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인터뷰] ‘연매살’ 백승룡 PD “배우에게 주고 싶었던 아름다운 판타지”

[K-인터뷰] ‘연매살’ 백승룡 PD “배우에게 주고 싶었던 아름다운 판타지”

한류타임즈 2022-12-30 09:56:39 신고

3줄요약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어릴 적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슴 깊이 새긴 명언이라면서 이 말을 꺼냈다. 그는 “이 말을 한 사람은 바로”라며 넷플릭스 ‘아이리쉬맨’으로 감독상 후보에 마틴 스콜세지를 가리켰다. 머나먼 동방의 뛰어난 예술가가 미국 내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를 추앙하는 이 장면은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창의적이고 신선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모든 창작자의 염원이다. 봉 감독이 가슴 깊이 새긴 저 짧은 문구는 수많은 창작자가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테다. 그러나 방향이 맞다고 언제나 목적지에 당도하는 건 아니다. 개인적인 혹은 창의적인 것을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창의적인 것보다는 돈 되는 것을 바라는 장사치의 바람이 들어가면 천편일률적인 작품이 나오고, 독창성에 매몰된 창작자의 집착이 심하면 외면받게 된다. 대중성이라는 오묘한 범주 안에서 신선한 무언가가 엿보일 때 비로소 환영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tvN ‘연예인 매니저 살아남기’(이하 ‘연매살’)는 대중이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 안에서, 창작자의 독특한 색감이 잘 녹아든 작품이다. 창작자는 tvN ‘SNL’ 시리즈를 시작으로 ‘미생물’, ‘배우학교’, ‘쌉니다 천리마마트’(이하 ‘천리마마트’) 등 예능과 드라마를 오간 백승룡 PD다. 아마도 국내 PD 중 가장 독특한 필모그래피라 해도 무방한 이력을 가졌다.

메쏘드 엔터테인먼트라는 가상의 엔터테인먼트에서 실제 이름을 내건 배우들이 등장하는 이 드라마는 연예인과 매니저, 그 외 수많은 엔터 업계 종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여정을 필두로 이희준, 진선규, 김수미, 서효림, 이순재, 다니엘 헤니, 김아중 등 이름값 높은 배우들이 실제처럼 나와 한 회차를 담당한다. 

PD로서 동료 이야기를 하는데, 비판과 희화가 더러 섞여 있어 예민하게 접근해야 했던 이 드라마를 절묘하게 안착시킨 건 백승룡 PD의 진심이다. 나오는 모든 배우에게 아름다운 판타지를 심어주겠다는 예쁜 마음이 모든 걸 감싸 안는다. ‘빅쇼트’, ‘돈 룩 업’을 연출한 아담 맥케이의 정서가 흐르는 중에 희망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그런 가운데 한류타임스는 지난 23일 백 PD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비록 부담스러웠지만, 비교적 즐겁게 극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대중적인 범주 안에서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낸 백 PD의 진심을 일문일답으로 펼쳐본다.


‘연매살’의 출발을 말한다면.
스튜디오 드래곤으로 옮기고 나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때였어요. ‘슈룹’을 연출한 유상원 국장님이 이 드라마를 소개해 주셨죠. 원작도 있다고 해서 원작도 보고 작가님도 만났어요. 처음엔 부담스러웠죠. 연예계에 있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 않잖아요. 매회 주인공이 다르니까, 섭외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출자로 투입됐을 때 대본은 몇 화나 나와 있었나.
트리트먼트랑 1화 대본이 있었어요. 작년 7월쯤에 트리트먼트를 쓰신 작가님과 구상을 시작했어요. 해외 원작은 스튜디오에서 구매했고요. 

부담이 상당했을 것 같다.
이게 프랑스 국민 드라마인 데다 업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배우들이 나와서 자기 얘기를 해줘야 해요. 자기 얘기를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 판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죠. 이 드라마는 존중에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 안에서 배우나 매니저의 고충을 잘 녹여보자는 존중이요. 단순히 웃기자는 건 아니었어요. 웃음이 창출될 수는 있어도요. 

제가 어쨌든 ‘배우학교’를 거치면서 배우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가는 과정에 있었어요.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저도 많이 봤죠. 특히 신인 배우를 키우는 매니저들을 보고 있으면 열정적이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잘 녹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적으로는 김수미-서효림 에피소드를 보고 PD님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김수미를 여배우로 만들어주더라. 배우를 대하는 태도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예쁜 제작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읽어주다니 고맙네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 인터뷰였어요. 인터뷰를 많이 했죠. 그걸 작가님이 대본으로 정말 잘 옮겨주셨어요. 작가님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당시에 인터뷰하는데 김수미 선생님이 로맨스를 하고 싶어 하셨어요. 저는 선생님이 어떻게 로맨스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일반적으로 김수미 선생님을 욕쟁이로 알고 있잖아요. 때론 할머니만으로 나오시고요. 제 눈엔 여배우가 보이더라고요. 아름답게 표현해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을 믹스하기로 했죠. 선생님께 춤을 부탁했고요. 옷도 직접 고르시고, 춤 연습도 오래하셨어요. 어쩌면 자신에게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모든 배우에게 김수미 선생님처럼 예우를 다하고 싶었어요.

