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소환장에 ‘전면전’ 운운하다니
갑옷 겹겹이 껴입고도 안심 안 되나
민주당 ‘법 앞의 평등’을 잊지 말아야
더불어민주당 사람들, 집단 건망증에라도 걸린 것일까? 5년 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서슬 퍼렇던 자신들의 모습을 깡그리 잊어버린 양해서 하는 말이다. 문 전 대통령이 진두에 나서서 ‘적폐청산’을 외쳤다. ‘촛불혁명’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다고 인식한 그에게 ‘적폐청산’은 최우선의 혁명과업이었을 법하다. 현직 대통령이 촛불‧횃불 서슬에 밀려나고 그걸 혁명으로 규정하며 권좌에 오른 사람이 문 전 대통령이었다. 매스컴을 통해, 또 가두방송이나 시위를 통해 ‘혁명공약’을 낭독하던 5‧16 때의 그 분위기를 재연하고 싶었을 만하다.
‘적폐청산’은 ‘구악일소’의 다른 표현이었다. 5·16비판을 직업 삼았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자 꼭 같은 행태를 흉내 낸 것이다. 물론 배경·바탕·상황은 전혀 달랐다. 5·16 때의 ‘혁명공약’은 국가적 국민적 절박성을 담고 있었다. 군사 쿠데타 자체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들이 내세운 혁명공약은 가치와 희망의 측면에서 결핍과 갈망의 표현이었다. 이에 비해 문 정권의 ‘적폐청산’은 예상되긴 했으나, 뜬금없는 위협이고 공격이었다.
검찰 소환장에 ‘전면전’ 운운하다니
정권 초기, 그리고 집권기 내내 자신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벌였는지를 잊었을 리 없다. 정부 거의 모든 부처마다 갖가지 명분의 진상조사위원회가 들어서서 맹위를 떨쳤다. 정권 쟁취의 동지였던 좌 경향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대거 참여, 민간 권력집단으로서의 위세를 과시했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대통령 취임사의 이 공허한 다짐은 국민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자신들이 평등·공정·정의의 당사자이자 심판자라는 선언이었다. 오만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아마도 정권을 한 자락씩 나눠 가졌던 사람들은 최소한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며 “암행어사 출도야”라고 소리 지르던 역졸들의 기분 정도는 다 느껴봤을 것이다. 지금의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을 비롯, 정권의 중심부에 있던 사람들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겉 같다.
“니들이 권력 맛을 알아?”
그들이 이제 와서 하는 말이 어이없다.
“이 대표에 대한 소환은 제1야당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전면전 선포다.”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이 4일 기자간담회에서 했다는 말이다.
“제1야당 당 대표 소환은 한국 정치사에 전례가 드문 일로 명백한 정치보복이자 야당 탄압이다. 이 대표는 취임 사흘 만에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하루 만에 돌아온 답은 터무니없는 구실을 잡아 날린 소환장이다.”
얼핏 들으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생사람 잡으려 하는 줄 알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취임 전엔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대상이 될 어떤 혐의도 받은 바가 없었다는 뜻인가. 대표로 당선되니까 갑자기 혐의를 만들어 피의자로 소환장을 보내더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빛이 역력해서 묻는 것이다.
갑옷 겹겹이 껴입고도 안심 안 되나
들리기로는 이 대표가 여러 의혹과 혐의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당 대선 후보라는 위상 덕분에 검찰수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게 아닌가? 대선에서 패배한 후에도 바로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강행해서 기어이 배지를 달고자 한 배경에 ‘불체포특권’의 유혹은 정말 없었던 걸까? 의원직만으로는 아무래도 얇은 것 같아서 ‘제1야당의 대표’직이라는 철갑 하나를 더 껴입으려 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을까? 당선 이후의 지위보장 장치까지 무리해가며 당헌에 끼워 넣은 것은 수사 및 기소의 불가피성을 감안해서가 아니었었나? 오직 “검찰권 남용이 있을 수 있고, 정부와 여당의 야당 침탈 루트가 될 수 있다”(9일 당 대표후보토론회)는 공적 정의감 때문이었던 건가?
갖가지 의혹으로 조사 및 수사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람이, 아무리 제1야당의 대표라도 ‘영수회담’ 운운하며 들이대는 것은 저의가 있는 압박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만나 영수회담인지 뭔지를 한다고 할 경우 검찰수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여지가 생기고 만다. 그걸 노린 회담 제의가 아니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영수회담’은 또 뭔지 모르겠다. 야당 대표의 정치 파트너는 여당 대표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민주당 조 대변인은 이런 말도 했다.
“과거 중앙정보부의 김대중 현해탄 사건을 연상시킬 정도로 무자비한 정치보복 본색을 드러냈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짜 맞추기 식 수사, 나올 때까지 탈탈 터는 먼지떨이 식 수사로 정치 탄압, 사법살인을 자행하겠단 것이다.”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이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난을 이처럼 가볍게 취급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김 전 대통령은 그 때 생사의 기로에 있었다. 이 대표의 처지가 그 때의 김 전 대통령처럼 위중한가? 검찰이 이 대표를 현해탄에 수장시키려는 음모라도 꾸민다는 것인가? 공룡처럼 거대한 민주당의 대표는 어떤 혐의가 있든, 검‧경이 손도 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 것 같아 오히려 섬뜩하다.
민주당 ‘법 앞의 평등’을 잊지 말아야
전직 대통령에 대해 민주당 정권이 어떤 대접을 했는지는 온 세상이 다 안다. 고령의 직전 여성 대통령을, 탄핵 결정이 나기 무섭게 구속하고 그길로 징역 22년형을 선고받을 때까지 주4회의 살인적 재판일정(1심 때)을 강요했던 게 문 정권의 검찰과 그 우호 사법부의 ‘전직 대통령 예우’였다. 그런데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소환장 발부가 ‘사법살인’이라고 한다. 민주당 지도부의 인식으로는 이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더 고귀한 신분인 모양이다.
윤 대통령이 할 일이 없어서 민주당 이 대표와 전면전을 벌이겠는가. 이미 대결을 벌여 이긴 사림이 진 사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오히려 민주당 측이 윤 대통령과 정권을 상대로 전면전을 도발하는 말로 들린다.
“당장 면죄부를 발부하라. 그렇지 않으면 전면전만 있을 뿐이다.”
혹 그런 뜻은 아닌가? 변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기세여서 움찔하게 된다. 한 밤중에 횃불이라도 들고 일어나면 어쩌나.
이 사람들이 지난 5년간 이 나라를 이끌어왔던 정권의 상층부 구성원이었던 그 사람들이 맞는지 의아할 뿐이다. 자신들은 그렇게 정치를 해왔고, 전직 대통령들을 ‘정치보복’ 차원에서 투옥했노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다시 확인하자.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법치의 제1조건이다. 이게 무너지면 법치, 나아가 민주정치도 성립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아는 이치를 유독 민주당 사람들만 모른다고는 못할 것이다. 하긴 정치한다는 사람들(물론 그 중 일부이겠지만)의 궤변에 상한선이라는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억지를 부리든 그건 말하는 사람이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어쩌겠는가. 다만 분명히 재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그 ‘만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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