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인터뷰] '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결함있는 캐릭터가 결국엔 사랑받길"

[K-인터뷰] '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결함있는 캐릭터가 결국엔 사랑받길"

한류타임즈 2022-11-02 10:35:03 신고

3줄요약

정서경 작가, 그의 손이 써내린 작품을 듣는 순간 무릎을 내리치게 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부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까지, 거장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세계적인 집필가다. 

정서경의 월드에는 사랑하기 어려운 주인공들로 가득하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선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영군'(임수정 분)부터, 처절한 복수를 꿈꾸는 '금자'(이영애 분),  돌연 뱀파이어가 된 신부 '상현'(송강호 분) 등 평범한 시선에서 살짝 어긋난 결핍의 지점에 인물을 창조한다.

정서경 작가는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인간의 모난 부분을 드러낸다. 하지만 서사를 촘촘하게 쌓아 올려 결국 그의 창조물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정서경 월드는 작가의 예술이라는 드라마를 만나 영역을 확장한다. 최근 종영한 tvN '작은 아씨들' 역시 정서경 월드의 '결함'이라는 뿌리 위에 피어났다.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는 각자의 욕망에 따라 돈을 쫓는다. 첫째 ‘오인주’(김고은 분)은 가족과 풍요로운 삶을 꿈꾼다. 둘째 ‘오인경’(남지현 분)은 돈에 대한 추악한 욕심에서 벗어나 마음의 풍요를 지키려 한다. 셋째 ‘오인혜’(박지후 분)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돈을 바란다. 그리고 700억 원을 얻게 됐다. 

세 자매는 서로 부딪히고  좌절한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선다. 늘 보아 온 익숙한 이야기지만 여운은 짙었다. 가난이 지닌 의미, 재물을 향한 욕망, 악의 태동 등 세 자매의 삶엔 누구나 곱씹어 왔던 고민과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덕분에 시청률도 호조를 띄었다. 닐슨코리아 집계 1회 시청률 6.4%, 마지막회 11.1 %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정서경 작가는 최근 한류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시청자들은 주인공을 좋아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왜 싫은 지점을 넣어서 방해하는거야?”라는 질문을 듣고나서야 깨달았어요.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특성을 한 번도 넣지 않았다는 것을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결함 있는 캐릭터지만 나름의 이유로 사랑받길 원했던 정서경 작가의 독특한 애정 방식이 녹아나 있는 '작은 아씨들'의 모든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풀어본다.


‘마더’ 이후 두 번째 드라마로 찾아왔어요.
처음에는 ‘12 에피소드를 한 번에 담고 시작할 수 있나?’라고 의심했어요. 하지만 일단 시작했고, 그 이후에 처음과 결말을 만들어 나갔어요. 먼저 쓴 1부를 보고 ‘재밌다’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1부의 흐름을 어떻게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쓰기 시작했고,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잡아 나갔어요. 그마저도 정말 희미하게 잡아서 제작진분들이 “다음에는 어떻게 되냐”고 묻기도 하고, 고충이 있었어요. 

영화 시나리오 작업과 차이가 있을까요?
이야기의 길이가 달라요. 2시간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와 12시간에 거쳐 전해지는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이야기의 양과 깊이 등 영화와 다른 지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써내려 갔어요.

동명의 원작 소설의 어떤 점에 이끌렸을까요?
영화 ‘아가씨’를 쓸 때 소녀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요. 예전에 읽었던, 여자들이 주인공인 책을 찾아 읽었죠. ‘작은아씨들’은 막상 읽어보니 착한 자매였어요. ‘이런 자매를 한국에 데려와 보면 조금 더 삐뚤어지지 않을까? 자기가 속한 세계에 도전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물을 둘러싼 여러 욕망이 흥미로웠어요. 특히 다 같이 가난했던 세 자매지만 돈이 주는 의미는 서로 달랐어요.
가난의 의미가 풍요의 반대말로만 그치는 게 아니었으면 했어요. 인경에게 가난이란 자기가 가진 선악의 이념적인 대결이었고, 인주는 지키고 싶은 가정과 행복의 반대말이었어요. 인혜에겐 재능은 있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한계였고요. 가난이란 지겨운 게 아니라 현실적인 것으로 느낄 수 있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안 풀렸던 지점이 있을까요?
매번, 매회마다 안 풀리는 포인트들이 있었어요.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3화였어요. 2화까지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 힘으로 왔어요. 제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기 때문에 2시간은 어떻게든 풀리더라고요. 그런데 3화에 오니까 어디로 뻗어 나가야할 지 동력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인물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서 바닥을 치고, 거기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다시 힘을 냈어요. 그래서 인주의 마음 속에 감춰뒀던 동생을 찾아냈고, 그 공포를 기반으로 돈을 향해 달려가는 동력을 만들어냈어요. 

