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제주 인간의 예술 한 스푼 더…전시장으로 변한 '삼다도'

자연이 빚은 제주 인간의 예술 한 스푼 더…전시장으로 변한 '삼다도'

DBC뉴스 2023-01-14 11:44:00 신고

3줄요약
제주 삼성혈에 설치된 신예선 작가의 '움직이는 정원'. / DBC뉴스
제주 삼성혈에 설치된 신예선 작가의 '움직이는 정원'. /뉴스1 제공

이도일동 1313번지. 제주공항에 내려 차로 15분쯤 가면 나오는 곳. 주말이라면 공항 주변의 렌터카 행렬로 다소 막히는 구간. 각종 소음도 더해져 제주에 온 건지 잠시 헷갈리기 십상인 동네. 이때 도로에서 몸을 틀어 2~3분만 걸어가면 돌담을 경계로 이질적인 공간과 조우하게 된다.

딱딱한 아스팔트는 촉촉한 흙으로, 빼곡했던 차들은 500년 넘는 세월을 버틴 고목으로, 소음은 새의 지저귐으로 바뀐다. 바로 '삼성혈'이다. 제주 고·양·부씨 시조의 탄생 설화를 간직한 곳.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키 큰 나무 기둥들 사이로 영롱한 색의 선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숲 사이로 쏟아지는 볕에 따라 선들은 그 낯빛을 바꾸고 환상적인 실루엣을 선사한다. 은은하면서도 신비롭다. 자연 안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색을 입힌 고운 명주실로 삼성혈 내 곰솔, 팽나무, 녹나무 등을 감싸 안듯 연결한 신예선(50)의 '움직이는 정원'이다. 삼성혈이 간직한 신화와 역사, 생명의 경이로움을 지켜본 나무의 시간을 보호하려는 듯 바람과 빛이 넘나드는 희미한 집과 벽을 만든 것이다.

신예선 작가의 '움직이는 정원' / DBC뉴스
신예선 작가의 '움직이는 정원' /뉴스1 제공

'자연이 빚은 걸작품' 제주도에 인간이 만든 예술이 스며들었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을 주제로 오는 2월22일까지 열리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를 통해서다.

삼성혈을 비롯해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제주국제평화센터, 가파도 내 예술가 레지던스인 '가파도 AiR', 전통가옥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한 '미술관옆집 제주' 등 총 6개 공간이 주 무대다. 이번 비엔날레는 인간이 제주의 자연으로부터 받은 생명의 가능성을 예술로 사유해보자는 취지다. 16개국, 55명(팀)의 작가가 참여해 총 165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뉴스1에 따르면 제주 곳곳을 누비며 예술을 보고 느낄 수 있어 더 인상적이다. 삼성혈과 함께 비엔날레 위성 전시장으로 변한 가파도도 그렇다. 봄철 청보리 축제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맘때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다.

제주 가파도 글라스하우스에 설치된 홍이현숙의 '가파도로 온 것' / DBC뉴스
제주 가파도 글라스하우스에 설치된 홍이현숙의 '가파도로 온 것' /뉴스1 제공

선착장에서 도보로 10여 분쯤 떨어진 '글라스하우스'에선 홍이현숙(65)의 '가파도로 온 것'이 기다리고 있다. 작가는 해안으로 밀려온 스티로폼 부표와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를 주워다 담을 쌓았고, 그 위에 청보리 씨를 뿌려뒀다. 통유리로 된 전시장 밖에서 보면 제주의 돌담 같다. 바다와 인간이 공생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놓인 공간이다.

이탈리아 작가 아그네스 갈리오토(27)는 가파도 내 폐가의 인상을 바꿔놓았다. 그는 버려진 집 벽면을 프레스코화로 채웠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수개월간 직접 가파도에 머물며 느낀 감상을 총 5개의 방에 그려 넣은 '초록동굴'이다. 각 방에 담긴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 공존하며 폐가는 상상의 동굴로 변신한다.

