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대형 신작 설치 작업 전시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세대 민중미술작가'로 불리며 사회 참여적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임옥상(72)은 근래 들어 대지미술과 환경미술 등으로 작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1일 시작하는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 전은 민중미술, 리얼리즘으로 대표됐던 임옥상의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장에서는 '흙' 또는 '땅'과 연관된 대규모 신작 설치작업들이 시선을 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7전시실에 설치된 12m 높이의 흙벽 작업 '여기, 일어서는 땅'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경기도 파주 장단평야의 논에서 작업했다. 가을걷이가 끝나 비어있는 논의 흙에 음각이나 양각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우레탄을 부어 탁본하듯이 흙을 떠냈다. 이런 방식으로 흙을 떠낸 가로 2m, 세로 2m 크기의 패널 36개를 짜 맞춘 흙벽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땅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미술재료용으로 가공되고 정제된 흙이 아닌 진짜 흙을 사용한 작품에는 베고 남은 볏단과 농기계가 지나간 자국, 동물이 남긴 흔적 등 논이 그대로 담겼다.
워낙 대형 작업인지라 설치하는데 일주일이 꼬박 걸린 작품은 원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마침맞게 7전시실의 벽을 채웠다. 장단평야에서의 작업 모습 등은 전시실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6전시실에 설치된 또 다른 작품 '흙의 소리'도 역시 흙이 주된 소재다. 거대한 머리가 옆으로 누워 있는 형상으로, 작품 한편의 입구를 통해 동굴 같은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들어가면 숨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미술관 내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중정 공간에도 설치 작품이 놓였다. 지름 4m가 넘는 '검은 웅덩이'는 말 그대로 검은 물이 가득 차 있는 웅덩이다. 작가가 '숨구멍'으로 부르는 웅덩이의 검은 물은 바람과 풀의 움직임에 미세하게 흔들리며 마치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함께 전시된 회화는 흙과 물 등 자연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재료 탐구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1981년 문예진흥원에서 열렸던 첫 개인전에 나왔던 '웅덩이'(1976)는 자연스레 현장설치작 '검은 웅덩이'를 떠올리게 한다.
1995년 개인전 '일어서는 땅'에 '여기'를 추가한 전시 제목은 '민중미술작가'라는 수식어에 한정되기를 거부하며 과거가 아닌 현재, 바로 여기를 봐달라고 말하는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전시를 앞두고 20일 기자들을 만난 임옥상 작가는 "자유의지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미술을 선택했을 뿐 어떤 특정한 무엇이 되기 위해 나를 압박하고 속박하기 위한 도구로 (미술을) 사용한 적이 없다"며 "나를 과거에, 그 어떤 것으로 묶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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