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이 카카오톡 메시지로 유튜브 콘텐츠 하나를 링크하며 배우 황석정이 여는 농장 가든 마켓에 가자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초창기 출연자로 활동할 당시 집 안 식물을 아끼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몇 년 전 농장을 할 거란 말은 들었다. 작물을 재배해 판매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TV에 나오지 않아도 다양한 공연을 소화하기에 바쁘려니 했다.
그 사이 화초를 키우는 농업인으로서 또 다른 삶도 피어나고 있었다. 황석정은 자신의 유튜브 개인 채널 ‘미스황tv’에서 “농원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새잎이 이렇게 큰 희망과 활력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고, 보람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19, 뜻밖의 가족을 찾아주다
최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 못지않게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면서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화초 가꾸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at 화훼공판장의 품종별 거래량을 보면 승진이나 축하용으로 많이 나가던 난 종류는 2019년 6월 기준 50만 개에서 2021년 6월 35만 개로 거래량이 줄어들었다. 반면 관상용으로 키우는 관엽식물은 같은 기준 대비 35만에서 55만 개로 거래량이 크게 늘었다. 이런 유행을 반영하듯 자신의 작은 정원이나 반려식물을 주제로 한 유튜브 영상이 이목을 집중시키는가 하면 분갈이 등을 자세히 가르쳐주는 농장 채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식린이(반려식물 초보자)’, ‘식집사(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는 '풀멍', 텃밭식물을 가꾸는 ‘텃테리어’등 식물 관련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최근 반려식물의 인기를 반영하듯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운영하는 사이버 식물 병원에 드나드는 발길도 잦다. 집에서 반려식물을 키우다가 작물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의문이 생기면 사진과 함께 증상에 대한 질문을 적어 보내면 수일 내로 식물 전문가가 답변해주는 시스템으로, 최근 매일 방문자가 2000명에 육박하는 정도다.
굳이 식물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최근 우리 주변에 식물이 더욱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우선 지하철역마다 꽃가게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화환을 거부하는 등의 풍조도 있었지만, 꽃이라는 존재를 실용성을 문제 삼아 사치 혹은 헛돈 쓰기로 몰아갈 이유는 없는 듯하다. 모처럼 축하해야 할 때 꽃이 주는 행복은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에게 값어치 그 이상일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을지로 3가역, 상도역, 합정역 등에 들어선 ‘메트로팜’도 식물과 가까이 느끼게 해준 매개체다. 지하철 역사 스마트 농장에서 키운 농작물로 샐러드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으로 이용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인기를 늘려나가고 있다.
식물을 키우는 가운데 텃밭에서 키워 먹는 먹거리 작물도 주목받으면서 실내에서 더욱 쉽게 상추 등을 키울 수 있는 식물 재배기 등도 속속 출시돼 다양하게 선보이는 중이다.
씨앗에는 무한의 매력이 숨어 있다
사람들이 반려식물에 푹 빠지게 되는 매력 포인트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가 태어나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과 조금은 흡사한 부분이 있다. 작은 씨앗에 물이 닿으면 뿌리를 내어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싹이 나고 여러 번 잎이 떨어졌다 새로 나기를 반복하다가 작은 줄기가 굵어지고, 잎은 연두색을 띠다가 짙은 녹색이 되면 그 사이에 빨갛고 노란 꽃을 활짝 피워내고야 만다.
식물을 키울 때 좋은 점은 기다림이 생각보다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 성격이 다 다르듯 식물마다 어떤 것은 물을 많이, 또 어떤 것은 적게 줘야 할 때도 있다. 겉면을 잘 닦아주고 관심을 두고 시켜봐야 잘 성장하는 식물도 있다. 꽃이 피는 식물의 경우 꽃봉오리가 생기고 난 다음 활짝 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매번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기다리던 사이 한순간 꽃이 피어 있는 자태를 보면 뿌듯함과 함께 잘 자라줘 준 것에 대한 고마움마저 느끼게 된다.
마을 공동체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부드러움
반려식물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찾다가 곳곳에 꽃을 나누고, 심어서 마을에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힘을 불어넣고 있는 장숙영(64) 씨를 만났다. 장 씨는 8년 전 재개발 열풍이 불었다가 무산된 서울 양천구 신월 5동 74~80번지 일대에 상가와 집, 쓰레기더미가 가득하던 시유지 등에 꽃을 심고 가꿔 동네 분위기를 180도 바꾸는 데 기여했다. 꽃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마을 사람들이 행복해야 마을 공동체가 발전하는데, 그때 도움 된 것이 꽃이었다”고 말했다.
2015년 시와 구 차원에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할 당시 운영비는 적지만 주민의 참여가 필요할 때 소통의 수단으로 꽃을 선물했던 것. 동네 곳곳마다 찾아가 화분을 놓고, 화단에 꽃을 심어줬다. 고향인 충북 단양에서 국화 화분 60개를 선물 받아 동네에 놓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 결과 74번지에서 80번지 일대는 말 그대로 꽃동네가 됐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초록색 잎과 꽃나무가 서 있고, 시골의 풍경을 잠시 빌려온 듯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예쁜 공간이 됐다. 2018년 (재)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 꽃피는이야기상을 타는 등 지금까지 노력의 결과를 맛보기도 했단다.
꽃과 식물을 가꾸는 작업이 때로는 고되지만, 장 씨 개인적으로는 병을 고치기도 했다.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가 만성 B형간염 보균자임을 알고 대위로 조기 전역한 장 씨. 이후 꽃을 가꾸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약을 먹지 않을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꽃과 식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이유는 무수히도 많다고 했다.
세상은 고도화된 삶을 향해 성장하고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각박함, 답답한 도시화와 외로움이 찾아낸 것이 어쩌면 점점 멀어져만 갔던 식물이 아닐까 싶다. 이웃, 가족, 친구의 모습을 하고 우리 곁에 가까이 반려식물이 자라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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