아그네스 갈리오토의 '초록동굴' / DBC뉴스
아그네스 갈리오토의 '초록동굴' /뉴스1 제공

이외에도 현대 사회의 소비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영국 출신 작가 앤디 휴즈(57)의 'SEE-THROUGH(씨스루)', 인간의 모순된 욕망을 표현한 심승욱(51)의 '검은 욕망' 등을 찾다 보면 가파도 자체가 보물처럼 다가온다.

주제관인 도립미술관에는 자연을 주제로 작업해온 국내외 작가 작품 36개가 전시됐다. 현대미술관에선 미디어아트 중심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현대미술관으로 가기 전 버려진 듯한 땅에 세워진 김기대(44)의 '바실리카'가 눈을 사로잡는다.

김기대의 '바실리카' / DBC뉴스
김기대의 '바실리카' /뉴스1 제공

초기 교회 건축 양식인 바실리카가 얼핏 스친다. 기본 구조는 한국의 비닐하우스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제주의 빈집과 쓰레기 문제를 표현한 것인데, 뼈대만 앙상한 모습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와닿는다. 속은 미로 같다. 무엇보다 밖으로 나가려면 허리를 숙여야 한다. 자뭇 불편하지만 낮춰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작가의 의도를 진지하게 체험하는 순간이다.

제주를 주제로 한 작품도 다수다. 도립미술관 1층 전시실 벽면 하나를 홀로 차지한 강요배(71)의 대작 '폭포 속으로'가 대표적이다. 세로 길이 6.7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장엄함을 물씬 풍긴다. 제주 백약이오름에서 본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의 풍경을 그린 유창훈(58)의 '한라에서 성산까지', 군산오름에서 바라본 제주를 가로 9m 화폭에 담아낸 박능생(50)의 '제주-탐라여지도' 등도 눈여겨볼 만한다.

강요배의 '폭포 속으로' / DBC뉴스
강요배의 '폭포 속으로' /뉴스1 제공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선 30년 전 제주를 그린 '탐라순력도'에 거울, 미디어아트를 접목해 재해석한 이이남(54)의 '기억의 뿌리', 제주 해녀의 물옷과 오리발 등 물질 도구를 수집해 해녀들이 몸을 말리던 '불턱'으로 꾸민 이승수(46)의 '불을 피우는 자리', 1년간 직접 관찰한 제주 바다 풍경을 128점의 그림으로 담아낸 노석미(52)의 '바다의 앞모습 001-128', 1년간 우도 해녀들의 생활상을 사진으로 담은 준초이(71)의 '바다 어멍 해녀'를 만날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2013),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본부장(2016~2020),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 예술감독(2019) 등을 지낸 박남희(53)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1회 비엔날레 이후 각종 잡음과 갈등에 시달리다 폐지론마저 불거졌으나 이를 딛고 5년 만에 개막했다.

8개월간의 짧은 준비기간을 거쳐 열린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다른 정체성과 높은 완성도로 존속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다. 인간의 손에서 태어난 예술품이 제주 특유의 역사, 문화, 자연과 잘 어우러져서다.

앤디 휴즈의 'SEE-THROUGH'(씨스루) / DBC뉴스
앤디 휴즈의 'SEE-THROUGH'(씨스루) /뉴스1 제공

과제는 남았다. 여타 국제비엔날레와 달리 제주비엔날레는 별도의 조직위원회가 없다. 인력과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다. 비엔날레는 이름이 무색하게 2년마다 열리지 못했던 배경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영구 설치가 가능한데도 비엔날레 종료와 함께 사라질 작품이 여럿이다. 도립미술관 야외의 휴식 공간이 될 수 있는 최병훈(71)의 '태초의 잔상',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한 도보 점자판과 먹돌형 의자로 구성된 강승철(51)의 '산책'을 비롯해 '바실리카', 가파도 폐가의 '초록동굴' 등이다.

제주도립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강승철의 '산책' (제주비엔날레 제공) / DBC뉴스
제주도립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강승철의 '산책' (제주비엔날레 제공)

박 예술감독은 "장소성이 있는 작품은 철거하지 않고 제주의 예술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겨울 방학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포근한 제주도로 떠나는 것은 어떨까. 비엔날레가 있기에 더더욱 때를 놓치지 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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