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숭이두창 환자가 겪는 ‘트라우마적인 경험’

미국 원숭이두창 환자가 겪는 ‘트라우마적인 경험’

BBC News 코리아 2022-08-13 10:35:54 신고

3줄요약
뉴욕 원숭이두창 시위
Getty Images
뉴욕 등 미국 전역의 LGBT 커뮤니티는 원숭이두창에 대한 더 많은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주 후반 원숭이두창에 대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앞서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우려가 몇 주간 제기된 뒤다.

화상회의 플랫폼 '줌'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된 남성 동성애자들이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이 있다.

치료나 검사를 위해 의료진을 찾아갔으나 거절당한 좌절감을 공유하기도 하고, 몸에 새로운 물집이 생기고 고통이 심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또한 피부 병변이 가라앉는 동안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각자 경험을 얘기하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여기에 모인 그 누구도 바란 적 없던 경험이다.

올해 미국에선 지난 5월 18일 매사추세츠주에서 처음으로 원숭이두창 감염 사례가 보고된 뒤 와이오밍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1만 명 이상이 감염됐다.

비록 누구나 감염자나 바이러스가 묻은 물체와의 직접적 접촉을 통해 감염될 수 있지만, 최근 다른 남성과 성적으로 접촉한 경험이 있는 남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연방정부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백신이나 치료제 같은 원숭이두창 관련 정부 자원 보급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미 한차례 감염된 이들은 이러한 조치가 훨씬 더 빨리 이뤄지길 바랐다고 말한다.

줌 모임을 주최한 제프리 갈라즈(41)는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정도의 경험"이라면서 "이 일을 겪으며 다른 사람이 됐다"고 심경을 전했다.

"원숭이두창에 걸려보지 않은 이들은 어떤 고통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리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을 때 부딪혀야 했던 정부의 관료주의에 대해서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겁니다."

제프리 갈라즈
Jeffrey Galaise
원숭이두창 환자 모임을 매일 줌에서 주최하고 있는 제프리 갈라즈

뉴욕 토박이인 갈라즈는 백신을 맞기로 한 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감염 25일째인 현재 갈라즈는 피부 병변부터 림프샘 부종, 고열까지 거의 모든 원숭이두창 감염 증상을 겪었다.

한편 비록 대중의 인식은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백신 물량은 부족하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1명분으로 5명을 접종하는 방식으로 사용 가능 백신을 최대 5배까지 늘릴 것이라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뉴욕, 플로리다, 캘리포니아와 같이 인구가 많은 주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상원의원은 백신 구하기가 "영화 '헝거 게임'과 약간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사람들이 식량과 보급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다룬 할리우드 3부작 영화다.

한편 갈라즈는 "사람들은 정말 고통스러워하는데 그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서 감염 후 치료법에 관한 정보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갈라즈가 매일 1시간가량 진행하는 온라인 줌 모임엔 미국 전역의 남성 동성애자들이 참석한다. 사실상 이들에 대한 지원 단체 및 자원을 공유하는 공간 역할을 맡은 셈이다.

텍사스주 출신의 유흥업계 종사자 실버 스틸(42)은 벌써 두세 번 줌 모임에 참석했다.

스틸은 거의 1달가량 원숭이두창으로 고통받고 있다. 입 주위 피부 병변으로 식사가 힘들어 몸무게도 5.8kg나 빠졌다고 한다.

스틸은 현재 공급이 부족한 경구 항바이러스제인 '티폭스(Tpoxx)'를 복용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통증 관리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틸은 이런 자신의 상황도 행운으로 느낀다고 했다. 다른 환자들의 "끔찍한 경험담"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항문에 병변이 생기는 바람에 화장실에 갈 때마다 바늘을 배설하는 느낌이고, 음경에 병변이 생겨 세균에 감염된 이들도 있다.

스틸은 "나는 비록 얼굴은 정말 형편없는 모습이었지만, 하체엔 아무런 병변이 없었다"면서 "이 끔찍한 것에서 벗어나기 전까진 세상에 (투병 과정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버 스틸이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한 원숭이두창 투병 기록
Silver Steele / Twitter
실버 스틸은 SNS에 원숭이두창 투병 과정을 기록해 공유한다

사실 원숭이두창은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가 아니다. 중서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선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올해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여성과 어린이 등 다른 집단의 감염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한편 3주 전 콜로라도주에서 원숭이두창 검사를 받으려던 이본 판(33)은 여러 난관을 겪었다.

판이 처음으로 만난 의사는 피부에 난 커다란 붉은 발진을 접촉성 피부염으로 오진했다.

어떤 성 건강 클리닉은 최근 성관계 경험이 없는 여성이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되긴 힘들다며 판의 검사 요청을 거부했다.

다른 곳에 문의하니 콜로라도주의 공중 보건 부서나 다른 전문가들로 판의 전화를 돌렸다. 그 누구도 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려주지 않았다.

판은 "엄마한테 허락받으러 갔더니 '아빠한테 가서 물어보렴'이라고 하고, 또 그래서 아빠한테 갔더니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렴'이라고 하는 느낌"이라면서 "답을 구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마침내 인후 도말검사에서 원숭이두창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판조차 그 이유는 모른다.

판은 코로나19 예방책으로 여전히 바깥에선 마스크를 착용하며 여러 명이 모인 장소는 피한다. 그렇기에 원숭이두창에 걸릴 만한 유일한 곳은 알레르기 주사를 맞으러 가는 병원밖에 없다는 게 판의 주장이다.

한편 공중 보건 전문가들이 왜 주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남성들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는지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끌면서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들은 지난 7, 80년대 에이즈 사태 때와 비슷하게 버림받은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갈라즈는 자신의 줌 모임에 대해 "여러 무거운 문제가 많이 거론된다"고 말했다.

"에이즈 환자로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 25~30일씩 장기간 격리된 사람들, 지역사회가 씌운 오명과 싸우는 사람들 등이 모여 있습니다."

이렇듯 환자들이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자체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과 공중 보건 전문가들의 미온적인 태도, 재정 및 정신적 지원 부족 등으로도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게 갈라즈의 설명이다.

한편 스틸이 SNS에 매일 올리는 투병 일지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서 혐오에 가득 찬 무지한 댓글도 많이 달린다고 한다.

"정말 많은 사람이 우리가 겪는 것을 보고 '봐라, 제2의 에이즈 사태다'라고 생각합니다."

스틸은 "어린이들이 원숭이두창 양성 반응을 보인 뒤에야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 지적했다.

"게이들만 걸리고 있을 땐 비상사태가 아니었던 거죠."

Watch: Dan speaks about his experience of contracting monkeypox at the start of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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