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연합뉴스
그룹 악뮤의 이찬혁이 솔로로 데뷔한 이후 기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화제입니다. 이 가운데 최근 진행한 삭발 퍼포먼스에 담긴 메시지가 공개되며 그간 그가 보여줬던 기상천외한 행동들의 의도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지난 10월 17일, 악뮤(AKMU)의 이찬혁이 첫 솔로 앨범인 '에러'를 발표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이후 11년 동안, 쉬지 않고 빛나는 창작 능력을 보여준 싱어송라이터의 첫 솔로 앨범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관심도는 컸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음악보다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은 그가 방송 무대에서 펼치는 '기행'이었습니다. 10월 20일, 신곡을 처음으로 공연한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는 객석과 카메라를 등지고 노래했습니다.
특히 팬들과 시청자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앨범과 노래를 설명하는 대다수의 가수들과 달리, 이찬혁은 이날 X자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침묵으로 사전 인터뷰에 임해 '무례하다'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사진=엠넷 "엠카운트다운" 방송캡처
이어진 10월 22일 MBC '쇼 음악중심'에서도 이찬혁은 객석을 등지고 앉았습니다. 대신, 무대 뒤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며 노래를 불러 컨셉을 유지했습니다.
10월 23일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는 더 큰 화젯거리를 남겼습니다. 이발사와 함께 무대에 올랐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 자리에서 '삭발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이발기로 머리를 미는 동안, 이찬혁은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파노라마 중)라고 노래했습니다.
사진=SBS/온라인 커뮤니티
독특한 행보는 무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찬혁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팬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스타가 팬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역조공'하는 풍경은 한국 가요 100년 역사상 처음입니다.
무대가 끝난 뒤 공개된 삭발 인증샷에 누리꾼들은 "재입대를 하신다니 정말 멋있습니다" "멋있어 이찬혁" "두상도 예뻐가지고"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한편, 이찬혁은 솔로 앨범 발매 전부터 파격적인 프로모션으로도 눈길을 모았습니다. 자신의 '목격담'을 제보받겠다던 이찬혁은 광화문, 여의도 등에서 나타났고, 서울 한복판에서 잠옷을 입은 채 신문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전주 한옥 마을과 서울 홍대 인근에서 빨간색 옷을 입고 유리관 속에서 신곡 '파노라마'를 불렀다는 소식 역시 전해졌으며, KBS1 '전국노래자랑' 하남시 편 녹화 현장의 객석에 독특한 패션으로 앉아 있던 모습이 눈에 띄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사진=EBS
버라이어티, 토크쇼 예능 출연 대신 EBS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 출연을 택한 것도 모두의 예상을 깬 행봅니다. 그는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딩동댕 유치원'에 출연해 '뜬금없는' 행위를 계속해서 보여줘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모든 맥락을 소거하고 본다면, 이찬혁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 앨범 'ERROR'의 컨셉를 생각하면 퍼즐이 짜 맞춰집니다. 이찬혁은 자신이 '에러'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음악적 세계관을 충실히 보여주며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찬혁의 '이유 있는 파격'
사진=YG엔터테인먼트
앨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죽음'입니다. 케이팝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주제입니다. 첫곡 '목격담'에서 이찬혁이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를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파노라마'와 'Time! Stop!'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혼수상태 속의 모습을 노래합니다.
이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솔직해지자고 다짐하는 'A DAY'를 노래 한 뒤, 자신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노래 '장례희망'과 함께 앨범이 마무리됩니다. 그는 위켄드(The Weeknd)의 신스웨이브부터 어쿠스틱 팝까지, 다양한 음악을 경유하는 한편, 죽음을 다룬 가사와 함께 내면의 혼란을 표현합니다.
이찬혁은 음악방송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로 음반에 담은 이야기를 시각화합니다. '엠카운트다운' 무대는 에러 상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침묵, '음악중심'은 잠시 다른 세상에 있는 모습을 담은 거울 속 뒤돌아섦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기가요' 속 삭발은 다시 태어난 이찬혁을 보여주는 의미였습니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죽음을 코앞에 둬 목소리마저 전할 수 없던 그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기 전 삶을 반추하고, 이를 통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죽음이란 소재를 대범한 방식으로 표현한 이찬혁의 시도는 보는 이의 다양한 해석을 만나 한층 풍부해집니다. ‘인기가요’를 보러 갔다가 이찬혁의 잘린 머리카락을 선물 받은 한 누리꾼은 “음반 콘셉트를 생각하니 유품인가 싶기도 했고…. 살아있던 이찬혁(의 일부)이 잘림으로서 죽은 이찬혁이 된 것인데, 죽음을 나눠준 걸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카메라를 등지고 노래하는 퍼포먼스 영상에는 “팬들이 뒤에 있는 걸 알고 믿어주니까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로 느껴진다. 뒤에 있는 팬들도 이찬혁의 ‘파노라마’ 중 일부분이라는 뜻 같다"는 해석이 뒤따릅니다.
중2병, GD병의 발현?
사진=YG엔터테인먼트
호주 출신의 가수 시아(SiA)는 10년 넘게 가발로 얼굴을 가린 채 노래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어떤 대중 가수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낯선 것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찬혁이 하고 싶은 것 그만 해라', 'GD병을 넘어서 중2병이다', '예술병에 심하게 걸렸다'와 같은 반응을 어렵지 않게 목격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에는 언론의 지분 역시 큽니다. 10월 25일 한 언론 기사의 제목입니다. 이 기사는 '이찬혁의 기행은 예술일까. GD병의 발현일까. 중요한 것은 어떠한 퍼포먼스나 무대도 배려와 예의 없이는 지탄받는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됩니다.
시아/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중2병'이나 GD병' 같은 단어는 모든 해석과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납작하게 누릅니다.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아티스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어떤 무대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찬혁의 ‘저 세상 퍼포먼스’ 행보는 대부분 스스로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모든 아이디어는 이찬혁이 낸 것”이라며 “회사는 그저 도울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찬혁은 10월 22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K-909’에 출연해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거냐고 묻는데 틀을 부수는 것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지난 10월 17일 ‘에러’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자신이 “청개구리라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기준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인데 그게 또 기준이 되면 그 반대의 것을 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할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아티스트 이찬혁에게는 무대 안팎의 행동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해석은 대중의 몫으로 남겨 놓아도 충분합니다. 조금 다른 무대, 더 낯선 콘셉트가 더욱 받아들여질 때, 우리 가요계의 다양성도 더 보장될 것입니다.
한편 이찬혁의 솔로 정규 1집 ‘ERROR’는 이찬혁 특유의 솔직한 감성과 철학적 사유, 유기적 구성이 돋보이는 가운데 삶에 대한 태도와 심리적 변화를 인상적으로 그려낸 앨범입니다.
이찬혁은 최근 프로미스나인 멤버 이새롬과 열애설에 휩싸였으나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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