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내성 강하지만 주식시장 취약

미국 경제 내성 강하지만 주식시장 취약

연합뉴스 2022-10-01 10:3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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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14 공개 행사서 인사하는 팀 쿡 애플 CEO 아이폰14 공개 행사서 인사하는 팀 쿡 애플 CEO

(쿠퍼티노 AP=연합뉴스) 2016~2021 회계연도에 애플은 현금배당에 691억 달러, 자사주매입에 3천269억 달러를 썼다. 올해 9월 7일(현지시간)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인사하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인플레이션 압박과 이에 따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2022년 내내 글로벌 경제를 옥죄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가 고통받지만 그나마 미국 경제의 상황이 다른 나라들보다 낫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은 여전히 안정적이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를 많이 줄여 놓은 미국 가계의 대차대조표도 다른 나라보다 건실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다른 국가들이 따라잡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세계적 달러 강세는 미국 경제의 확고한 우위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 강한 내성을 갖고 있음에도 미국 주식시장의 상대적인 성과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올해 9월 16일까지 S&P500지수의 연간 등락률은 -18.7%, 나스닥지수는 -26.8%에 달한다. S&P500지수는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 주요국들 중 가장 부진한 축에 속하고, 나스닥지수는 신흥국들을 포함하더라도 수익률이 최하위권이다.

물론 미국 증시가 장기간 다른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올랐던 데 따른 가격 부담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 미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점도 주가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저금리 기조의 종식은 미국 증시를 중심으로 강화됐던 주주환원에 큰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미국 자본주의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자본은 끊임없이 규모를 키우는 증식의 욕구가 있는데, 미국의 초일류 기업들은 오히려 자본을 파괴해왔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가 그것이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일류 기업이다. 2021 회계연도에 애플의 당기순이익은 946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삼성전자 당기순이익 348억 달러(원·달러 환율 1천144원으로 환산)의 2.7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런데 애플의 자기자본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기업의 당기순이익에서 배당·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을 위해 쓴 금액을 차감하면 기업에 쌓이는 유보액이 된다. 유보는 자기자본의 증가 요인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익을 유보하면서 자기자본을 증가시키는데, 애플의 자기자본은 2016 회계연도 말의 1천282억 달러에서 2021 회계연도 말에는 630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통상 자기자본 감소는 적자 기업에서 나타나는데, 같은 기간 애플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3천661억 달러에 달한다.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을 주주들에게 환원했기 때문에 자기자본이 감소한 것이다. 2016~2021 회계연도에 애플은 현금배당에 691억 달러, 자사주 매입에 3천269억 달러를 썼다.

극단적인 주주환원이고, 한편으로는 자본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책이기도 하다.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신규 투입 대비 산출의 효율은 떨어진다. 이를 주류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율체감이라 부르고,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고 칭했다.

자본을 줄이는 자본주의에서는 이런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 없고, 예비적 동기에 의한 유보가 필요 없을 정도로 효율적인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기업들만 자본을 줄일 수 있다.

자본 파괴는 애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스타벅스와 도미노피자 등 미국을 대표하는 S&P500지수 편입 종목들 중 19개가 아예 전액 자본 잠식이다. 유보액을 모두 주주환원으로 돌렸을 뿐만 아니라, 부채까지 지면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했기 때문에 전액 자본 잠식이라는 부실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재무적 현상이 나타났다.

주주 이익에 편향된 자본주의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주주환원은 그 자체가 즉각적으로 주주가 얻는 편익이고, 자기자본 축소도 장기적인 자본효율성을 높여 역시 주주이익에 복무하게 된다. 2022년 8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서 자사주 매입에 1%의 과세를 하는 법안을 만든 것도 과한 주주이익 편향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자사주 매입에 대한 과세가 아니더라도 금리 상승은 과도한 자사주 매입을 억제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얼마 전까지의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저금리로 차입해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는 것이 가능했다. 배당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보다 차입에 따른 이자 비용 부담이 더 적으니 차입 후 자사주 매입·소각이 합리적인 재무활동이었던 셈이다.

금리가 높아지면 극단적인 자사주 매입 등은 자연스럽게 억제될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로 해석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던 동력이 희석된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에는 악재다.

미국 경제는 고금리에 대한 내성을 갖추고 있지만 미국 주식시장은 금리 상승에 더 취약한 게 아닌가 싶다. 장기적으로 주가지수는 명목GDP 성장률에 수렴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1946~2021년) 미국 명목GDP 성장률은 연평균 6.2%였고, S&P500지수는 연평균 7.4% 올랐다.

그렇지만 저금리 기조가 굳어졌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2010~2021년) S&P500지수가 연평균 12.9%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명목GDP 증가율은 연율화 4.1%에 불과했다. 지난 10여 년간 실물 경제에 비해 주식의 성과가 훨씬 좋았던 셈인데, 이는 저금리에 근간한 공격적인 주주환원 덕분에 가능했다. 금리 상승은 역풍으로 작용해 실물경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주식의 성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신영증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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