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팬덤을 지닌 도시 미술가! 디페이스의 이상한 사랑 이야기

세계적 팬덤을 지닌 도시 미술가! 디페이스의 이상한 사랑 이야기

엘르 2022-10-21 00:00:00 신고


얼마 전 LA에서 열린 개인전 〈Painting Over the Cracks〉는 ‘솔드아웃 쇼’가 됐다. 작품을 구매하기 위한 오픈 런 행렬이 엄청났던 것으로 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관람객이 그토록 긴 줄을 설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성공적인 LA행에 이은 다음 목적지는 서울이 됐다. 종로구와 강동구 두 곳에 남긴 신작 벽화 두 점 중 하나는 당신의 개인전 〈Strange Love〉가 열린 스페이스 파운틴 건물에 20m 높이의 대형 작업으로 완성됐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작업할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여행자들은 여행지의 어떤 것을 품고 돌아오는데, 나는 여행지에 어떤 것을 남겨두고 오는 셈이다. 어떤 도시에 가든 그곳에 대해 최대한 많은 조사를 거친다. 해당 도시의 대중이 즐길 만한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며칠 전 LA 전시 이후 바로 서울행이 이어져 서울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하지 못했다. 다만 작업할 건물의 구조나 주변 경관만큼은 잘 파악해 장소와 교감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스페이스 파운틴의 벽화는 직각으로 만나는 두 면의 벽에 그렸다. 특유의 공간감과 각도를 활용하면서 대중과 교감하는 이미지를 디자인했다.


스트리트 아트가 ‘스트리트 아트’로 불리지 않던 시절부터 활동한 1세대다. 이제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이 당신의 작업을 기다린다. 디페이스가 표현해 온 장면이 대중을 관통한 힘은 무엇일까
온갖 비주얼이 공해처럼 느껴질 만큼 시각 자극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그 속에서 강한 컬러와 뚜렷하게 그은 검은색의 윤곽선이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힙합, 펑크 록에 매료됐다. 레이먼드 페티본, 제이미 리드, 윈스턴 스미스의 앨범 커버, 해나 바베라의 만화 등의 이미지를 따라 그리길 좋아했다던데
음악이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작업용 플레이스트를 만드는데, 항상 새로운 음악을 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리적으로 새로운 도시에 방문했을 때 그곳의 에너지를 느끼는 일 역시 큰 영감이 된다. 오늘은 악틱 몽키즈의 신보를 듣고 있었다. 〈The Car〉의 ‘There’d better be a mirrorball’. 굉장히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다.

한국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 〈Strange Love〉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설치미술 작업도 있다. 디페이스의 작업을 대표해 온 아이콘 ‘D*DOG’이다. 동그란 얼굴의 녹색 아이콘은 어떻게 디페이스의 작업을 상징하게 됐나
직접 제작한 스티커를 영국 거리의 가로등에 붙이며 활동을 시작했다. 간소한 출발이었다. 사각형 얼굴을 지닌 친구를 그렸는데, 디즈니 캐릭터 등이 지닌 전형적인 귀여움을 조금 지저분하고 이상하게 바꾸고 싶었다. 그렇게 만든 캐릭터에 ‘디페이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문득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풍선 같은 동그란 존재를 손에 쥐여주었다. 그것이 D*DOG다. 그러다 점점 둘을 분리시켜 작업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D*DOG의 날개만 따로 떼어 날개에도 생명을 줬다. 그렇게 진화하면서 점차 처음 만든 사각형 얼굴의 캐릭터는 존재감이 적어지고 D*DOG에 집중하게 됐다. 유연한 아이콘이 된 D*DOG 덕분에 표현할 수 있는 주제도 많아졌다.

일정한 크기의 벽화가 아니라 작은 스티커로 시작한 이유는
처음에는 낮 시간에 다른 일을 하고 밤이 돼서야 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최대한 작은 프로젝트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스크린 인쇄 스티커를 만들고 다음에는 포스터, 페인팅, 벽화 순으로 진행했다. 좋아하는 일을 실현 가능한 만큼 하면서 항상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해 왔다.

스페이스 파운틴 건물 외벽에 설치된 한국 최초의 디페이스 벽화 작품. 녹색 피부와 파란 헤어를 가진 여성의 모습에 숨겨진 욕망과 현대사회의 불안, 공포를 담았다.


스페이스 파운틴 건물 외벽에 설치된 한국 최초의 디페이스 벽화 작품. 녹색 피부와 파란 헤어를 가진 여성의 모습에 숨겨진 욕망과 현대사회의 불안, 공포를 담았다.


유명세를 얻은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당신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사건이 있다면
‘처음의 나’에게 25년 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벽화를 그리고, 작품이 모두 팔리는 전시를 경험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면 믿지 못할 것이다. 좋아서 한 행동이 계속해서 다른 일로 이어져 여기까지 온 여정 자체가 놀랍다. 물론 뱅크시와 협업한 일, 세계적 뮤지션들과 우정을 나누고 그들의 앨범 커버 작업을 한 것도 대단한 사건이다. 전업 작가로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된 것도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뱅크시, 셰퍼드 페어리와도 협업했다. 동시대 아티스트로서 그들과 공유한 공감대는
모두 거리에서 작업하는 행위 그 자체를 너무도 사랑한다는 사실. 불변의 진리다.

