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人] ② '알쓸인잡'의 그 사람, 법의학자 이호 교수

[대학人] ② '알쓸인잡'의 그 사람, 법의학자 이호 교수

연합뉴스 2023-01-24 08:00:22 신고

3줄요약

법의학자로 25년 활약…"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 가장 중요"

"유가족 위한 '애도 의학' 펼치는 법의학자 되고 싶어"

[※ 편집자 주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 대학들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산학협력, 연구 특성화 등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방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구성원들을 캠퍼스에서 종종 만나곤 합니다. 연합뉴스는 도내 대학들과 함께 훌륭한 연구와 성과를 보여준 교수와 연구자 또 학생들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법의학자 이호 전북대 의과대학 교수 법의학자 이호 전북대 의과대학 교수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이철규 열사의 죽음을 보고 삶의 마지막 단계에도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렇게 법의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저명한 법의학자이자 전북대 의과대학 교수인 이호 교수는 24일 법의학자가 된 계기를 이같이 회고했다.

이 교수는 본과 1학년이던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조선대 고(故) 이철규 열사가 광주 수원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목도하게 된다.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 추정'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혈기 넘치던 이 교수는 온몸에 멍이 든 채 발견된 동료의 죽음 앞에서 법의학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여러 정황이 고문치사 유기로 보였지만, 부검 소견은 그렇지 않았다"며 "이때 사람의 죽음에도 의사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이어 "보통 의과대에 들어오면 마치 인생의 트로피를 쟁취한 것 같이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하게 된다"면서 "이철규 열사 사건을 계기로 직업에 대해 고민했고, 당시 읽었던 책에서 본 '왕관이 아닌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법의학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수련의를 거쳐 법의학자가 된 이 교수는 올해로 25년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법의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법의학자로서 살아온 삶의 흔적은 그의 이력에 그대로 남았다.

이 교수는 대한법의학회 학술이사와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비상임위원, 대검찰청 법의학 자문위원, 경찰청 과학수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는 법의학자가 갖춰야 하는 소양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그는 "법의학자는 죽음을 단순하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 개인적인 사정, 사회 구조적인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우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의사는 나의 노력, 환자의 노력, 사회의 노력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질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법의학은 환자의 노력은 이미 끝난 상태에서 사회와 의사의 노력만 남아 있는 것"이라며 "사회는 현미경처럼 한 사람의 죽음을 세세하게 보지 못한다. 그래서 법의학자는 사회가 보지 못하는 것을 자세히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법의학자의 길을 걸으려는 후학들에게 "의대에 오는 제자들을 보면 과에서 몇 등, 국가고시 몇 등, 인턴·레지던트 때도 마찬가지로 경쟁에 익숙한 삶을 살아간다. 이제는 옆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했으면 좋겠다"며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리면 1등부터 꼴등까지 순번이 정해지지만, 360도로 달리면 모두가 1등이다. 베스트원이 아닌 온리원이 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법의학자 이호 전북대 교수 법의학자 이호 전북대 교수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이 교수는 최근 TvN 인기 프로그램인 '유퀴즈'와 '알쓸인잡'에 출연해 박식하고, 깊이 있는 멘트로 주목을 받았다.

내공 있는 멘트의 근원은 그의 연구실 사방을 차지한 책에 있는 듯했다.

애독가로 소문난 이 교수는 독서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독서량을 의식하면서 책을 읽지는 않는다. 연구실에 1천권 정도 책이 있는 것 같다"며 "독특한 독서 버릇이라면 매년 반복해서 보는 책이 있다. 그리스 고전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매일 아침 일어나 펼쳐 본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유퀴즈에 출연해 받은 상금 100만원으로 명상록에 나오는 세네카의 '행복론'의 필사판 70권을 구매해 지인들에게 선물했을 정도로 이 책을 좋아한다"면서 "책을 선물할 때 '고전은 오래된 미래다'라는 문구를 적어줬는데 이게 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녹화를 모두 마친 알쓸인잡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우주복 이야기였다. 우주복을 겹겹이 한땀 한땀 바느질해서 만든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며 "우주복을 만드는 바느질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지만, 바느질은 인류가 유라시아 대륙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언 땅을 건너갈 때부터 있던 것이다. 기술이 전해지고 쌓여 우주복까지 이른 것이다. 법의학도 마찬가지다. 우리 윗세대 법의학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쌓여 오늘날의 법의학이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출연한 출연진들에 대해서도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이 교수는 "MC를 맞은 장항준 감독은 MC로 보이지만 현장에서 카메라, 작가, 현장 분위기 전반을 챙긴다. 실제로 보면 영화감독의 포스가 느껴진다. 김영하 작가는 인간 심리부터 사회 현상까지 세상을 총망라해 모르는 게 없다. 왜 작가를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하는지 김 작가를 보며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외유내강형인 심채경 박사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엘리트다. 끝까지 자기 목표를 잃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돋보이는 존재가 됐다. 김상욱 교수는 지적 호기심이 그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이공계와 인문계 모든 분야에 박식하고, 앎의 체계가 정확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김남준)에 대해서는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화려한 인기에 주목하지만, 이면에는 깊은 내공이 있고, 자기 작업에 대한 철학이 있더라"며 "출연진 중 가장 어리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이 있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다"고 평했다.

이 교수에게 법의학자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변사 유가족들은 일반적인 유족들과 달리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유가족이자 목격자이고, 종종 용의자로 의심을 받기도 한다"면서 "법의학자로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함께 나누고,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면 의사를 안내해주기도 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퇴직까지 10년 정도 시간이 남았다. 그때까지는 성실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자로서 소명을 다 할 것"이라며 "또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애도 의학'을 펴는 패밀리 닥터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 - 알쓸인잡'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 - 알쓸인잡'

[tvN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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