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논란에 휩싸인 이유

일본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논란에 휩싸인 이유

BBC News 코리아 2022-09-26 12:29:57 신고

3줄요약
아베 전 총리는 외교 정책 재편으로 찬성파와 반대파를 모두 불러 모았다
Reuters
아베 전 총리는 외교 정책 재편으로 찬성파와 반대파를 모두 불러 모았다

일주일 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을 위해 전 세계 고위급 인사가 런던에 모였다. 이제 그들 중 많은 수가 또 다른 국장을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지에 있는 일본인들은 별로 기쁜 내색이 없다. 1140만달러(약 162억원)로 추산되는 국장 비용도 중요한 이유다.

지난 몇 주 동안 국장에 대한 반대가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국장에 반대한다. 지난 21일 도쿄 총리관저 부근에서 한 남성이 분신을 시도했다. 또 19일에는 약 1만 명의 시위대가 국장 철회를 요구하며 도쿄 거리를 행진했다.

한편, 일본의 국장은 전 세계 동맹국을 한자리에 모으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불참하지만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은 참석할 예정이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도 참석한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전임 총리 3명과 함께 온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에는 함께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향한다.

세계 정상들이 참석 의사를 밝히는 상황에서도 많은 일본 국민이 국장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치인의 국장은 일반적 관행이 아니다. 일본에서 국장은 왕족에게만 허락된다. 단 한 번의 예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국장인데,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은 당연한 관례가 아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유도 국장 시행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 7월 선거 지원 유세에서 피격당해 암살된 전 총리에게 일본 국민은 애도를 보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가 큰 인기를 얻은 적은 없지만 일본 국내 안정과 안보를 강화했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받았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의 국장 결정은 정치가로서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장기 재임 총리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일본의 위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인이다.

아베 전 총리의 충격적인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애도했다
Reuters
아베 전 총리의 충격적인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애도했다

정치학자이자 아베 전 총리의 고문을 역임한 스즈키 가즈토 교수는 "아베 전 총리는 시대를 앞서갔다. 변화하는 힘의 균형을 이해했다. 중국의 부상이 힘의 균형을 바꾸고 역내 질서를 재편할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라고 말한다.

스즈키 교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예로 든다. TPP는 아태 지역에서 모든 미국 동맹국을 하나의 거대한 자유무역지대로 연결한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큰 그림이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TPP에서 탈퇴했을 때, 다들 TPP 붕괴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아베 전 총리는 주도권을 넘겨받은 뒤 더 복잡한 이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출범시켰다. 이름이 너무 복잡하긴 하지만, 일본이 아시아 패권을 쥐겠다는 새로운 의지를 강조했다. 미국·일본·인도·호주 협의체 쿼드 창설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욱 의미심장한 부분은, 일본 군대의 변화다. 2014년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을 "재해석"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했다. 즉, 일본 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미국 동맹국과 합류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안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도쿄에서 국장 반대 행진에 참가한 수천 명의 사람들은 아베가 일본을 전쟁으로 이끌었다고 비난한다. 시위에 참가한 마치코 타쿠미는 "아베 전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이 미국과 함께 싸운다는 의미이며, 일본이 다시 전쟁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 나는 국장을 반대한다"라고 전했다.

일본에는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이 아베에게 분개하는 것은 원자폭탄의 기억 때문만이 아니다.

국장 반대파는 아베가 전쟁광이라고 말한다
EPA
국장 반대파는 아베가 전쟁광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전후 헌법은 분명히 "전쟁권을 포기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민투표가 필요했지만, 투표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았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는 헌법의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다.

도쿄 소피아 대학의 코이치 나카노 교수는 "아베 전 총리는 국민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것으로 보인다. 공이든 과든, 헌법에 반하는 방식이었고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베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모든 비판이 핵심을 비껴나갔다. 아베 전 총리는 다른 세계 정상보다 가장 먼저 중국의 위협을 인지했고, 미일 동맹이 더 견고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베 전 총리의 고문을 역임한 스즈키 교수는 "아베 전 총리는 매우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가졌다. 아태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약세를 예상했다. 미국이 아태 지역에 계속 발을 담그도록 하려면 일본에 자위력이 필요함을 깨달았다"라고 설명한다.

미국은 물론, 중국의 위협을 우려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일본의 재무장과 역량 재정비를 환영한다. 아베 전 총리는 호주와 인도에서 적극적 동맹을 손에 넣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이 확인되자, 모디 인도 총리는 자국에서 국가애도의날을 선포했다.

그러나 아베에게 애도를 보내는 대신 전쟁광이자 역사수정주의자라는 비난을 보내는 곳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런던에는 왕치산 부주석을 보냈지만 도쿄에는 글로벌 인지도가 전무한 전직 과학기술부 장관을 보낸 것에서도 이러한 배경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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