 러시아 교도소에서 이들이 겪은 가혹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마카로프가 처음 고문을 당한 시기는 2020년 2월이었다고 한다. 당시 교도소 행정 당국을 겨냥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자백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자 남성 3명이 그를 제압해 지속적으로 폭력적인 성적 학대를 가했다.

"10분간 저를 구타하더니 제 옷을 찢었습니다. 그 뒤 한 2시간가량 자루걸레 손잡이 부분으로 절 계속 강간했습니다."

"제가 기절하면 찬물을 부어 깨운 뒤 테이블 위로 다시 내던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달 뒤 마카로프를 공격한 남성들은 그에게 5만루블(약 108만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입을 다물라며 또 한 번 강간했다.

마카로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한 고문이 영상으로 촬영됐다고 말했다. 만약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않을 경우 이러한 영상이 전체 교도소에 퍼진다는 것을 수감자들도 알고 있다고 한다.

마카로프는 다른 수감자들이 강간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교도소장의 지시에 따라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또한 고문이 벌어지는 동안 피해자들의 비명을 감추기 위해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놓는다고 한다.

한편 지난해 파문을 일으킨 사라토프 교도소 가혹 행위 영상은 해당 교도소에 수용됐던 세르게이 세빌리예프에 의해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수감자 수십 명에 대한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유출하는 데 성공한 세빌리예프는 이러한 고문이 조직적인 시스템의 일부로, 고위급에서도 승인한 행위라고 밝혔다.

당시 교도소 내 보안 부서에 인력이 부족해 세빌리예프는 교도관들이 착용하는 바디캠 영상을 모니터하고 분류하는 일을 맡게 됐다. 그러면서 해당 영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빌리예프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라토프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에게 자신들 대신 비열한 짓을 하라고 강요하며, 다른 수감자들을 폭행할 때 바디캠 착용을 요구한다고 했다. 영상을 남기기 위해서다.

세빌리예프는 "보안부서장으로부터 [바디캠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고 나서 보안 부서에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녹화된 일부 폭행 영상을 저장해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때때로 더 높은 고위 인사에게 전달할 수 있게 드라이브에 옮기라는 지시도 있었다.

비밀리에 벌어지고 있는 잔혹 행위를 알게 된 이후 세빌리예프는 영상 파일을 복사해 빼돌리기 시작했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런 폭력을 정상으로 보는 것이니까요."

일부 영상에서는 수갑을 사용해 고문을 자행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수갑은 바디캠과 마찬가지로 교도관에게만 지급된다.

세빌리예프는 가혹행위를 저지른 수감자들은 강력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장기 복역수라고 했다.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당국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가리켜 "프레소스츠키"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 수감자였던 세빌리예프는 작년 충격적인 영상을 세상에 공개하며 러시아 교도소의 고문 행위를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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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수감자였던 세빌리예프는 작년 충격적인 영상을 세상에 공개하며 러시아 교도소의 고문 행위를 폭로했다

세빌리예프는 "이들 '프레소스츠키'는 복역 기간 잘 지내는 것에만 관심 있다. 교도소 측과 서로 협조해 잘 먹고 잘 자고 약간의 특권도 누리는 그런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설립한 러시아의 수감자 인권단체 '굴라그.넷'에 영상을 공개한 인권 운동가 블라디미르 오세츠킨은 한 특정 영상을 주목했다.

이 영상을 살펴보면 고문자들은 특정 프로토콜을 소름돋을 정도로 잘 따르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사전에 교육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문자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서로 말없이도 조용히 일을 벌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잘 마련된 체계를 따르고 있으니까요. [영상 속 남성은] 강간하기 위해 어떻게 피해자의 다리를 비틀거나 벌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편 세빌리예프의 폭로 이후 '프레소스츠키' 6명이 체포됐으나, 이들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또한 2달 뒤 체포된 사라토프 교도소 진료소장과 부소장도 영상 속 가혹 행위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나서 연방교정국장을 교체하고 변화를 이뤄내기 위한 "체계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러시아에선 권력 남용 및 증거 수집을 목적으로 고문하는 행위를 강력히 처벌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개별적인 고문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게 인권 운동가들의 주장이다.

사실 푸틴 대통령이 변화를 약속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수도 모스크바 동북부 야로슬라블의 한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집단 구타하는 영상이 유출된 이후에도 비슷한 약속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2020년 야로슬라블 교도관 11명에겐 최소한의 징역형이, 고위급 교도관 2명에겐 심지어 무죄가 선고됐다.

