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만난 학생들이 제 삶 바꿨죠"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만난 학생들이 제 삶 바꿨죠"

연합뉴스 2022-09-25 07:31:01 신고

3줄요약

9년 간 동국대생 '최애' 술집 운영한 이홍규씨

지병으로 업소 떠난다는 소식에 학생들 응원글

'길없음' 사장 이홍규 씨 '길없음' 사장 이홍규 씨

(서울=연합뉴스) 김윤철 기자 = 동국대 학생들이 즐겨 찾는 술집 '길없음' 사장 이홍규 씨가 직접 꾸민 가게 안에 앉아있는 모습. 2022.9.25 newsjedi@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윤철 기자 = "오픈 뒤 한 달 동안 손님이 없어 잠들었을 때 문이 열려 어리둥절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두 번째 손님은 동국대 학생이었어요.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이제 몸이 고장 났네요."

9년 넘게 동국대 학생들의 사랑을 받은 술집 '길없음' 사장 이홍규(43) 씨는 지난달 동국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글을 썼다. 지병으로 일을 그만둔다고 밝힌 이 글에는 댓글과 '추천'이 쏟아졌다.

학생들은 "최애(가장 좋아하는) 술집인데 너무 슬프다", "쾌차를 바란다", "좋은 장소와 음식을 제공해줘서 감사했다" 등 한뜻으로 안타까움을 표했다.

25일 서울 중구 필동3가의 가게에서 학생들 마음을 울린 문장의 주인을 만났다. 이씨는 "학생들이 제 삶을 바꿨다"며 담담하게 웃었다.

이씨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장사를 시작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동국대 인근 막다른 골목 어귀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홀로 시공했다. 헐값에 가져온 목재와 잡동사니는 미술을 전공한 이씨 손끝에서 번듯한 인테리어 자재로 거듭났다.

시작은 혼자였지만 완성은 함께였다. 학생들의 조언을 반영한 결과 지금까지 사랑받는 대표 메뉴들이 뚝딱 탄생했다. 한겨울에도 반소매를 입고 뛰어다니는 이씨를 보고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정리를 돕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숙련된 장기 '알바생'들이 생겨났다.

이씨 가게 안은 진심과 진심이 만난 흔적으로 가득하다. 학생들은 공연이나 기부를 위한 행사를 열 때마다 흔쾌히 무상으로 공간을 내어주는 이씨 집을 찾았다. 이씨가 답례를 거절하면 학생들은 편지와 기념 포스터로 마음을 전했다. 이씨는 이를 일일이 액자에 담아 걸었다.

여느 술집과 달리 이곳은 카운터가 안쪽에 있다. 그런데도 계산 없이 도망간 학생이 나온 적이 없다.

이 카운터 위에는 첫 손님이 선물로 준 '행운의 2달러'가 걸려있다. 그 밑 벽면에는 이씨가 학생들 이름과 학번을 외우기 위해 연습한 메모가 빼곡히 적혀있다.

진심의 흔적 진심의 흔적

(서울=연합뉴스) 김윤철 기자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학생들의 감사 편지·포스터, '행운의 2달러', 취업한 학생들이 남기고 간 명함, 학생이 냅킨에 남긴 인사. 냅킨에 "오래오래 여기 계셔주세요"라고 적혀있다. 2022.9.25 newsjedi@yna.co.kr

동국대 영어통번역학과 16학번 장수연(25) 씨는 "저렴하면서도 풍족하고 맛있는 안주,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 거의 매주 방문했었다"며 "안주를 여러 번 리필해도 사장님은 싫은 내색 한번 없었다"고 기억했다.

불교학과 15학번 홍성욱(26) 씨는 "친구들과 속마음을 터놓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 갔다"며 "사장님의 친절함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2호점을 준비하던 이씨는 올해 4월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대동맥박리라는 진단과 함께 무리한 일을 피해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씨는 떠나지만, '길없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함께 한 직원들이 일을 봐주는 동안 그는 가게를 물려줄 후임자를 찾고 있다. 이씨는 "누구든 좋지만, 공간의 의미가 지켜지도록 동국대 출신이 나타나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취업한 뒤 돌아와 명함을 붙여두고 가는 등 단골들의 발길도 여전하다.

이씨는 요즘 건강 회복을 위해 매일 1만 보 넘게 걷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는 그의 앞에는 오직 이씨만 걸을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었다.

'길없음'으로 향하는 길 '길없음'으로 향하는 길

(서울=연합뉴스) 김윤철 기자 = 지하의 가게로 향하는 계단참에 이씨가 손수 조각한 글씨가 걸려있는 모습. 2022.9.25 newsjedi@yna.co.kr

newsje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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