맞아요. 원작에선 네 자매가 등장하지만 드라마에선 셋째가 죽음을 맞이해요. 그것도 가난한 환경 때문에요.
처음에는 네 자매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12부 안에 네 명을 그려내기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죠. 원작에선 자매들 마다 극적인 역할을 하는데, 우리 작품에서 죽은 셋째가 그런 역할을 하길 바랐어요. 죽음을 통해 다른 자매들에게 가난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고 싶었어요. 

세 자매를 위협하는 인물 ‘원상아’(엄지원 분)-‘박재상’(엄기준 분) 부부와 얽히면서 돈의 의미가 변화했어요.
부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형적으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가난과 부자의 구조는 단순하다고 생각해요. 세습과 땅이 있지 않으면 부자가 되기 어렵죠. 한국은 두 차례 전쟁의 경험이 있고, 그 전쟁을 겪으면서 이겨낸 사람들이 부자가 됐다고 생각해요. 마치 의자 뺏기 게임 같아요. 그래서 ‘전형적으로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이 전쟁 같은 과정을 겪으면 싸우게 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최종 빌런 원상아를 예상 못한 사람이 많아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박재상의 순애보도요.
이야기를 뒤집기 위한 반전을 꿈꾼 것은 아니에요. 8화에서는 원상아가 반전이었고, 10화에서는 박재상이 반전이었어요. 악의 출발점은 불평등에서 오는 것 아닐까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가장 악한 캐릭터는 초대받지 못한 요정이에요. 원상아는 초대받지 못한 요정이었고, 억눌려 있다 폭발하는 인물이에요. 

엄기준 씨는 ‘주단태’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악역 연기를 펼쳤어요. 악역을 잘 구현하다가 똑같이 약자가 되면서 많은 사람의 동정을 받았어요. ‘너도 인형일 뿐이었어’라는 느낌인거죠. "박재상이 죽을 때 너무 슬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악역이 죽는데 어떻게 슬플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보니까 '안 됐다' 싶었어요.


돈에 대한 욕망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작은 아씨들’에서는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요.
애초에 이 작품은 ‘세 자매에게 엄청 큰 돈이 주어지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됐어요. 인물의 이야기에 따라 돈의 의미가 계속해서 변해가는데, 결국 결말에는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것 처럼 다시 큰 돈이 이들에게 주어져요. ‘가난한 세 자매에게 돈을 주고, 이들이 이들을 얻어가게 되는 결말이라면 이 돈이 어디서 왔는지 보여주자’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점을 베트남 전쟁에서 찾았어요.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외화를 벌어들이며 경제를 부흥시킨 시점이기도 해서요. 

저축은행 사태, 자금 횡령, 부동산 등 우리나라 현대사 속 돈의 흐름을 관통하고 있어요.
돈의 기원부터 돈의 생애를 추적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한 한국 현대사에서 돈이 가지는 의미들을 보여주고 싶었죠. 돈이 형성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전과 다른 의미로 바라 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뉴스를 바라볼 때 뉴스 하나 하나가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연결해 놓으면 하나로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음모론적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작품 초반에는 시청자의 반응에 호불호가 있었어요.
'작은 아씨들'의 초반 반응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너는 왜 캐릭터를 호감가게 그리지 않아?”, “시청자들은 주인공을 좋아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왜 싫은 지점을 넣어서 방해하는거야?”라는 질문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특성을 한 번도 넣지 않았다는 것을요. 쉽게 좋아할 수 있는 장면들이 없더라고요. 저는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우리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요소, 결함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 결함들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이 사랑받길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고요.
드라마가 끝나고 자랑스럽다는 기분 보다는 부끄럽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인터뷰가 두렵기도 했지만 사랑해주신 시청자분들께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싶었어요. 낯선 드라마지만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 ‘마더’를 비롯해 영화 ‘헤어질 결심’, ‘독전’, ‘비밀은 없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대중과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직업정신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살아온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됐어요. 제 느낌으론 하루도 일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오늘 뭐 쓰지?’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렇게 열심히 산 것 같진 않지만, 일하지 않으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뭔가를 하는 것 같아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직업정신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사진=tvN

 

강진영 기자 prikang@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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