한편 고문 피해자들을 전문으로 변호하는 율리아 츠바노바 변호사는 유죄 여부에 관련 없이 자백에만 초점을 맞추는 당국이야말로 조직적 가혹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범죄 수사에 책임이 있는 관료들이 교도소 내 고문을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자백을 가장 최우선으로 중요시하니까요."

현재 츠바노바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한 자백을 거부하다 2017년 고문을 당한 안톤 로마쇼프(22) 사건을 맡고 있다.

과거 로마쇼프는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경찰은 그에게 훨씬 더 중한 범죄인 마약 거래 혐의도 인정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로마쇼프는 자백을 거부했고 2016년 말 러시아 서부 블라디미르주의 구치소로 이송됐다.

로마쇼프가 고문을 당한 악명 높은 '26번 감방'이 있는 블라디미르 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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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쇼프가 고문을 당한 악명 높은 '26번 감방'이 있는 블라디미르 구치소

"저는 26번 감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며칠간 계속해서 비명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26번 감방에 들어서니 두 남성이 로마쇼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남성들은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등 뒤로 손과 발을 묶은 뒤 온종일 구타했다고 한다.

이들이 심지어 로마쇼프의 바지까지 벗기자 로마쇼프는 끝내 어디든 서명하겠다고 애원했다. 이후 법정에서 고문에 의한 자백이라고 항변했으나, 로마쇼프는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구치소 내 또 다른 수감자가 자신을 고문하겠다고 위협한 '프레소스츠키' 중 한 명을 살해하면서 블라디미르 구치소 실태 조사가 시작됐다.

증언대에서 선 교도관들은 대부분 이 악명높은 26번 감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로마쇼프와 다른 두 수감자가 증거를 제출하면서 고문실을 운영하던 교도관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안톤 로마쇼프는 자신에게 마약 거래 혐의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가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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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로마쇼프는 자신에게 마약 거래 혐의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이야말로 현재까지 러시아 내 가장 규모가 큰 가혹 행위 사건이다.

2020년 봄 이르쿠츠크 인근 도시 앙가르스크의 제15 교도소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당국은 진압대를 투입했다. 당시 수감자 수백 명은 교도관과 '프레소스츠키'들이 기다리고 있는 구치소 2곳으로 이송됐다.

당시 사기죄로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던 데니스 포쿠사예프는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들이] 제게 그러더군요. '네가 유죄인지 아닌지 우리가 신경 쓸 것 같나? 폭동 무리에 있었기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요."

츠바노바 변호사는 일반적인 패턴을 설명해줬다.

고문 피해자들을 전문으로 변호하는 츠바노바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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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피해자들을 전문으로 변호하는 츠바노바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수사관은] 누구를 심문하고, 어떤 증인을 심문하며, 어떤 조사를 수행할지 결정합니다. 그리고 나서 교도관에게 '이 특정 인물로부터 자백이 필요하다'고 지시를 내립니다."

포쿠사예프는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3개월간 매일 폭력이 이어졌다"며 정말 끔찍한 날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교도관들이 고문에 연루됐다는 게 포쿠사예프의 주장이다.

"그들은 웃으며 옆에서 과일을 먹었습니다. 한 사람이 온갖 물건으로 강간당하고 있는데도요. 그냥 웃으며 즐겼습니다."

BBC는 러시아 연방교정국 측에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문 및 강간에 관한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은 없었다.

인권 운동가들은 해당 교도소 시위 이후 적어도 수감자 350명이 고문을 당했다고 추정한다.

데니스 포쿠사예프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한 정의를 구현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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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포쿠사예프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한 정의를 구현하기로 결심했다

포쿠사예프는 이 사건의 피해자로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30명 중 한 명이자, 법정에서 증언할 준비가 된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러 차례 재판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포쿠사예프는 소수의 다른 동료 수감자와 함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교도관 2명에 대한 증거를 제시할 예정이다.

츠바노바 변호사와 이 사건의 증인 모두 기밀유지협약에 서명해야 했다. 이번 수사가 과연 의미 있는 개혁으로 이어질지는 불분명하다.

한편 포쿠사예프는 아직도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저는 거의 매일 집 옆 숲에 옵니다. 여기서 욕설을 내지릅니다. 제 안을 좀먹지 않고 분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포쿠사예프는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용감해진다면 정의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러시아의] 사람들은 나와서 목소리를 내기 두려워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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