당신이 매료된 스트리트 아트의 정수는
우연히 거리의 그림을 발견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이 궁금했고, 그런 호기심을 좇기 시작한 이래로 이 작업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너무도 중독적인 도전. 건물 꼭대기 층 높이에서 벽화를 그리니 사람들이 높은 곳을 좋아하냐고 묻는데, 그때마다 대답한다. “절대 아니야!”(웃음)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팝아트 이미지를 활용하면서도 아포칼립스적인 작업을 선보여왔다. 지금의 디페이스 스타일이 탄생한 결정적 순간은
항상 팝아트 이미지에 끌렸다. 어머니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접한 클래식한 작품은 항상 나와 상관없다고 느꼈다. 팝아트 이미지는 달랐다. 직관적으로 와닿았다. 팝아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그러다 사람들은 점점 팝아트를 추앙하게 됐다. 이런 현상도 재미있었다. 자본주의 등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팝아트를 비틀어 나만의 해석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디페이스, 딘 스톡튼.


디페이스, 딘 스톡튼.


어번 컨템퍼러리 아트는 가장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 중 하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를 이해하거나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이 장르에서 이루고 싶은 성과가 있나
그런 면에서는 뱅크시가 대단한 역할을 해왔고, ‘넥스트 레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 작업은 그저 적재적소에 있었던 것뿐이다. 운이 좋았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계속하고 있다. 스트리트 아트가 대중미술이 되는 데 특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티스트 스스로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 아닐까.

당신의 장르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하길 바라는가
도시미술은 예술 역사상 중요한 무브먼트 중 하나다.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예술이면서 한 갤러리에 전속되는 전형적인 아트 신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생한 장르니까. 생명력이 지속돼 퍼블릭 아트의 한 줄기로 계속 존재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개최한 〈Strange Love〉는 동시대의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로맨스라는 주제에 오래 천착해 온 당신의 눈에 이 시대의 사랑이 지닌 가장 이상하고 낯선 점은
로맨스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고, 여전히 실험하고 싶은 이야기다. 굉장히 힘든 시간을 겪는 와중에 사랑에 관한 작업을 시작했다. 개인적인 계기도 컸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현상을 조금 떨어진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부모 세대에는 누군가를 만나려면 물리적으로 어디든 가서 사람을 만나고 열심히 구애해야 했다. 하나의 인생에 한 번의 결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삶을 다섯 개쯤 사는 것 같다. 나는 한 번 이혼했지만 사람들이 사랑을 위해 항상 노력했으면 좋겠다. 데이트 앱으로 사랑을 찾고 금세 다른 사람을 만나는, 너무 빨리 소비되는 사랑이 ‘보통’이 되지 않길 바란다.

사랑의 본질은 뭘까
알았으면 좋겠다(웃음). 먼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또 정직하고 투명해야 한다. 사랑은 불투명해지기 쉽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함께 웃고 교감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다.

디페이스의 화면은 소비사회의 힘과 욕망, 좌절과 상처를 드러내왔다. 지금 당신의 관심을 끄는, 여전히 가려진 것들은 무엇인가
언젠가 환경 문제도 다루고 싶다. 모두가 알아야 하는 주제이니까. 무엇을 드러내고 자각을 유도하는 작업도 있는 반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업도 하고 싶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새 시대를 지속적으로 맞이하는 시절은 없었다. ‘리마인더(Reminder)’와 ‘업리프터(Uplifter)’의 역할을 모두 하고 싶다.

삼청동 거리에는 디페이스를 상징하는 아이콘 ‘D*DOG’을 남겼다.


삼청동 거리에는 디페이스를 상징하는 아이콘 ‘D*DOG’을 남겼다.


어번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로서 무엇에 고군분투하나
고정관념과 편견을 무너트리는 일. 또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작업도 하고 싶다. 어린 시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해 말해주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어른들은 그저 아이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길 바랐다.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자신을 위한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제 도시미술은 어디든 초대되고 펼쳐진다. 당신은 스트리트 아트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여전히 편견을 체감한다는 이야기는 조금 놀랍다
이 신에는 여성 작가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여성 작가의 활동이 많아져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전통적인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어번 컨템퍼러리 아트를 진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다가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걸 보면서 천천히 달라지고 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작업만 하고 서울을 떠나면 아쉽지 않을까! 서울을 조금 더 즐기기 위한 특별한 계획은
어디서든 작업하느라 숙소와 작업 현장만 오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울에선 작업 전후에 도시를 최대한 느껴보고 싶다. 어제는 일행이 족발을 사왔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먹어보니 정말 맛있더라! 이 도시의 음식이 무척 궁금해졌다(웃음).



에디터 이경진 사진 이유정 디자인 김희진

Copyright ⓒ 엘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