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성애자에게 입양된 유리씨의 가해자는 대한민국 정부였다

소아성애자에게 입양된 유리씨의 가해자는 대한민국 정부였다

시아뉴스 2022-11-24 14:36:25 신고

3줄요약
김유리씨 사진=시사직격
김유리씨 사진=시사직격

1984년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 씨. 초등학교 4학년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진 부모님은 유리씨와 남동생을 보육원에 맡겼다고 합니다. 남매는 갑자기 프랑스로 입양됐습니다. 그날 이후 부모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는 유리 씨. 우연히 보게 된 입양 서류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부모님 이름란에 알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는데요. 주로 고아들을 입양 보낼 때 만드는 단독호적이었습니다. 이 가짜 고아 호적 은 유리 씨가 입양되기 직전에 만들어졌습니다.

김유리씨 어릴적 사진=시사직격
김유리씨 어릴적 사진=시사직격

입양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수수료를 챙기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동안 약 25만 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습니다. 한때는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을 만큼 엄청난 숫자입니다. 한국 아이들은 어리고 머리도 좋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입양 대상으로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한국 아이들을 선호한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 우리나라 양부모가 한국에 직접 오지 않고도 입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부모들은 마치 쇼핑하듯 아이들의 사진만 보고 입양을 결정했고 선택된 아이들은 양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편도 비행기 티켓을 들고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가짜 고아호적 사진=시사직격
가짜 고아호적 사진=시사직격

그렇게 허술한 절차 속에서 입양된 아이들 중에는 뜻하지 않은 불행을 겪은 경우도 있습니다. 1984년 조작된 가짜 고아 서류를 들고 동생과 함께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 씨. 그녀의 지난날을 함께 돌아봤습니다. 유리 씨는 ' 오늘 먼 길을 떠날거에요. 약간은 긴장되기도 하고... 제 생각에는 그 말은 별로 변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도 이런데... 보면은 좀 답답해요 '라며 착잡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김유리씨 사진=시사직격
김유리씨 사진=시사직격

1984년 그날에도 그랬습니다. 파리에서 10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골 마을 이곳이 바로 양부모와 유리씨가 살던 곳입니다. 주민 2400명의 작은 마을 동양인은 유리씨 남매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 우리가 5월 말에 도착했잖아요. 6월 1일... 그러니까 애들이여 방학한 거죠. 9월 초까지 집에서 양부는 우리들한테 공부를 가르쳐줬는데 맞으면서 배웠어요 ' '벌 받으면서... 이게 제가 다녔던 학교에요 ' ' 그 빨간 방 보이시죠? 그 위에 왼쪽에 있는 방에 있었어요 ' 한편 6년 만에 떠나온 시골 마을은 유리씨에게 나쁜 기억이 많은 곳입니다. ' 바깥에 나오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 ' 허락받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 ' 이 물건은 임신해서 돌아올 것이라고 했죠 ' 17살이 되더니 유리 씨는 돌연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양부모를 고소했습니다. 양부의 이상한 행동은 입양 첫날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김유리씨 사진=시사직격
김유리씨 사진=시사직격

그 후 6년간 성적 학대가 이어졌습니다.  ' 근데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그런 느낌 ' '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했었어요 ' 이 충격적인 사실은 양모 역시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한테 했던 말들이 ' 그녀한테 사랑에 빠졌다 '고 ' 그래서 내가 어떻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딸을 이렇게 할수 있냐고 ' ' 딸한테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가 있냐고 ' ' 약 먹는 거는 거의 방관 했네요. ' ' 그냥 다 알면서도 눈감아줬는데... 구속됐었어요. '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이 피해아동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유리씨가 말을 잇는동안 그 집이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 집이 보이네요 ' ' 저 집이에요 ' ' 그 지붕에 굴뚝...' '  양부는 세상을 뜨고 지금은 양모 혼자살고 있어요 ' ' 제 방이었어요 ' ' 내가 처음 인천공항에서 받았던 인형이네요 ' 집안 곳곳은 한국인 남매가 막 도착했던 1984년 그 무렵에 멈춰 있었습니다.

김유리씨 남매 사진=시사직격
김유리씨 남매 사진=시사직격

입양 당시에 프랑스 측 서류를 가지러 온 유리 씨가 양부모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 왜 나를 그렇게 수수료 지불이 끝나면 한국과 프랑스의 입양 기관 모두 아이들의 삶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 한국입양으로 알려져 있는 민간위병 기관을 통해서 1984년에 데리고 오신 분입니다. ' 사무실로 여러 번 찾아갔지만 번번이 만남을 거절당했던 유리 씨. 오늘은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조작된 고아 서류로 입양된 유리 씨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 친부고마 우리를 잃어버리거나 버린게 아니었어요. 그거 거짓말이라고요. ' ' 우리 아버지 어머니 이름이 무명이라고요 ' ' 아니요 우리 아빠 이름은 김천수고요 ' ' 우리 엄마 이름은 강성욱이에요 ' ' 그리고 저의 김씨는 한양 김씨가 아니라 김해 김씨입니다 ' 라며 말했습니다.

김유리씨 사진=시사직격
김유리씨 사진=시사직격

여전히 가장 많은 아이를 해외로 보내고 있는 주요 입양기관들에 진실을 물었지만 한결같이 책임과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입양인들이 한국 정부에 요청한 신상 조사 역시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수많은 아이를 고아로 조작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던 입양기관들. 그리고 그 과정을 묵인하고 방관했던 대한민국 정부. 그들은 이제 대답해야 합니다. 그들이 함께 저지른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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