다른 배우들에게도 넣은 예를 말해준다면? 
조여정은 ‘김중돈’(서현우 분)과 서로 마음을 터놓고 달나라로 가는 장면이었고, 이희준-진선규는 함께 노래 부르는 게 판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연극 장면에서 두 배우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수현은 액션 스타, 박호산-오나라는 멋진 탱고였죠. 이렇게 하나 하나 다 있어요.

비록 한 회차 에피소드에 출연시킨다고 해도 대단한 배우들을 몽땅 섭외했다.
기본적으로 작가님과 제가 인터뷰를 하러 가요. 그들은 단순 미팅으로 여기겠지만, 저희는 꼭 섭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가죠. 인터뷰하는 중에 어떤 욕망을 캐치해요. 그러면서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도 하고요. 

원작에 보면 나름 스토리가 있어요. 저희는 한국판으로 각색하면서 어울리는 배우를 찾았죠. 원작 1화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나와요. 우리나라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섭외할 배우가 누가 있냐고 하면, 1순위는 조여정 배우죠. 그런 식으로 한 명씩 생각했어요. 결국, 원하는 대로 캐스팅했어요.


이 드라마의 독특한 점 중에 또 하나는 구도다. ‘마태오’(이서진 분), 김중돈, ‘천제인’(곽선영 분), ‘소현주’(주현영 분)가 주인공인데, 네 사람 모두 현실성을 쥐고 간다. 그 외 조연급 역할이나 회차 에피소드 배우들이 훨훨 날아다닌다. 리얼리즘과 판타지 사이에 밸런스가 절묘하다.
이서진 선배가 중심을 잡아주고, 서현우 배우가 리얼리티를 높여줬죠. 가장 매니저와 같은 외형이 누굴까 생각했는데 서현우가 보이더라고요. 다른 배우들이 서현우에게 ‘너가 내 매니저였으면 좋겠어’라고도 하셨어요. 그만큼 자연스러웠죠. 

천제인의 곽선영은 매력이 상당했고, 주현영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랑 같이 찍었거든요. 제가 덕을 좀 봤죠. ‘SNL’ 때부터 눈여겨본 친구예요. 정극도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이 네 사람이 더도 덜도 하지 않고 현실성을 담보해주니까 모든 배우가 다 살더라고요. 

그 수혜자가 메쏘드 엔터테인먼트 사무총괄 매니저 ‘유은수’ 역의 김국희 와 홍보 담당 ‘최진혁’ 역의 김태오다. 두 배우는 ‘연매살’이 발굴한 보석이다.
먼저 김국희 배우는 최광제 배우랑 친분이 깊어요. 최광제는 ‘천리마마트’에서 함께 했고요. 최 배우가 결혼식장에서 소개해주는데 꽃무늬 원피스에 노란색 단발머리를 하고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 독특했었어요. 꼭 만나보고 싶어서 미팅했죠. 적어도 메쏘드 엔터 식구들만큼은 정상인 느낌은 아니었으면 했거든요. 김국희 배우님이 그 느낌을 정말 멋있게 살려주셨죠. 

김태오는 오디션으로 뽑았어요. 500명 봤나 봐요. 첫날 오디션이었는데, 마지막에 등장했어요. 이미 다들 지쳐 있었죠. 솔직히 안 보고 가려고 했어요. 졸려서 있는데, 이 친구가 들어오니까 분위기가 확 바뀌더라고요. 잠이 확 깨는 느낌이었어요. 


혹시 김태오는 실제 게이인가?
절대 아니에요. 6화쯤인가 걸걸한 남자 목소리가 나와요. 그게 그 친구 진짜 목소리에요. 뮤지컬 배우 출신이고요. 이 드라마 만들 때 나름의 도전이었죠. 분명히 대중은 새로운 것에 스며들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생각보다는 늦게 반응이 왔어요. 6화에는 올 줄 알았는데, 10화 11화쯤에 긍정적인 반응이 왔어요. 배우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결국 잘 된 것 같아요.

김국희는 정말 연기를 독특하게 잘했다.
정말 영리한 배우예요. 굉장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현해내는 방식에 있어서, 오버하는 것 같으면서도 오버하지 않아요. 김국희, 김태오 조합이 정말 좋은 조합이었어요. 특히 국희 배우는 조절을 잘 하더라고요. 모든 캐릭터가 레이어가 많아요. 슬픈데 웃기고 웃긴 데 처량한 느낌이요. 두 분이 연기를 못했다면 아마 작품이 이렇게 풍성해지지 않았을 거예요.


