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에 물량 늘었는데 태풍 겹쳐 '과중'…건수당 수수료에 일 못 줄여
업체 "명절은 원칙적으로 휴일…개인사업자라 추가 근무 개입 어려워"
(춘천=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태풍 뚫고 추석 선물 배달하려니 이러다 제가 제사상에 오를 것 같아요.", "태풍이랑 추석이 겹친 게 처음이라 더 바빠졌어요. 태풍 때문에 밀린 물량을 추석 때도 못 쉬고 배송해야 할 것 같아요."
올해 추석 명절을 앞두고 택배 배송 물량이 증가한 가운데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겹치면서 일부는 배송 차질 우려에 연휴도 반납하는 등 배송을 멈출 수 없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택배 배송 기사들은 추석 대목을 앞두고 평소보다 20∼30%가량 물량이 늘어난 상황에서 태풍이 몰아쳐 미끄러운 빗길 운전으로 배송하는 등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기 일쑤였다.
실제 지난 5일부터 태풍의 영향으로 도로 곳곳에 가로수가 쓰러지거나 물이 범람해 침수되는 등 전국에 피해가 속출했다.
강원 지역에서 7년째 택배 배송일을 하는 정일선(49)씨는 "위험한 건 둘째치고 낙석이나 토사유출로 길이 막히면 배송 시간이 늦어져 물량을 하루에 다 처리하지 못하게 되고, 이런 상황이 과로로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빗길에 미끄러진 차가 주차장에서 제 차를 추돌해 사고까지 수습하느라 분주했다"고 덧붙였다.
태풍 피해가 컸던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택배를 배송하는 이문희(51)씨도 "천북면 신당리 일대가 정전돼 약 10시간 동안 복구되기만을 기다렸다"며 "복구 작업이 늦어져 배송을 다 못 하게 되니 평소보다 두 배 많은 600개가량의 물량을 배송해야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익명을 요구한 택배기사 A(35)씨도 "태풍 뚫고 추석 선물을 배달하려니 너무 힘들었다"며 "이러다 내가 제사상에 오를 것 같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일부 택배기사들은 태풍으로 인해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추석 연휴까지 반납해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빨간 날은 원칙적으로 쉬는 날이지만 밀린 물량을 고객들에게 제때 전달해주려면 연휴에도 근무해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배송 기사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도 '하루하루 일이 쌓인다', '추석 연휴 끝나고 일주일까지가 가장 바빠 쉬지 못하고 일할 것 같다'는 등의 글이 게시됐다.
택배 기사들은 배송 건수당 수수료를 받는 탓에 일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일을 쉬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용차비를 내야 해서 고되더라도 일터로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일선씨는 "택배 업무는 가족의 생계가 달린 '목숨 줄' 같은 것"이라며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수입이 없고, 그 누구도 수입을 보전해주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죽하면 택배 노동자들이 '상이 나더라도 제발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에 났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겠나"라고 탄식했다.
택배 업체 관계자는 9일 "명절과 같은 빨간 날은 원칙적으로 모든 택배 배송 기사들이 쉬게 되어 있다"며 "택배기사들이 개인사업자인 탓에 추가 근무 등에는 회사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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