서현우나 곽선영을 비롯해 모든 배우에게 새로운 색을 입혔다. 유일하게 이서진에게만 의존했다. 이서진만 특별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연출자로서는 미안한 일일 수도 있다. 
이서진 선배는 워낙 훌륭한 사람이에요. ‘바꿔야지’라기 보다는 그분의 경험과 도움을 받고 싶었어요. 드라마의 기둥이었죠. 아이디어가 정말 많은데, 도움을 이래저래 많이 받았어요. 덕분에 제가 성장했죠. 저도 감독이지만 모르는 부분이 있잖아요. 선배가 많이 알려줬어요. 

그래도 하나는 건진 것 같아요. 후반부에 혼자 우는 신이 있는데, 그 장면 되게 쓸쓸해요. 서진 선배가 그렇게 쓸쓸한 걸 보여준 적은 없거든요. 

맞다. 그 장면은 인상이 깊었다. 
그렇죠. 연기로 인물의 폭을 확 넓혀주셨죠. 서진 선배 마인드가 훌륭해요. 메소드 엔터 소속 배우들은 현장에 손님처럼 오는 배우들이잖아요. 그들에게 ‘당신이 빛나야 한다’고 강조해요. 그들이 빛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계속 제공하고요. 큰 사람이에요.

‘연매살’ 제작진이 용감하다고 느낀 회차는 이순재 편이다. 어쩌면 실제 일어날 수도 있는 불길한 사연을 작품에 녹였다. 거기에 합류한 이순재 배우도 그렇고, 그것을 제안한 제작진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님이 대본을 잘 써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죠. 이순재 선생님은 ‘천리마마트’에서 인연이 있어요. 당시에도 많은 걸 배웠어요. ‘리어왕’ 연극하실 때 찾아가서 보러 갔다가 인터뷰를 했어요. 흔쾌히 승낙해 주셨어요. 

혹시 눈 타이트 샷 보셨나요? 그 눈에서 과거로 돌아갔다가 클래식 연주하는 장면이 이순재 선생님을 위한 판타지였어요. 슬픈 사연이지만, 희망적으로 만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아담 맥케이를 좋아한다. 넷플릭스 ‘돈 룩 업’을 보고 ‘우리나라에 아담 맥케이 같은 창작자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그런데 ‘연매살’을 보면서 아담 맥케이가 떠오르더라. 작품의 완성도랑 별개로 정서가 닮은 것 같다.
과찬이 지나치시네요. 예전에 ‘SNL’할 때 제가 만든 디지털 쇼트에 달린 댓글을 보면 ‘B급 병맛인데 고퀄이야’가 많았어요. 저는 그냥 만들었는데, 그렇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디즈니와 판타지 장르를 좋아했어요. B급 고퀄에 판타지가 섞인 게 ‘연매살’인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버무린 게 아닌가 싶어요. 콜라보나 믹스도 좋아하거든요. 어울리는 것들을 섞는 것 같아요. 또 뭔가 확 트는 걸 좋아는 것 같아요. 저는 웃긴 사람이 아닌데, 저러면 웃기겠다 싶은 건 좀 알거든요.

‘배우학교’를 통해 배우를 꽤 이해했다고 했다. ‘연매살’을 통해 느낀 게 있다면?
이번에는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사람이란 나를 알지 못하면 혹은 잘못 생각하면 실수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타인의 존재를 알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남을 표현할 수 없어요. 저도 아직 저를 완벽히 아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타인을 알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좋은 배우를 볼 수 있는 능력도 좀 생긴 것 같아요. 나와 타인을 알려고 하는 과정을 더 열심히 하고, 고민하다 보니 진짜 좋은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조금 더 사람을 아니까 솔직한 사람이 보이더라고요. 

사람을 이해하는 지점에서 분명한 성장이 있었던 건가?
‘배우학교’는 벽을 부수는 과정이었어요. 박신양 선배의 도움이 컸어요. 이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쉼 없이 던졌어요. 선배가 말하는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죠. 예전에는 겉만 보고 ‘멋있네’ 했으면, 이제는 속마음을 더 잘 끌어내는 기술이 생긴 것 같아요. 

정리하면 나와 타인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고, 그 시작이 ‘배우학교’였고 ‘연매살’에 잘 반영이 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연매살’ 시즌1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배우들 칭찬을 쭉 하면 어떨까요? 꼭 하고 싶어요.

먼저 이서진 선배 덕분에 뼈대가 잘 만들어졌어요. 서현우는 다른 감독에게 주기 싫은 배우예요. 곽선영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정말 많은 사건이 많았는데 묵묵히 다 이겨내 줬어요. 주현영은 워낙 탤런트가 많아요. 저희는 그에게 웃기는 신을 안 줬어요. 그래서 힘들기도 했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터지면서, 우리도 저렇게 했어야 했나 싶었거든요. 결국, 소현주로 잘 끝났어요. 김국희와 김태오는 연기 천재예요. 노상현은 덕분에 고퀄이 만들어졌고, 허성태는 가족입니다.

얼마 전 시즌2를 하기로 결정이 됐어요. 워낙 결말이 열려있던 터라서요. 힘차게 준비하겠습니다.

사진=CJ ENM

 

함상범 기자 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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